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がニガテな子ども 사람이 서툴렀던 아이
어렸을떄부터 사람 대하는 게 서투른 아이었어.
집단 행동같은거 싫어했으니까 유치원 같은 곳은 정말 싫었어.
매일 아침 울었어.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있는 쪽을 좋아헀었어.
왜 그랬을까? 정신이 들고 보니 벌써 그렇게 되었더라구.
그래도 유치원에 가면 울거나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는 일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어.
사건을 일으켜서 주목받거나 하는 게 싫었으니까.
귀찮지 않아? '왜 울고 있니?' 라든가 여러 소리 듣게 되는거.
어른스럽게 있으면 둘러싸일 일도 없으니까.
될수있다면 혼자 냅뒀으면 했어.
재수없는 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유치원에서는 계속 '빨리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라는
것만 생각했었어. 집에 도착하면 정말 안심했었어.
그랬었으니까.
소학교에 들어가서 이지메 당했던 건
어떤 의미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어려가지 나쁜 일들을 당했었고, 도와주는 친구도 없었어.
그래도 신기했던 건 그런 상태에서도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어.
나라는 사람은 뭔가 냉정한 면이 있어서.
거기서 저항하는 것도 귀찮아, 같은.
저항하면 쓸데없는 재미를 준다는 것도 알고 었고.
그럴꺼면 맘대로 하든지 말든지 하고 생각했어.
그 후로는 그런 심한 짓은 당하지 않았어.
그래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우호적이 되었어.
그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혼자서 삐죽하게 있는게
눈에 더 잘 띄고 이지메 당하거나 선생님한테
한마디 듣거나 바꿔 말하면 귀찮겠구나 싶었던거지.
평범하게 무리지어 있는 편이 눈에 안띄겠지 싶어서.
소학교 6학년때 임간 학교에서는 레크레이션 같은 걸 했었어.
담력시험에서 놀래키는 역이었어. 계속 그늘에 숨어서
학교 학생이 지나가면 놀래켜주세요. 라고 지시받아서.
그거 절대로 놀래키는 역이 무섭다고 생각해.
어둠속에서 계속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니까. 정말 무서웠어.
'이러니까 집단 행동이 싫단 말이다'라고 생각했어.(웃음)
야구를 시작했던 건 하라상(元 쿄진군의 4번타자. 현재는 야구해설가. 니노의 야구 유니폼 등번호 8은 물론 현역 떄의 하라상의 등번호) 이 너무 좋았다고 하는, 단지 그것 뿐이었어.
그래서 거기서는 집단 행동도 팀워크도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거구나 하고 생각했었으니까.
하라상이 그런식으로 해서 팀 메이트와 야구를 하는 것을
봐왔었으니까. 그걸 그대로 똑같은 걸 하는것 뿐이라고 생각했어. 연습은 엄격했었어 -
여름방학 중인데도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했었어.
날씨가 찌는 듯 했으니까 엄청 힘들었어.
그 연습 중간에 마시는 차가 너무 맛있었어.
스태인레스로 되어있는 물병 있잖아.
거기다가 엄마한테 부탁해서 거기게 차가운 차를 넣어서
그걸 가지고 연습하러 갔었어.
그렇게 엄격했는데도 왜 안그만두었냐고 하면
"왜 그만두는 거냐?"하고 혼나거나 이것저것 어수선하게
하는 것도 귀찮았으니까. 뭔가 그런 타입이야 나는.
그래도 결국은 야구를 아주 좋아했었으니까.
첫사랑은, 어떤 거였을까나...'예쁘다'하고 생각했던 애는 있었지만 그냥 그것뿐. 별로 무언가를 해야지 라든가 생각하지 않았어.
처음 러브레터를 받았을때가 5학년때. 그다지 기쁘진 않았어.
반대로 귀찮게 되는 것이 싫어서 답장도 하지 않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나쁜 짓을 한거지.
그 여자애도 그걸 끝으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 ジャニーズJrになる 쟈니즈 주니어가 되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얼마 전에,
사촌이 '사진 좀 찍자'라며 갑자기 집에 왔었어.
내 주변에는 누나를 시작으로 여자뿐이라서 말이야.
