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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잠을 잤다. 깨어있는 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최희준 |2007.01.10 02:40
조회 53 |추천 2

하루종일 잠을 잤다. 깨어있는 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꿈, 현실,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다.

 

산다는 걸 생각해 본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게 아니라 내가 산다는 거 내 어머니, 내 아버지, 내 동생, 몇몇 친구들, 창 너머 학교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나 꽃집 아저씨, 붕어빵 파는 아줌마, 꼬치장수 아저씨... 그런 사람들이 산다는 거.

 

산다. 산다는 거. 영등포역 무숙자들이 산다는 거. 아. 그저께 병재형 생일날 영등포에서 술 먹고 돌아오는 길에 누가 그랬지. 무숙자들이 추위를 피해 다 부산께 남쪽으로 내려갔다고. 그 말을 듣고 생의 문제를 참 원초적으로 해결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TV다큐에서 보았던 떼지어 나는 철새들의 영상이 오버랩되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었다. 어떻게 내려갔을까. 무슨 돈으로.

 

한편으로는 그것도 참 대단한 의지이지 않나 싶어서 가슴이 조금 뻑적지근 하기도 했다. 삶의 작은 고비고비마다 허덕거렸던 내 나날들이 살갖을 찌르는 바늘처럼 따끔거렸다. 그 다음날 아침에 집에 들어와 누으려고 보니 간밤에 식은 침대가 너무 차가웠다.

 

붕어빵아줌마는 대우슈퍼 앞에서 작게 가판을 내어 붕어빵하고 어묵하고 떡볶이를 판다. 붕어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자주 직접 사먹지는 않지만 가끔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대충 점퍼같은 거를 두르고 쓰레빠에 종종 걸음으로 뛰어가 붕어빵을 산다.

 

팔짱을 끼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붕어빵 몇개 주세요하면 아줌마는 고개도 안들고 네하고 대답한다. 나는 기다리면서 어묵을 데우고 있는 스텐레스 통에서 피어오르는 더운 김과 낮은 종지에 담겨있는 지저분한 간장소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여깄어요하는 아줌마의 음성에 주머니 속에 구겨 쥐고 있던 지폐를 건내고 붕어빵을 받아든다. 아줌마는 얼굴이 삐뚜루 생겼다. 덜컥하는 마음에 잔돈을 건내는 아줌마의 시선을 피한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이 상처가 될까봐선 아무렇지 않게 뒤돌아 뛰어 온다. 붕어빵 봉지를 펼치며 엄마한테 그랬다. 엄마 붕어빵 아줌마 얼굴이 삐뚤어 졌어. 엄마가 옛날에 집에 불났댄다했다. 붕어빵은 맛있었다.

 

가끔 그 집 앞을 지나가면 남편같은 아저씨도 보인다. 장사는.. 음. 잘되는 것 같다. 주변에 붕어빵 파는 곳이 별로 없긴 하다. 멀리서도 추위에 튼 얼굴이 벌겋다.

 

붕어빵 파는 데서 앞으로 더 가면 신세계마트라고 있다. 여기는 할인마트라서 사람이 없어도 시끄럽고 이것저것 어지럽게 널어놓고 있다. 여기 앞에는 생선 파는 아저씨가 있다. 나는 이 아저씨와 말해 본 적이 없지만 엄마와는 그냥 지나가면서도 농을 주고 받는 친한 사이라 전해 들은 것이 있다.

 

이 아저씨는 육군중사 출신이다. 군생활이 하도 지겨워서 사회에 나가면 뭐라도 못하겠나하는 마음에 제대를 결심했다고 했다. 나와서 이것저것 안해본 게 없는데 제대로 돈벌이가 된 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이제 생선 좀 팔아서 돈 좀 버는가 싶은데 몸에서 생선냄새가 떠나질 않아서 쉬는 날에도 밖으로 못나간다고 한다. 혼기는 한참 전에 지났는데 그 자격지심에 여자를 안만난댄다. 엄마가 뭘 그러냐고 군대에 그냥 말뚝이나 받지 그랬냐구 핀잔을 주면 기우뚱 기우뚱 생선대가리를 턱턱 쳐내면서 그래도 저는 이게 좋아요하고 웃는댄다. 지나면서 보면 검은 피부에 짧은 머리가 어울리는 폼이 생선냄새만 아니면 지금도 군인이라해도 믿을 것 같다.

