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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나드는 한국말과 일본말

김현정 |2007.01.18 13:46
조회 87 |추천 0


서울의 후배가 ‘간지난다’는 말이 우리 젊은이 사이에 유행이라고 했다. 사전적 정의는 없지만 ‘멋지다’ ‘폼난다’ ‘느낌이 좋다’와 엇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모양이다. ‘느낌’을 뜻하는 ‘간지(感じ)’와 우리

말 ‘나오다’가 결합한 말인데 일본에 실제로 ‘간지가데루(感じが出る·느낌이 난다)’란 말이 쓰이니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일본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후배 말을 듣고 내 첫 반응은 “촌스럽다”였다. 청년시절 구세대 아저씨들이 사용하던 “오늘 조시(調子·몸 상태) 어때?”라든가 “기름 만땅(滿tank·탱크를 가득 채움)” 같은 일제시대 잔재를 듣는 듯했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 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시대에 뒤진 느낌 때문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신문사에서 사용하던 ‘도쿠다네(특종)’ ‘나와바리

(담당 영역)’ ‘요마와리(야간 순회 취재)’ ‘하리코미(잠복 취재)’ 등 일본말도 우리 세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한 듯하다. ‘간지난다’에서 말 뜻과 정반대로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는 것을 요즘 젊은이는 아

마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간지난다’라는 말은 아저씨 세대의 ‘조시 어때?’란 말과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이 한국에 문화를 강제하던 시대에 유입된 말이 아니라 대등한 문화접변시대에 유입된 일본어라는 점이다. 기자가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니메’ ‘이지메’와 같은 신조어·유행어나 ‘테레비’ ‘라지오’ 같은 일본식 영어가 아닌 일본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한국 유행어로 자리잡은 것은 이례적이 아닐까 한다.

 

 ‘역사적 시비(是非)’에서 탈피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최근 일본이 언어의 측면에서 한국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둘러보는 것도 참고가 될 듯싶다.


 한참 전 이 코너에서 ‘맛있어요’란 우리말이 ‘마시소요’란 발음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 일이 있다. 겨울연가 때문에 ‘사랑해요’란 말도 유행한 적이 있다. 일본에도 ‘우마이’ ‘스키다’ 등 같은

느낌을 전하는 언어가 있다. 그럼에도 구태여 한국어를 쓰는 것은 ‘우마이’가 전달할 수 없는 한국 맛의 강렬함, ‘스키다’가 전달할 수 없는 겨울연가의 아련함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음식의 세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가루비(갈비)’ 대신 식당에서 ‘아바라보네(肋骨)’를 달라고 하면 종업원이 “엣?”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쇼쵸(小腸)’ 대신 ‘고부창(곱창)’, ‘한국 레타스’

대신 ‘상추’란 말을 쓴다. 대형 식당체인은 최근 ‘육케(육회)’라는 신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바사시(말고기 육회)’란 말이 있듯이 ‘규사시(쇠고기 육회)’란 말을 사용해도 되는데 ‘육케’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싱거운 답이지만 ‘육케’는 ‘육케’이기 때문이다. 같은 날고기를 사용한다고 양념이 들어간 육회를 ‘규사시’라고 표현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선 ‘간지난다’ 역시 ‘폼난다’ ‘멋있다’가 아니라

그저 ‘간지난다’일 뿐이다. 문화의 세계에서 국경은 허물어졌다. 신세대에게는 역사적 선입관도 없다. 누가 우수한 문화로 더 많은 언어를 전파하느냐… 이제부터 ‘진검승부’(‘신켄쇼부’를 한자 그대로 읽은 일본말) 아닐까.


 

선우정 조선일보 특파원 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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