어렸을떄도 그림책도 "신데렐라"같은 거 밖에 없었어.
그게 갑자기 '사진 찍자'가 된거야.
이유도 몰랐어. 멋대로 사진 찍게 했던게 기억나.
그게, 내 인생을 바꿔버리게 할 줄은 몰랐었지.
6월에 '오디션에 와주세요'라는 연락이 왔을때도,
뭐가 뭔지 몰랐어. '귀찮아-' 라는 것 뿐이었어.
거기서 엄마가 '5000엔 줄테니까 '라고 하지 않았다면
절대 안갔을 꺼라고 생각해.
오디션에서는 제일 뒤에서 흔들거렸을뿐.
춤출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럴 마음도 없었고.
그 뒤에 한 사람씩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이름을 말하거나 했는데, 모두들 굉장히 열심히 해서 말이야.'잘 부탁드립니다!'라든가 말하던걸. 나는 평범하게 이름을 말했을뿐. 전부 30분 정도였으려나. '뭐지?'하고 생각했었어.
그랬더니 3일 정도 후에 전화가 와서.
오라는 장소로 가니까 잡지 촬영이었어.
옷을 갈이입게 하고 사진을 찍고.
'니노미야 군은 어떤 남자애에요?'라는 걸 묻거나 해서.
'몰라 그런거'하고 생각했어.'존경하는 선배는?'이라든가
'발 사이즈는?'이라든가.
그런거, 막 만났을 뿐인 남자애한테 물어도 당사자는
재미있기는 커녕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 이후로,'인터뷰는 안맞아'하고 오랫동안 생각했었어.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안맞아.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걸.
이상하게 말하고 나서 몇년 후에 다시 읽어보면
장난 아니게 창피해.'우왓 이 자식, 말해버렸어-'라면서 말이야.
그 당시의 기분으로 말할 것같으면,
나같은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직접 말하는게 낫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어.
나에 대해서 확실한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열심히
이야기 하는 게 싫었는지도 몰라.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도, 일이 오면 제대로 가곤했어.
왜 였을까? 그만두려고 생각하면 그만 둘 수도 있었는데.
분명히 폐끼치는게 싫었는지도 몰라. 의무감. 그런게 컸었어....
어딘가에서 '좋아'라든가 '즐거워'라는 느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맨 처음 팬레터를 받았을때는 일을 시작한지 반년후.
그건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왜냐면,굉장히 기뻤었는걸.
우리 동기중에서 내가 제일 늦게 받았으니까.
평범하게 '응원하고 있습니다.'같은 편지였지만, 기뻤어.
신기한 일이야. 러브레터는 전혀 기쁘지 않았었는데.
★ 芝居 -Jr時代- 연기 -주니어 시절-
주니어가 되고부터는 여러가지 오디션을 보게 했어.
그래도 나는 계속 떨어지기만 했어.....
겨우 붙었던 것이 "STAND BY ME"였었어.
뭐, 아마도 사무소 덕이었겠지만, 나로서는 '이겼다~'같은 느낌.'
무대에 서고 싶다.'라는 것보다도 어쨌든 오디션에 붙고 싶었어.
전패였으니까. 어떻게 봐도 그건 심했지.
실제는, 붙었을 때 부터가 큰일이었지.
연기라는 거 처음 해보는 거였고, 永山상(후지테레비의 명 디렉터.'도쿄 러브스토리' '한지붕아래' '롱 베케이션' 등 수많은 대 히트 드라마를 제작했다. 니노가 출현한 드라마 '눈물을 닦고'(00년) 에도 永山상이 연출) '넌 고양이 등이구나-'은 등을 팡팡 쳐 주셨고.
거기서 처음으로 깨달았어. '나, 고양이 등이구나..'라고 (웃음).
부모님한테도 들은 적 없으니까.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팬들에게도 지적당한 적이 많게 되자 엄마까지도 "고양이 등 교정기"같은 걸 사버렸어. 이제는 늦었다구. 그거 결국 쓰지 않고 있어.
무대는. 제대로 역할의 기분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 그냥 무대 위에서 소리지르고 있을 뿐.
