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길에 초등학교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다 준비됐으니깐 나오기만해]
궁금한거 생기면 지랄병이 돋는지라 곧장 통화버튼을 눌렀다.
뭐가 준비됐냐며, 어딜 나가냐며 묻는 내게 친구의 대답은
아주 간단 명료했다. 소개팅이란다.(오....-_ㅡ+)
'다들 친구를 버리려 맘을 먹었나?'
고맙긴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맘으로 나를 추천하는진 모르겠다.
도대체 나를 뭐라고 소개했냐고 물었더니 직장도 다니고
차도 있다고 말했다길래 다시 한번 물었다.
"그게 다야? 성격이라든가 외모라든가 그런건?"
"미친새끼-" (우리사이엔 거의 대명사에 가까운 단어다.)
그런거 말하면 마이너스요인이라는 그자식의 윽박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애 이뻐?" "선생님이야."
"성격은 어때?" "중학교 선생님이야."
"애는 착한거 같아?" "선생님이라니깐!!"
그정도면 너한테 과분하니깐 닥치고 만나보라는 친구의
과격한 멘트에 더이상 묻지 못하고 알았다고 말했다.
한가지 씁쓸했던건 서로에 대한 정보라곤 직딩이라는거
밖에 없는데 이딴 이유로 만남이 성사되니 나이를 실감하는
계기인듯 싶었고 친구들끼는 남,여 나이를 합쳐서 50을
넘으면 소개팅이 아니라 선이라는 농담에 웃음이 났다.
2006년 12월 23일 토요일(성탄절 분위기는 그닥-)
원래 인증된 싸가지가 나라지만 무슨 깡따구로 서울은
길모르니깐 네가 부천으로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어차피
토요일은 쉬니깐 내가 가겠다고 흔쾌히 응하는 그녀가 고맙다.
허나- 고마움도 잠시! 30분이나 깔싸하게 지각하곤 저만치서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두리번 두리번 돌리는 그녀에게 다가가
처음 건냈던 말이 "너 죽을래?"였다.(역시 난 싸가지야.)
먼저 도착해서 멀뚱히 서있기 거시기해서 극장가서 예매했다는
내게 미안하단 미소를 날리는데 언제 그랬냐는듯이 화가 풀렸고
저녁식사까지 계산하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생각마저 들어
후식이라도 대접하려 평소엔 가지않는 스타벅스에 들렸다.
주문을 하면서 어느 자리가 좋을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나의 인생은 완전 재미없는 블랙 코메디에 가까운건
진작에 알았지만 왜 당신이, 그날, 그시간에, 그곳에...
물론 내가 부천군주도 아니고, 해태쇼핑건물 사장도 아니고,
스타벅스 지점장도 아니라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기분이 썩- 안좋은건 사실이다.
간만에 큰맘먹고 비싼 커피값까지 물고 왜 밖으로 내몰리는
기분으로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결국 내 문제겠지. 뭐-)
그렇게 서로 나쁘지 않은 인상을 남겼고, 서울지리라곤
개뿔도 모르지만 네비의 힘을 빌려 집까지 바래다 줬다.
도착해서 내려줄 때까지 잘 몰랐는데 네비가 없으면 거의
미아상태인 내가 네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눈에 익은
상암경기장을 지나, 성산대교를 건너, 외각 순환 고속도로를
타고 혼자서 되돌아 오는데 머리에 생각이 가득차 오른다.
분명 라디오 주파수는 맞춰져 있었고 볼륨도 작지 않았는데
노래도, 게스트의 음성도 들리지 않는다.
네비의 빨간 지시선은 온데간데 없지만, 희미한 이정표도
무시한채 능숙한 솜씨로 노란 나트륨등이 줄지어 있는 도로를
따라 잘도 달렸다.
열심히 노력하면 나도 친구들처럼 기념일을 가질 수 있을꺼라,
조금 더 노력하면 나도 남들처럼 주말에 집에 있지는 않을꺼라,
생각하면서 들떠야 하는데 정말로 모르겠다.
주제넘게 눈이 너무 높아진거 아니었냐는 주선자의 주장도
틀렸고(이보다 더 좋은 소개팅자리는 없을만큼 좋은 사람인걸?)
혼자 너무 오래지내서 연애감이 떨어진거 아니냐는 영환이의
걱정도 아닌듯하고(처음 봤는데도 너무 재밌다며 말을 놨는걸?)
무엇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미친 이정훈의 말을 빌리자면 나보고 인생막장이라던데.
어쩌면 히든된 막장까지 클로버 세븐정도밖에 안될지도
모르지...
휴- 스타크레프트리그나 열심히 응원해야겠다.
" 부활하라!! 광민!! 기다려라!! 마틀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