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신조 수상이 새해 들어 지난 4일에 이세(伊勢) 신궁을 참배한데 이어 6일에는 메이지(明治) 신궁을 참배했다. 이세 신궁은 일본 황실의 시조신이며 일본 민족의 총 씨족신으로 떠받들고 있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모시고 있어 일본인들에게 건국 신화와 민족 정신의 고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한편 메이지 신궁은 메이지 텐노(天皇) 부부를 기리기 위해 1920년에 도쿄에 조성된 것으로, 전설 속의 인물이 아닌 근대 일본의 정치 권력자를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이다.
지난 수상들은 흔히 연초에 메이지 신궁에 참배해 왔으나, 고이즈미(小泉純一郞)는 재임중에 야스쿠니에는 참배하면서도 메이지 신궁에는 참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직 수상이 메이지 신궁에 참배한 것은 2001년 1월 모리(森喜朗)의 참배 이래 6년만의 일이 된다.
이날 오후 아베는 모닝코트 차림으로 신궁을 방문하여 "내각총리대신 아베신조”라고 방문록에 기입했으며, 내배전(內拜殿)에서 신도 형식에 맞추어 두 차례의 절, 두 차례 박수, 한 차례의 절로 참배했다. 그리고 헌금(初穗料)은 자신의 용돈으로 지불한 것으로 되어 있다. 참배 후 그는 기자단에 대해 “일본 국가의 안녕과 발전, 황실 번영과 세계 평화, 9일부터 시작하는 자신의 유럽방문의 성공”을 빌었다고 말했다.
왜 메이지 신궁에 참배했는가에 대한 답변으로는 유서 깊은 신사인데다가 자택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자주 참배하고 있다고 했다. 수상이 신궁에 참배한 정치적 이유는, 보수주의적 성향을 띠는 그가 이러한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분명하게 내보이려는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고이즈미 정부와는 달리 아베 정부는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이즈미가 강렬하게 내세운 ‘개혁’에 비하면, 노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개혁’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불만을 달래야 하는 아베 정부의 과제가 훨씬 힘든 것일지 모른다. 아베가 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내놓은 ‘재도전 사회’ 혹은 ‘아름다운 국가 만들기‘ 슬로건은 애초부터 일본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으로 실행해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아베는 수상 취임 직후 중국과 한국을 방문함으로서 당면한 외교적 숙제를 풀어낸 것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찬성하는 의견을 꾸며낸 일이나, 우정(郵政) 개혁에 반기를 들었던 인사들을 자민당에 복귀시킨 일, 여기에다 그의 측근 정책입안자들이 정치 윤리에 반하는 행동으로 사퇴하게 된 일 등으로 석연치 않은 분위기로 2006년을 마감해야 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내각지지율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국내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해 여름 참의원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통해서 강력한 리더십을 내보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신궁 참배도 수상의 리더십 회복을 향한 노력의 일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번 신궁 참배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어떻게든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이번 참배 행위는 종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해오던 그가 수상이 되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주변국의 반응을 떠보는 일이 되었다. 메이지 신궁 참배가 야스쿠니 참배를 대체하는 행보가 될지, 아니면 야스쿠니 참배에 이르는 과정이 될지는, 앞으로 일본 국내정치의 향방과 수상의 외교적 배려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번 수상의 신궁 참배가 주변국과의 외교에서 논쟁거리가 되지 않은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일본 국내에서조차 이의제기나 반대의견이 나오고 있지 않는 것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단 이번 참배와 관련하여 일본의 매스컴이 일제히 사실 보도를 하면서도 비판과 비평은 내놓지 않았다.
2002년 2월에 부시 대통령이 일본에 방문하여 고이즈미 수상과 함께 메이지 신궁을 참배한다는 뉴스가 전해졌을 때, 일본의 기독교 단체에서는 “정교(政敎)분리의 대원칙을 전혀 무시하는 행위”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www.jca.apc.org/ncc-j/statements/2002/0214bush-meiji-jinnguu.htm) 결과적으로 그때 부시는 메이지 신궁을 '표경 방문'하고 고이즈미는 참배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이번 수상의 종교적 참배 행위에 대해서 지금은 일본의 모든 종교단체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일본사회에서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명목상 이유는 수상의 신사참배 행위가 정교분리 원칙에 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관련 재판을 통해서 이미 수상의 신사참배 행위가 일본국 헌법 제20조 3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종교적 활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헌적 행위라고 하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만약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가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메이지 신궁이나 이세 신궁에 참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헌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메이지 신궁이 떠받들고 있는 메이지 천황의 시기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병합 등의 대륙침략이 자행된 시기가 아니었던가.
보수화 해가는 일본사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점차 줄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권력자들의 행보가 무비판적으로 나타나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영호(영산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