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해외주재원들의 체험단 펴내... `현지인 마음을 여는 법` 등 생생한 현장 보고서

“러시아인은 빵 없이는 살아도 꽃 없이는 못 삽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엔 무조건 한 달 접대비를 모두 투자해서라도 거래처나 대리점 여직원에게 꽃과 샴페인, 초콜릿을 선물하세요. 업무 협조를 잘 받으려면요. 꽃송이 수는 행운과 기쁨, 축하의 숫자인 홀수로 하고요.”(모스크바사무소의 이동훈 차장)
“중동 사람은 협상할 때 10%의 가능성만 있어도 ‘예스(yes)’라 답합니다. 때문에 ‘예스’라는 답을 들어도 나중엔 협상이 깨질 수도 있어요. ‘인샬라’(신의 뜻대로)라는 답변은 99% ‘노(No)’라고 이해하면 됩니다.”(두바이사무소의 조재병 과장)
전문 역량, 뚝심, 열정으로 무장하고 세계시장에서 기치를 높이고 있는 ‘글로벌 전사(戰士)’의 생활 사투기(死鬪記)가 나왔다. 현대상선은 전세계의 4개 본부, 23개 법인, 57개 지점에 110여명의 해외 주재원을 파견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현대상선은 14개국 20개 지역에서 수년간 근무한 33명의 체험담을 모아 ‘해외주재 보고서’를 펴냈다. 단순한 업무나 실적 보고서가 아니다. 현지인과 비즈니스할 때 유념해야 할 점, 일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법, 일하거나 생활하면서 곳곳에서 만난 변수를 극복하는 법 등 몸과 마음으로 해외에서 겪은 경험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라
같은 나라 사람이 같은 말로 해도 어려운 게 비즈니스 협상이다. 하물며 국적 다르고 언어 다르고 피부색 다른 사람끼리 벌이는 협상이 쉽게 이뤄질 리 없다. 중동지역에서 협상을 할 땐 안건부터 꺼냈다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단다. 상대방의 건강이나 안부를 묻고 대화가 자연스러워질 무렵, 안건을 꺼내야 한다.
두바이사무소의 조재병 과장은 열 번이 넘는 미팅 끝에 터미널 사용 계약을 맺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첫 번째 미팅에서 예상액의 120%를 내놓았는데 상대방이 예상액의 80% 정도의 안(案)을 낼 것이란 기대와 달리 예상액의 10%를 내놓더라는 것. 조 과장은 “우여곡절 끝에 협상이 이뤄지긴 했는데 중동지역에선 협상 상대자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건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협상 자체를 즐기는 기분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안을 내놓을 때도 한번에 여러 가지를 내놓기보다는 협상할 때마다 하나씩 제시하는 게 유리한 입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현지인의 국민성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에서 비즈니스할 땐 냉정이 최고의 미덕이다. 3년째 일본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계·경영 분야의 김용해 부장은 “일본에선 업무상 문제가 생겼을 때 큰소리치며 흥분하면 몰상식하고 자기 억제를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다”며 “노여움이 있더라도 얼굴로 표현하지 말고 말씨도 변치 않고 태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현지의 종교나 관습을 이해하는 것도 글로벌 전사가 챙겨야 할 필수사항이다. 이슬람교인은 이슬람력으로 매년 9월이 되면 한 달간 단식을 한다. 저녁 예배 이후 약간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으나 배고픔을 면할 정도로 먹을 뿐이다. 이 기간 중엔 오후 2시면 업무가 끝난다. 오후에 현지 업체를 방문했다가는 홀대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두바이사무소 조재병 과장은 “이 기간에 이슬람 국가로의 출장은 가능하면 자제하라”고 권한다. 단식하느라 허기가 진 인부의 하역 능력도 떨어지고 작업도 지연되므로 이 기간에 이슬람 국가에 입·출항하는 선박 스케줄 관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연애하듯이 비즈니스를 하라
비즈니스가 어려운 것은 사람 마음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연애(戀愛)와 별 다를 것도 없다. 해외 주재원들이 말하는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아보자.