뭐가 뭔지 알수가 없어서 도망가고 싶었어.
도망가지 않았지만 말이야.
난 커다란 일에 대해서는 도망가지 않았어.
작은 곳에서는 도망가기만 했었는데.
그떄는 연기가 '즐겁다' 라든가 '어렵구나' 라는 걸
느끼기 이전의 상태였다고 생각해.
연기하면서 느낀 것은 '어쨰서 단지 소리치고 있을 뿐인 어린애를 보기 위해서 돈을 내는 사람이 있을까?
어쨰서, 이렇게 훌륭한 극장을 빌리는 걸까?'라는 것.
그게 참 의문이었어.
마지막 공연이 끝났을 때에는 달성감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죄송하다'는 기분이 더 컸어.
몇년후에 '푸른 불꽃'(03년 3월 개봉한 니노 주연영화.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게된 고교생 역)을 찍게 되었을떄 나니가와 상('푸른 불꽃'의 감독. 세계적인 연출가. 니노 주연 무대인 '시부야에서 멀리 떨어져'에서도 공연) 이랑 만났잖아.
그 떄 '너는 리버 피닉스다'라는 소리를 들어서.
이런 순 일본인의 얼굴을 두고.
그래서 '그러고보니, 무대에서 내가 연기했던
크리스를 영화판에서는 그 사람이 연기했었네요'라고,
그렇게 말하자 '그렇지!'라며 굉장히 득의양양해졌어.(웃음)
무대가 끝나고 바로 드라마 "아마기코에"(TBS계.98년 1월 1일 방송. 다나까미*상이 연기하는 유년시절의 추억의 소년 多*를 연기했다) 에 출연하게 되었어.
어른들 밖에 없는 곳에서 어린애는 나 혼자.
머리를 빡빡밀게 하고 산속의 로케지에 끌려가서 다음날까지 촬영해서 그날 저녁시간에. 사람이 엄청 많았어.
그래도 나 '알게 뭐야-'라며 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었어.
그랬더니 프로듀서가 와서 '내일 너 혼자만의 신을 찍기 위해서
이 정도의 사람이 움직이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어.
그때가 처음이었을꺼야.
일에 대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이란 생각이 든건.
긍정적으로 책임감이 생겨난 순간이었어.
계속 '폐끼치지 말아야지'정도의 기분으로 일해왔었으니까.
촬영은 계속 산속에서 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제대로 해냈어.
그때부터 드라마에 혼자 출연할때가 많아져서 (드라마 '二十六夜參り’TBS계.98년 8월 17일.특공대의 청춘을 그린 스페셜 드라마.'아키마헨데' TBS계.98년 10월~12월 방송.공연은 나까무라 **상 등) 연기하는 것도 좋아지게 되었어.
연기라는 건 좋건 나쁘던 내 손에서 나와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평가가 전부, 나 자신에게 돌아오잖아. 그것도 좋아했어.
알기 쉬우니까. 그렇지만 'あぶない放果後'(테레비 아사히계. 99년 4월~6월 방송.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가 된 우등생과 반항아와의 코메디. 니노는 우등생인 勝幸, 칸쟈니 8의 시부타니 스바루군이 열등생인 하루를 연기했다) 7kg나 빠져버려서 실패도 여러가지 있었어.
실패야 그런건.
7키로나 빠져버리면 체형이며 얼굴까지 확실하게 달라져버리잖아. 다음 신에서 갑자기 살이 빠져버렸네 같은.
주연이니까 바빴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나 스스로 확실히 콘트롤 하지 않으면 안돼.
그 시절에는 우등생역을 계속 했었어.
뭔가 나 = 공부 잘한다. 같은 이미지가 붙어버려서 학교에서도 친구들한테' 이 문제 알려줘'라고 했었는걸.
'드라마 에서만이라구!'라면서.
이쪽은 일떄문에 학교도 못가고 있는데, 좀 봐줘 라고 생각했었어.
'あぶない放果後'도 대본을 받았던 그 시점에서 '나는 하루역이다.'라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대사도 하루쪽을 의식해서 읽거나 했는데 결국은 우등생인 勝幸을 맡아서.......... 조금은 쑈크였어.
