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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한 고찰

이종명 |2007.01.10 08:31
조회 49 |추천 0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명언이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자아를 인식할 때 쯤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만한

 

것이 바로 '존재'에 관한것이다. 우리는 왜 태어났으며 왜 존재하고

 

왜 죽는가? 사실 정답은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질문 자체를 우

 

문이라 여기거나 인생에 별 도움안되는 잡념 정도 생각해버리고 다

 

들 사회의 굴레 안에서 무엇인가를 좇으며 살아가버리게 된다. 아니

 

면 현인들의 훌륭한 말들로 종교적, 혹은 철학적으로 적당히 합리화

 

시켜버리곤 한다.

 

하지만, 요즘와서 문득 다시 드는 생각들.. 누구나 어릴 때 호기심에

 

가졌던 생각과는 다른, 인간이 무르익어 갈때쯤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그런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곤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존재의 이유는 '존재'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하

 

면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엔 어떤 개연성이

 

나 필연성이 없다. 많은 이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우리는 왜 세상에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 지를 설명하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것 조차 결국 우리의 '존재'를 위한 변명이자 수단에 불과하다.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란 말이 이런 맥락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인간들 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이 마찬가지이다. 만물은 존재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만물은 '존재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꼭 인간처럼

 

생각해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생각' 혹은 '사고' 그

 

것 조차도 우리의 기준에서 정의 내린 것이기에 만물은 넓은 의미에

 

서 '사고'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사람을 사귀고,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섹스를 하고, 자식을 낳고, 교육을 하거나 받고,

 

돈을 벌고, 예술을 하고, 정치를 하고, 이 외의 인간이 하는 모든 일

 

들은 결국 '존재의지'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의 이유

 

가 존재이고 그 존재의 이유 또한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존재의 목적이 존재라면, 존재의 기준은 무엇일까?

 

존재한다는 기준은 물적 세계에선 그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예를 들어,돌맹이가 하나 있다고 치자.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

 

명해 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것은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망막에 상이 맺힌것 뿐이다. 만져지기 때문

 

에? 이것역시 촉각에 불과하다. 무게가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중

 

력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 정말 '돌맹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건 우리 '생각'에 있다. 우리가 '돌맹이'라는 단순히 사전적

 

의미 외에 갖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생각이 돌맹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결국 돌맹이의 실체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요, 존재 또한 우

 

리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다. 고로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돌맹이

 

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개념, 칸트의

 

관념론을 통한 철학적 고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죽음'은 세상의

 

종말을 뜻한다. 결국 내가 죽으면, 세상은 없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오직 나의 생각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로 내가 생각할 수 없다

 

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세상이라는게 존재 할 뿐, 죽은이에게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것이

 

다. 영화'메트릭스'를 보면 이런 존재에 관한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메트릭스라는 가정을 하

 

자.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것은 허상이 된다. 결국 생각에 따라 우리

 

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부정할 수도 있다. 감히 그게 참인지 거짓

 

인지 어느 누가 확담할 수 있는가?  이또한 존재의 근원이 우리 생

 

각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확실한 건,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우리가 '사고'하는 그 자체 외에는 없다. 데카르트를 의심많은 사

 

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게 아무것도 없기에 그렇게 생

 

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사고'는 '수학적인 사고'를 말한다. 수학적 사고

 

가 모든 것의 근원인 것이다. 컴퓨터랑 비교해 보자. 우리는 컴퓨터

 

로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본다. 하지만 컴퓨터 안에 정말 음악이 실재

 

하는가? 아니면 그림이 실재하는가? 알고보면 01000111010등의 2진

 

법 숫자들의 허상일 뿐인 것이다.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2진법이 아

 

닌 어떠한 관념적인 사고에 의해 세상만물은 우리 머리속에서 만들

 

어 질 뿐 허상인 것이다. 다만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한 '사물'이 그들이 공통으로 행하는 사고를 통하여 세상을 창조하

 

고 조직할 뿐이다. 그래서 아메바가 갖고있는 세상과 인간이 갖고

 

있는 그것, 혹은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존재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것

 

이다.

 

'사고'에 의해 세상이 '존재'하기에 우리(인간)가 보통 말하는 '세

 

계'는 인간의 사고 개체 수만큼 존재한다. 60억명이라면 60억개의

 

인간들이 말하는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매

 

트릭스처럼 모두 머리에 이상한 기계를 쓰고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가상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가끔 생각하기도 싫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다. 진실은 혼란스럽지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후 우리의 생각의

 

자극은 계속 될 것이다.

 

플라톤에게 경의를 표한다.

                                                            

                                                2006.4.14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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