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M7] 그놈의 돈이 뭔지
일전에 어떤 분께 식사를 대접해 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다. 그 분은 연세가 많으신 분으로 슬하에 자녀도 일가친척도 없는 처지였는데 가지고 있던 땅덩어리가 갑자기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아 오르는 바람에 지금은 수십억의 재산을 소유한 갑부로 돌변해 있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그 분의 결정에 나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그 분은 약속 장소까지 오는데 소요되는 택시비 이천 얼마가 아깝다는 이유로 내가 간청한 식사제의를 거절해 버렸다. 내가 택시비를 드리겠노라고 말했지만 그건 또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해 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나는 망치로 세차게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까와서 한 푼도 쓸 수 없는 돈이라면 수천억인들 무슨 가치가 있으랴. 차라리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뒷처리라도 할 수 있는 휴지 한 조각이 수천억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에 이르러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지나친 허영심과 소비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여자가 된장녀라면 지나친 인색함과 절약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남자가 간장남이다. 만약 된장녀와 간장남이 한 집에서 가족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된장녀는 돈을 낭비하는 일에 주력할 것이고 간장남은 돈을 사수하는 일에 주력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과 신념이 뚜렷할수록 자주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종국에는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고 가축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물질은 그렇다. 집착하면 이내 인간을 가축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그러나 두 인격체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된장녀도 간장남도 문학서적은 읽지 않는다는 공통점이다. 그들이 문학서적을 읽지 않는 이유는 문학서적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감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해 무삼 하리오. 진정한 행복은 물질의 풍요에 기인하지 않고 정신의 풍요에 기인한다. 문학서적은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정신의 풍요를 가져다 주기는 한다.
그런데도 해를 거듭할수록 문학서적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과 진배없다. 도대체 무엇이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어 버렸을까. 사람들은 자꾸만 진정한 행복의 반대 방향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직은 내면의 풍요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서 서점을 드나들고(술집에 드나드는 숫자에 견주면 비애롭기 짝이 없지만) 더러는 차림새가 검소해 보이는 대학생들이 서가 앞에 웅크리고 앉아 골똘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차림새가 검소해 보이는 대학생들은 마음에 드는 책을 사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서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도 한때는 그런 시절이 있었으므로 보기만 해도 사정을 대번에 간파할 수가 있다.
대부분의 서점 관계자들은 서가 앞에 웅크리고 앉아 골똘히 책을 읽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집필한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는 작가다. 작가로서 단언컨대 누가 어디서 어떤 식으로 자신의 책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집필자에게는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에 드는 책을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데도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서가 앞에 죽치고 앉아 마음에 드는 책을 끝까지 읽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은 자신을 절약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얌체근성이 투철한 글도둑에 불과하다. 이 대목에서 발끈하시는 분들은 ‘마음에 드는 책을 살만한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데도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라는 부분을 되새김질해 주시기 바란다.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만들고 자신의 인생을 격조있게 만드는 일에 돈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된장녀나 간장남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서적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 나라 책값은 외국의 책값에 비하면 절대로 비싼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삼십년이나 글밥을 먹고 살아온 내 앞에서 공공연하게 책값이 비싸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도 싸구려로 전락해 버린다고 말해 준다면 과연 수긍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말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젠장할, 이 척박한 황무지에서 삼십년 동안 글밥을 먹고 살아온 나만 불쌍하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울컥,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뿐이다.
오늘도 기쁜 일만 그대에게.
기사 게재 일자 2006/09/25 -문화일보
*9월25일날 읽고 와닿아서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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