연기가 좋았더 만큼 쟈니즈 주니어로서 나오는
버라이어티에는 흥미가 없었어.
솔직히 '내가 없어도 되잖아.'정도로 생각했었어.
콘서트할때 라든가 혼날때는 언제나 '너 대신은 얼마든지 있다'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내 대신이라고 해도 쟈니즈 주니어잖아.'라는 식으로 생각했어.
좀 분위기를 타고 착각했는지도 몰라.
여러 드라마에 나가게 된 덕분에 여러 연기자분들과 만났어.
모두들 매력적이었어.
그 영향으로 '연기자라고 하는 사람들'에 흥미가 생겼어.
거기서 어째서 '아메리카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
로쟈-코만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감독이자 프로듀서.프란시스 F코포라. 마틴 스고세시. 제임스 카메론 등, 현재 제 1선에서 활약하는 감독들을 '코만스쿨 졸업생'이라 불리운다.) 의 영향도 있었을꺼야.
아메리카에서 감독이나 영화 제작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연기자가 될 생각으로
그쪽에 가도 일 같은 거 들어올리가 없었고.
그렇다면 만드는 쪽의 공부를 해서 그쪽 일을 하는 쪽이
건설적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하다보면 연기자들의 기분도 알 수 있을꺼고.
99년 12월로 전부 그만두고, 아메리카에 가기로 결정했었어.
돈도 확실히 모아두었었고.
★ 嵐デビュー
그랬었는데 9월에 하와이에서 '이번에 데뷔하는 아라시 입니다.' 라고 하는 거야. 그건 인생 최대의 핀치였어.
그것도 배같은 걸 탔었으니까, 엄청 배멀미 했었고.
나, 진짜로 배는 안돼.
"신선조"('아라시의 와자아릿'(후지테레비 04년 4월~05년 3월 방송) 중의 코너. 신선한 재료를 찾아서 멤버가 여러가지 생선잡기와 농업을 경험하는 기획. 니노는 배멀미가 심하다) 할 떄도 장난 아니었으니까.
하와이에서 '데뷔한다.'라는 사실을 알았을떄는
'이제 일본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라고 생각했어.
돌아가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잖아.
리포터들이 '아라시가 되니까 어떄요?'라든가 엄청 질문해오면
'기쁩니다!'라고 대답하는.
그때의 내 기분은 누구도 모를꺼라 생각해.
내 의지랑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서버렸으니까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게 되었을떄의 기분.
그런 떄에는 웃게 되더라. 웃을 수 밖에 없게 돼.
'난 왜 이리 안되는거야.'라면서.그래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정도까지 거부반응을 보였던건 이유가 한가지 더 있어서.......
그 당시에는 아메리카에 가려고 생각했었으니까,
내가 데뷔한다는 건 전혀 머리 속에 없었어.
레코딩이라든가 안무 연습을 할때도
'평소랑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기는 했었지만서도.....
그래서 데뷔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안에서
거기에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게 싫었던거야.
모처럼 데뷔시켜준거니까 이미 활약하고 있는 선배들에게도,
내 모습을 보고 있을 후배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그룹이 되어야 하잖아.
주니어가 되어서 나름대로 몇년을 일해왔으니까 책임감같은 것도 생겨나기 시작했었고 말이야.
맨 처음, '어떻게 하면 그만둘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야. '나같은 정신상태인 녀석이 있다면,
아라시에게 폐끼치는 거야.'라고 생각했어.
'폐끼치고 싶지 않아'라는 기분으로 일해왔었는데,
그 결과로 가장 커다란 폐를 끼치게 된건지도 몰라.
그게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뭘까? ..
역시 책임감같은 게 있긴 했지만.
8만명의 팬과 악수했을때 '역시 그만두겠습니다.'라고는
말 못한다구. 야구에서 외국인 구원병 같은게 아니니까.
아라시가 되고나서 처음 출연했던 음악 방송에서 백을 서고 있는 주니어 모두가 따라오는 것을 보았을때도 마음 속에 무언가가 다가오는 게 있어서. 조금 감동했어.
더이상 꼴사나운 모습은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어.