 

아. 역 쪽에서 오는 길엔 과일가게 아저씨도 있다. 나이 든 대머리 아저씨인데 마누라가 바람이 나서 도망갔다. 지나가면서 보면 맨날 울상을 짓고 있다. 어느 날은 과일을 사는데 싱글벙글한다. 엄마가 오늘은 왜 그리 기분이 좋으세요하니까 아유 좋게 좋게 웃으면서 살아야죠 이제 그러려구요하면서 덤으로 몇개를 더 줬다. 그 후에 엄마한테 전해들은 바로는 그 마누라가 다시 와서 이제 같이 살자고 그러고는 일주일있다가 그나마 있는 돈을 몰래 가지고 또 도망갔다고 했다. 가끔 그 앞을 지나가면서 이렇게 훔쳐 보면 또 울상을 짓고 있다. 그래도 과일가게 세군대가 몰려 있는 중에 그 아저씨네가 항상 가장 일찍 문을 연다.

 

헬스장에 다니는 3급 공무원 아줌마도 있다. 연세대 출신의 이 아줌마는 일이 너무 좋아서 결혼도 안하고 일만 했다. 마흔 후반에 유방암이 와서 한쪽 가슴을 떼어냈다. 오십 되면서 너무 외로워서 이혼 경력이 있는 아는 친구랑 결혼했다. 그냥 같이 여행이나 다니고 밥도 같이 먹고 그러려고. 같이 살고 잠도 같이 자고 해도 사랑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이 아줌마는 일 밖에 모른다. 운동하면서도 일만 생각한다고 했다.

 

이대나온 아줌마도 있다. 회계사 출신인데 독실한 기독교 인이다. 회계사로 번 돈으로 몇년 전부터는 회계사 학원을 차려서 돈 많이 번다. 근데 백마 탄 왕자님 기다리다가 이제 나이가 마흔 넷이다. 같은 교회 다니는 자동차 정비공과 두달 연애하고 작년 말에 결혼했다.

 

아 도도한 노처녀 누나를 빼먹으면 안된다. 그 누나는 서른 여섯인데 백화점에서 일한다. 딱 봐도 말투나 행동이 도도하다. 그 누나도 이 남자 저 남자 고르다 여지껏 노처녀 신세를 못면하고 있다. 문제는 여성탈모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거. 그래도 곧 죽어도 자기는 총각하고 결혼한다고 한다. 가끔 헬스장에서 만나면 내 몸을 훑어보는 눈빛이 예사 눈빛이 아니라 좀 섬뜩할 때가 있다.

 

고대 나온 이사장 아저씨. 광고대행업 하는 아저씬데 처남한테 보증서 준 게 잘못돼서 팔억인가 빚지고 이혼했다. 요즘엔 일에 바빠서 새벽에 가야 볼 수 있다.

 

더 있다. 생활고를 못이겨 자살한 특전사 출신의 친척형도 있고 무역회사 차려서 잘나가다 쫄딱 망하고 연락두절인 중등교사 출신 아버지 친구도 있고 돈 잘 벌고 성실한데 키 작고 숫기가 없고 학벌이 없어서 노총각인 빵집사장형도 있고 무난하고 평범한 사람들도 많다. 아니 이런 사람들이 무난하고 평범한 '우리'다.

 

누가 감히 함부로 삶이 아름답다 하는가. 그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사람들의 삶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갖가지 불행과 고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속에 숭고함이 깃들어 있을 뿐...

 

그래서 사람들이 이야기에 매료되는가보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주인공이 있는 이야기. 그리고 꿈꾼다. 그것처럼 내 인생의 주제들이 아름답게 마무리 되길. 하지만 그 같은 삶은 거의 없다시피 할 만큼 적은 것 같다. 예의 드라마 같은 시작이 있더라도 끝은 여느 인생과 다르지 않으니까.

 

삶이란 무엇인가하는 자칫 진지해보이는 물음이 이런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을까. 삶의 크고 작은 고비를 넘을 때마다 우리는 성장할까. 정말 전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어 있을까. 그 고난의 크기만큼. 그 괴로움의 기간만큼??

 

'내 방황하는 청춘이 언젠가 아름답게 마무리 되기를 나는 꿈꾼다'하고 나는 '이야기'를 적는다. 하지만 나는 배부르고 따뜻하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을 간절히 바라고 추구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꿈에서 깰 수가 없었다. 내게는 이야기 속의 고결한 가치가 이젠 없다. 평범한 삶의 숭고함도 없다. 현실도 꿈도 내게는 있지 않다. 내 이상은 내가 추구해야 하는 현실이 개돼지 같이 게으르고 추한 삶이라 한다. 내 현실은 내 이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나대는 볼 것없이 초라한 삶이라 한다. 많은 숭고한 삶들이 날 흉본다. 배부른 자식이. 저 따위 배부른 자식이.

 

 

나, 꿈, 이상, 현실, 어디라도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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