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TV를 켜서 채널을 돌리다보면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격투기 프로그램이 아닌가요?격투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한번씩 들어봤을 만한 이름이 추성훈이라는 선수입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추성훈이라는 사람에 대한 글이 대부분 비슷하게 시작함을 알 수 있습니다.
뭐 이런식...
재일교포 4세가 한국국적을 가지고 일본에서 차별당하며, 어렵게 살다가 한국에 와서 유도를 했지만 역시 차별당하고 돌아가 일본국적으로 귀화해 K1이라는 격투기 경기에서 우승을 하고 한국을 잊어버지리 못한다.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 '비운의 영웅',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차별받았지만 실력으로 정상에 오른...'
그의 이름과 관련하여 시작하는 글은 이렇게 시작하거나 또는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대중은 뭔가 극복하고 도전하며, 극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이런 자극적인 단어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짜~한 것을 불러 일으킵니다.
최근 추성훈은 얼마전 우승했던 K1의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합니다. 경기에서 일방적으로 이겼지만, 몸에 로션을 발라 몰수패를 당합니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일본의 대중매체는 과거 추성훈의 유도선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극적인 기사를 써대고, 한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재일교포 차별로 받아들이며, 더욱 추성훈을 끌어안는 자세를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볼때 본인에게 엄청난 시련의 기간이 되리라 생각은 됩니다만, 그의 실력과 이제까지의 노력으로 봤을 때 곧 좋은 모습, 보이리라 생각됩니다.
서설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유도복 양쪽에 일장기와 태극기를 달고 나온 추성훈을 보면서, 예전 임진왜란때 조선에 기화했던 김충선에 대한 생각이 났습니다.
■ 김충선이 된 사야가
김충선은 이제는 교과서에도 기록이 되었고, 또 한국의 KBS와 일본의 NHK에서도 다큐멘터리로 다룬 바가 있어서, 유명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때 가토 기요마사의 우선봉장으로 병사 3천명을 이끌고 부산의 동래성에 상륙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조선에 투항을 했는데, 그 투항사유가 '명분 없는 전쟁은 불가'였습니다. 조선에 투항하면서 김충선이 쓴 글은 대략 이러합니다.
"일본의 우선봉장 사야가가 조선국 절도사님에게 머리숙여 글을 씁니다. 제가 귀화하려는 것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오,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저의 병사와 무기의 튼튼함은 백만의 군사를 당할 수 있고 계획의 치밀함은 천길의 성곽을 무너뜨릴 만합니다. 아직 한번의 싸움도 없었고 승부가 없었으니 어찌 힘이 약해 귀하겠는 것이겠습니까? 다만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NHK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평화주의자 사야가'로 방영을 합니다만, 그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투항한 사야가는 일본군을 상대로 의병, 관군과 함께 78회 전투를 했고, 대부분 이깁니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온 부대가 조총을 능히 다루는 부대에서 그런지 김충선 덕분에 조선도 조총을 만들어 전쟁에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정유재란때 비교적 조선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김충선과 같은 이들이 조총의 제조법을 전수하고, 예전의 조선식의 성 건축술외에 더욱 방어력을 높인 일본식 건축술을 활용해 방어력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임진왜란때 조선을 침략했던 왜군들이 조선병사들의 칼을 일본도로 베면서 전진해 왔다는 이런 엽기적인 수준의 상황은 끝낸 것이죠.이러한 공로로 선조는 그에게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주고, 김해 김씨의 성을 내립니다. 김충선을 시조로 하는 김해 김씨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한국 내에 독특하게도 일본인을 시조로 한 성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워낙 전쟁에 능한 장수여서 그런지 그는 평생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인조때 터진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그리고 이어서 터진 병자호란에까지 참전합니다. 그게 평화주의자였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그는 후손들에게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지말고, 그냥 농사 지으면서 살 것을 권유하고 그리고 틈틈히 시간될 때 공부를 해 사람답게 살 것'을 권합니다. 일본에 두고와 엄청난 복수를 당했을 부모와 아내에 대해 쓴 글은 눈물로 가득합니다.
최근 TV에서 우리사회의 여러모습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면, 농촌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여인들과 한국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동남아인들이 나오곤 합니다. 어릴적 보지 못했던 풍경인지라 낯설기는 합니다만, 이걸 낯설어하는 제가 이제 이상한 것이겠죠.
우리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민족의식도 좋지만, 인간으로서 가진 보편성과 마음,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존중받고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우리는 언제 이루어질까요?
사야가는 김충선이 되었고, 그리고 추성훈은 결국 아키야마 요시히로가 되었죠....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요.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한 인간으로 살아왔던 흔적에 관심이 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