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며 살아왔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들이
언제나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나에게 행복한 만족감을 주었지만,
흔히들 말하는 '사회적인 성공'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기회는
극도로 제한적이 되어만 갔다.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의 노랫말 처럼,
전망좋은 직장과 가족간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우리사회에서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라면은 나는 성공과는 정말 거리가 멀수 밖에 없는 삶을
준비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나는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해가며
20대의 절반을 보내왔다.
2002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뜻하지 않게 찾아온 미국유학의 기회는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수많은 재능들, 즉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배우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처음왔을때를 돌이켜보면은 아직도 웃음이 난다.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이라지만, 영어한마디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고
무작정 건너와서, 여기치이고 저기 치이고,
한마디로 온통 시행착오로 얼룩진 그런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은 그런 수많은 시행착오들 덕에 비로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에대한 청사진을 그릴수 있었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을 수 있게 되었다.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미술에대한 열정을 뒤늦게 태울수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막연히 바라만 보아왔던 사진에 대한 꿈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늘 무엇인가 부족했다.
나에 대해서도 부족했고, 내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만족할수 없었다.
저 멀리 보일듯 말듯한 무엇인가가 있는데, 전혀 잡히지를 않았다.
가을학기가 시작하고 며칠동안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즈음에는 더욱 심해졌다.
매일밤 잠들기 전에 내 인생을 죽는 그날까지 계획하고 잔다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잠을 못자고, 밥을 제대로 못먹으니 피부역시 온통 스트레스성 트러블이
점령해버렸고, 기운없이 축져진 어깨밑으로는 나잇살과 육체적으로
편한 미국생활에 길들여진 아랫배만이 보일뿐이었다.
그때가 졸업을 2학기 남겨놓았던 때였다.
9월달이었다.
학기가 막 시작되고, 남들은 새학기라고
엄청 바쁜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럴수 없었다.
졸업후에 대한 불안함들...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시점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더욱 집중을 할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유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번 유럽에 대한 생각이 들고 나니 도무지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수없이 스스로를 다잡았지만, 어디선가 끝없이 밀려오는
유럽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았다.
결국
길고 긴 인생에서 3달 늦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후 결심했다.
한번 결심을 하니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솔직히 준비를 할 것도 없었다.
아니 할 것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 것이 없었다.
출발 일주일 전에 비행기 표를 샀고, 유레일 패스는 룸메이트에게 유럽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남들 다 가지고 가는 그 흔한 가이드 북 한권없이, 런던의 건축물을 정리한
노트한권과 카메라 그리고 옷가지를 대충 꾸려서 떠났다.
3개월 여정치고는 너무나 간단했다.
하지만 놀랄만큼 걱정이 되지를 않았다.
걱정따위를 하려고 이렇게 힘들게 결정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어디선가 끝없는 자신감이 솟구쳐 올라왔다.
28살이면은 아직 젊다.
아직 새파랗게 젊고, 튼튼하다.
공항에서 가방을 한번 잃어버려도 괜찮고,
지하철에서 강도를 한번 당해도 좋았다.
오늘 지갑을 잃어벼렸어도
아직 닥치지 않은 내일 점심을 걱정하지 않을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올때는 무엇인가 바뀌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품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를 알수있는 기회를 잡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거면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