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종종걸음을 치며 지하철을 내려갈 때 에스카레이터가 멈춰있다. 안내문에서 절전으로 인해 잠시 운행을 멈춘다고 한다. 다른 역에 비해서 우리 동네역은 지하가 깊다. 물론 유류 폭등으로 인한 자구책이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서민은 불편하다.
멈춘 에스카레이터를 볼 때면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경제는 괜찮다. 이런 순간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대통령께서 서민들의 생활을 알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전으로 인해서 대중교통 시설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시민들의 고통을 알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기분나쁘겠지만 대통령은 모른다. 그리고 과거에 운동권 운운하는 정치인들도 모른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말마다 벌어지는 데모 때문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불편해도 모른다. 사실 데모도 이제는 다르다. 박정희 시절처럼 착취를 당한다면 모르는데, 이제는 더 누리겠다고 싸우는 투쟁이다. 좀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서로 뭉쳐서 싸우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투쟁처럼 꾸미는 사기극에 식상해진다.
작년에 슬픈 시위 광경을 봤다. 장애인들의 시위였다. 그들에게 정경들이 폭력을 행사할 때는 정말 눈물겨웠다. 적어도 이들은 생존의 문제이며, 누구나 느끼는 장애인에 대한 불편 부당한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말없는 폭력은 그들에게 무차별하게 가해진다. 이게 소위 진보니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라면 코웃음이 나온다. 그래 밑바닥 인생들이 나아지는 사회를 니들이 만들고 있다고... 이런 사회가 바로 니들이 말하는 진보적인 사회냐. 약자에게 한없이 강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강한 자들, 이익집단들에게 약한 것이 소위 니들이 말하는 진보세력이냐.
에스카레이터는 내가 항상 바쁘게 움직일 때면 멈춰있다. 진실에 침묵하는 얍삽한 진보 흉내내는 사이비 학자들처럼... 이제 박정희 시절처럼 국가가 무소불위하게 국민위에 군림하지 못한다. 서구의 영향을 받은 이기주의는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불편함을 참으라는 말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가 불편하면 국가와 민족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여파는 공공시설의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공공시설의 불편함은 곧 국민에게 현실에 닥쳐온다.
국민의 속사정을 외면하고 모르는 정치인들에게서 우리의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공공요금 인상되고, 채소값이 올라도 가슴이 철렁내려앉는 국민의 마음을 안다면 이따위 정치를 할리는 없다. 선거철만 가까이 오면 시장에 가서 국민들의 손을 잡아주고 장사꾼 행세를 하면서 과거에 자신들이 어려움을 이야기해도 국민은 더 속지 않는다. 이제는 배부른 정치꾼으로 보기 때문이다.
멈춘 에스카레이터는 동력이 멈춘 국민과 같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꾸지 못하는 ... 그렇기 때문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잠재해 있는 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 국민이 미련하고 게을러서 에스카레이터가 멈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동력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멈춘 에스카레이터가 힘차게 전진할 수 있도록 동력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다시 살만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