또 다른 하나는 아라시라는 그룹의 좋은 분위기.
이 멤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꺼라고 생각해.
5명이서 있을때가 너무 즐거웠어.
지금까지 사람이랑 얽힌적이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느낀
있기 편한 곳이었어.
아라시가 되어서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할 떄도 ('눈물을 닦고' 후지테레비 계 00년 10월~12월 방송. 화재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도 중태라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불행에 닥친 형제가, 에구치 요스케 상이 연기하는 참견많은 대공의 집에 살게 되는 이야기.니노는 여기에서도 공부잘하는 장남역. 오프닝 테마는 아라시의 "칸케키칸케키노 아라시아메') 혼자서 대기실에 있으려니까 안정이 안되더라구.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섯명이서 있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던 거야.
뭔가 느낌이 틀려서 놀랐어.
주니어 떄는 혼자일때가 좋았었으면서. 크게 달라진거지
"HERE WE GO!"투어를 할떄는 멤버 전원이 아침까지
얘기했었거든.모두들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어.
마음 속으로 '아라시 좋아! 대단해!'라는 소리가 울려퍼졌어.
'아라시다움'이라는 것에서 모두들 각자 고민도 하고
생각도 했지만, 내가 볼때는 다섯명이서 모여서 그런 걸
이야기한다는 자체로 충분히 '아라시답다'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아라시다운건 ~한 거야'라고 선명한 대답을
듣는 것 보다도 100만배 기뻤어.
스스로 그걸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앞으로도 아라시는 나쁜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꺼라고 생각했으니까.
★ 嵐の音楽、オレの音楽 아라시의 음악, 나의 음악
데뷔하고 나서 1~2개월 정도 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뒤에도, 음악에 대해서는 조그만 반항을 했었어.
'이렇게 하는 편이 절대로 멋진데, 왜 못하게 하는거지?!' 라고.
3번째 곡을 낼 때쯤에는 ('태풍제너레이션' 00년 7월 발매)
내가 생각하는 방향성과 아라시의 방향성이 완전히 틀리다는 걸
분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
그렇지만 그건 다른 멤버들도 그랬었는걸.
그만큼 콘서트의 솔로에서는 '좋아하는 걸 하자!'라고 하는,
그런 분위기를 느꼈어.
아라시로서 하는 음악이라는 건 솔직히,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가지 있거나 하지만, '반대로 그런 제약을 즐기자구' 라는게 우리들이야.
'우리들부터 즐겁게 가는 거야'라며. 그건 중요한 일이야.
우리가 즐거워하지 않는 걸, 팬들이 즐거워할리가 없잖아.
좋아하는 건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나도 곡을 만들어서 콘서트에서 부르거나,
밖으로 노래하러 나간적도 있으니까.
역앞이나 거리에서 노래하는 건 재미있어.
'여자애가 서서 들어주는구나' 라든가
'이건 남자들이 좋아하는군'이라든가, 바로 알 수 있어.
작년 나츠콘떄 솔로곡도 거리에서 2번 정도 노래해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결정한거야.
그런식으로 노래해도 전혀 나라는 걸 들킨적이 없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래만 쳐다보면서 노래하니까.
아라시가 되어서 스스로 곡을 만들게 되었을떄부터
노래하러 나갔지만, 들킨적은 없어.
모두의 발밑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긴장도 하지 않아.
그것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걸. 최고야.
그래도 그걸 솔로 앨범으로 만들고 싶다던가 하는
욕구는 별로 없어. 개인적으로는 레코딩 해두지만 (웃음)
상품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
새로만든 곡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건 굉장히
행복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
나,라이브 DVD같은 걸 만들떄도
'내 솔로는 절대 넣지 마세요'라고 부탁해버리니까.
뭔가, 안돼. 넣어주지 않는게 좋아.
기록되는 것보다도 팬들의 마음속에만
기억되어지고 싶어.......(웃음) 라고 생각하기 떄문에.
★ 芝居 -現在- 연기 - 현재-
연기에 대해서는 사실은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아.
나라고 하는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은 들지만.