▲ 중동에서 아랍 여성 사진을 함부로 찍다가는 경찰에 연행될 수도 있다. 사진은 요리하는 아랍
여인들.
모스크바사무소의 이동훈 차장은 러시인과 비즈니스 상담을 할 땐 러시아의 뛰어난 과학기술, 세계 최고 수준의 발레와 음악, 문학을 칭찬하라고 권한다. “톨스토이나 푸슈킨의 작품이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언급하고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군대를 물리친 러시아의 역사를 숙지하고 칭찬하는 것도 훌륭한 비즈니스 기술”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선 보드카를 잘 마시는 것도 업무 능력에 속한다. 보드카를 마실 땐 ‘한 방울도 남기지 말아라, 그건 재앙을 남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까지 있다. 이동훈 차장은 “러시아 업체가 주최한 만찬이나 러시안과의 술자리에 가서는 러시아말로 건배 제의를 할 수 있는 센스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슬람 사우나 하맘(Hammam)에 가면 익은 홍합이 입을 벌리듯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어색한 사이라도 목욕탕에 한번 같이 다녀오면 허물 없어지는 것은 인류 공통인가보다. 한국식 접대 문화가 주로 술자리나 골프장에서 이뤄진다면 러시아에선 ‘바냐(Banya)’라는 사우나에서 이뤄진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서 일을 할 땐 ‘사우나’ ‘보드카’ ‘꽃’, 이 세 가지를 늘 머릿속에 두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모스크바사무소의 이동훈 차장은 “오랜 시간 동안 사우나를 같이 하고 보드카를 마시면서 어려운 사업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려운 부분도 손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언제라도 예약을 할 수 있는 ‘바냐’ 몇 군데쯤은 알아두어야 한다”고 했다.
비즈니스 파트너의 마음을 사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면 그네들의 생활 습관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프랑스나 네덜란드 같은 유럽 지역에서는 낯익은 상대 이성과 만나거나 헤어질 때 볼을 마주치며 뽀뽀 인사를 한다. 네덜란드 법인의 조원기 차장은 “네덜란드에선 얼굴을 웬만큼 익힌 사이라면 이성끼리 만나고 헤어질 때 오른쪽, 왼쪽, 오른쪽 이렇게 뺨을 세 번 부딪치는 키스를 한다”며 “입으로 ‘쪽~’ 소리를 내면서 볼만 부딪치는 것인데 이럴 때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뜻하지 않은 상황, 이렇게 해결해라
글로벌 전사들은 낯선 땅에 가서 비즈니스 현장에서 뛸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생활을 해야 한다. 일상사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곳곳에서 터지기도 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
▲ 이슬람 국가에선 단식 기간 중 선박스케줄 관리에 유념해야 한다. 사진은 두바이
항구.
구주본부(런던)의 정경인 마케팅과장은 인터넷과 전화선을 연결하려고 텔레콤 회사 직원을 불렀지만 “라인을 깔기 위해 별도의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추후 연락이 갈 것이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날부터 2주일 동안 매일 해당 부서로 전화를 걸었지만 추후 작업에 대한 확인을 못 받았다. 정 과장은 “영국에서 이럴 경우, 전화를 걸기보다는 편지나 이메일을 써서 보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중동 국가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이 아랍인이라면 경찰서에 가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현지인과 경찰 간의 긴밀한(?) 유대 관계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생존 비결’까진 아니어도 알아서 생활에 득(得)이 되는 생활지침도 있다. 프랑스 르 아브르 지역에 살고 있는 프랑스법인의 한순구 과장은 “아파트는 대부분 중앙난방식이고 현지의 여름 기온이 낮기 때문에 프랑스에 살 때엔 전기장판 등의 난방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동서남아본부 진형철 과장은 “여행자가 무관세로 국내 반입할 수 있는 담배 양은 정확히 19개비이므로 담배 한 갑을 소지하고 입국하다가 세관에 적발돼 곤란을 겪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