예전에 잡지에서 내가 연기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기사를 보고
그때 함께 공연하던 선배 연기자분에게서
'연기자는 연기에 대해 말하는게 아니야'라고 혼났던 적이 있어.
나 자신도 일이라서 그런거지 좋아서 말한 건 아니었어.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해주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어.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내가 제대로 '연기자' 로서 존재하고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기자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은 '연기에 대해서는 말하고싶지 않아' 라고 생각했던 것도,
틀린건 아니었구나 라며 말이야.
'눈물을 닦고'는 , 아라시가 된 후,
처음으로 혼자서 하게 된 일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인상이 깊어.
크레딧에 '니노미야 카즈나리 (아라시)'라고 나왔잖아.
내가 연기를 못하면 '아라시도 별거 아니네'라고들 생각하겠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
"ハンドク"(TBS계. 01년 10월~12월 방송.TOKIO의 나가세 토모야 군이 연기하는 양키출신의 의사 이찌방의 격투 드라마. 니노는 이찌방의 하숙집 동생인 노부역) 에서는 연출이 츠즈미 상(츠즈미 유키히로 상. 감독.연출가. 아라시의 영화 "ピカ☆ンチ””ピカ☆☆ンチ”를 감독. 니노 주연무대 ”理由なき反抗 이유없는 반항”을 연출) 이었잖아. 재미있었어.
대본에는 없는 이상한 캐릭터가 엄청 나와서. 내 연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사실은 좀 풀이 죽었었지만 말이야. 뭔가, 학예회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푸른 불꽃"을 촬영했을 떄는 02년 여름이었지만,
1년 전부터 이야기를 듣고, 나니가와 상과 만나거나 했어.
보통하는 일이라면 크랭크인 까지 그다지 시간이 없어서
준비도 확실하게 하지 못한 채로 촬영에 들어갈 떄가 많았었으니까 반대로 1년 넘게 준비기간을 받아버리니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버렸어.
무대가 되는 바다에 혼자서 가보거나,
원작을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읽기를 반복하거나.
시간이 없을떄는 없으니까 큰일이었지만,
있으면 있어서 큰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웃음)
나니가와 상이랑 처음 만났을 떄는
우리 매니저까지 부들부들 떨어서 큰일이었어.
취재할떄도 나니가와 상에 대한 것만 잔뜩 묻고.
확실히 굉장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런 건 차별의 한 종류라는 생각이 들었어.
촬영 현장에서 나니가와 상의 연출은 2할, 8할은 나에게
맡겨주셨어. '자유롭게 움직여봐라' 라고 하시면서.
혼자 찍는 신이 많았으니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시작되지 않아.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안된다고 한적도 그다지 없었고.
거기서 ' 나 스스로 표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하는
생각이 강해져갔어.
욕심이 생긴건지도 몰라, 연기라는 것에 대해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촬영에 들어갔던 것이 "熱列的中華飯店"(후지테레비 계. 03년 1월~3월 방송. 호화여객선의 중화 레스토랑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코메디. 니노의 "친구"인 카츠무라 마사노부상,코하라상과 여기서 공연).
그때 지시가 떨어지기 앞서 움직이는 자신이 있었어.
그런 식으로 경험이라는 건
다음에도 이어져나간다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어.
그것도 주변이 제대로 연기를 배운 사람들 뿐이었잖아.
공부가 되었어. 나와의 차이를 두루 알게 되었고.
아메리카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가 다시 생각났었어.
확실하게 연기의 기분을 배우고 싶다고.
아메리카의 연극학교 같은 곳에서는 '의자에 앉는다' 만으로도
굉장한 연기론이 펼쳐지거나 무대 연습을 하거나 하잖아.
그곳에서부터 정말로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위로위로 올라간다.
일본은 이런 나같은 놈이 주역을 맡거나 하는걸.
그런 것을 그 현장에서 느꼈어.
차이를 알게됬지만 그런 걸로풀이 죽거나 하지는 않았어.
그 이후로 카츠무라 상 등과 식사할 기회도 늘었고.
여러가지를 말씀해주셔서 기뻤어.
그 해 여름에는 'STAND UP!!'(TBS계. 03년 7월~9월. 동정인 고등학생 4명이 펼치는 여름 이야기. 공연은 NEWS의 야마시타군 등. 주제가는 아라시의 '고또바요리타이세츠나모노')에서 다시 츠즈미 상이랑 일하게 되어서."피칸치"시리즈도 했었으니까.
이제 완전히 동지구나, 싶었어.
이 작품은 내또래의 연기자뿐이라서 조금은 신선했어.
언제나 나이 많으신 연기자분들이 잔뜩 계셨으니까.
뭐, 17살이라는 역에 대해서는 신선미 제로였지만.
안짱(스즈키 안짱. 니노와는 드라마 '아키헨마데' 이래로 친구.
'푸른 불꽃'에서는 여동생 역을 연기했다.)과도 같은
나이가 되버려서 (웃음).
원래, 나는 의상회의 같은데서는 아무말도 안하는 타입인데,
이때는 여러가지 스스로 고르기도 했어.
쇼짱은 촌스러움이 포인트구나-하고 생각해서.
바지에 녹색의 테로테로 티셔츠,보라색 배낭 이라든가.
그 다음해는 "미나미군의 연인"(테레비 아시히 계.04년 7월~9월 방송. 후카다 쿄코짱과 함께 공연. 주제가는 아라시의 "히토미노나까노 Galaxy")이런 식으로 드라마에서 연애하고 있으려니까
현실은 어떻게되도 좋다는 식이 되어버렸어.
드라마 속에서의 연애는 엄청났잖아.
애인이 작아지거나 스쳐지나가거나.
'연애란거 귀찮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많아.
나 말이야, 완전히 직업병일지도 몰라.
연기를 하게 되면 거기서 덧붙여 스스로 연애 소설 같은 걸
쓰거나 하잖아? 리얼하게 연애하고 있는 기분이 되버려.
그걸로 만족해버려.
현실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을지도 몰라.
일주일이 되든 한달이되든 내 소설 속에서는
한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잖아.
그치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고.당연한 것이지만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둘이서 1분 1초 쌓아나가지 않으면 안돼.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즐거운 것'이라는 생각이 안들어.
★ 人に恵まれるオレ 사람들의 혜택을 받는 나
올해는 '상냥한 시간'(후지테레비 05년 1월~3월 방송.대본은 쿠라모토 소우.공연은 테라오 아키라상. 오오타케 시노부 상 등)으로 시작했어. 좋은 드라마였어.
테라오상이라든가 오오타케 상이라든가 공연자들 덕분이었어.
연극 '이유없는 반항'(제임스딘의 명작을 니노 주연으로 무대화.05년 4월 3일~5월 5일 상연) 도 그랬어.
여러 사람들이 지탱해주고 보호해주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서 가족.
특별히 말로는 표현안하지만 날 언제나 응원해줘.
그래도 실제로 힘들꺼라고 생각해.
갑자기 아들이 TV에 나와서 노래같은 걸 부르고 하잖아.
신경이 둔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꺼야.
난 동네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지만,
가족은 계속 거기서 생활해야되니까.
뭘 사러가도 'TV봤어요.'라는 말을 듣고.
기쁠지도 모르겠지만 지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걸.
멤버에 대해서도 이 5년,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지금부터 앞으로도 사이좋게 일하면 좋겠구나 싶어.
작년 5주년을 맞이해서 많이 축하받았지만,
내 안에서는 4주년 쪽이 감회가 새로웠어.
TV를 켜면 배구 월드컵을 하고 있어서.
NEWS가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경기장에서
'A.RA.SHI'를 불렀던 때가 생각나서.'
그떄부터 4년이나 흘러버렸네~'라고.'빠르구나~'라고.
곁에서 보고 있으면 5주년쪽이 구분하기도 쉽고
들뜨게 된다는 건 알지만.
내 안에서는 아마도 앞으로도 4년 주기로 월드컵이 개최될떄마다 데뷔했을떄를 떠올릴 꺼라고 생각해.
왜냐면 월드컵이 없었으면,
아라시라고 하는 그룹도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지금은 감사하고 있어. 그런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게 기뻐.
그게 아라시라고 하는 그룹의 좋은 점을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