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ree-trade agreement) 체결을 위한 6차 협상이 15일부터 5일 동안 서울에서 열려 노동 분과를 비롯한 14개 분과 협상이 진행됐다. 노동 분과의 핵심 쟁점은 무역·투자 촉진 목적의 노동기준 완화 금지와, 공중의견제출제도(public communication) 및 분쟁해결 절차의 설치와 운영 등의 세 가지이다.
한미 FTA에 노동협정문을 포함하기로 한 이유는 국가간 자유무역에서 불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며 미국이 호주와 싱가포르 등과 체결한 협정에도 모두 포함됐다. 북미자유무역협정에는 노동협정문이 빠진 채로 타결되었으나 비준과정에서 미국 노동계가 반발하여 후에 추가했다.
만약 한미 FTA가 체결되고 상대국의 노동기준이 낮을 경우에 자국 기업들의 상대국 진출이 증가하여 자국 내의 실업이 증가할 것을 우려하여 이러한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또한 낮은 노동기준을 적용하여 상품과 서비스를 상대국에 수출할 경우에도 불공정한 경쟁으로 간주된다.
국내 노동법 노동시장 유연성 저해한미 양국 모두 국내 노동법이 결사의 자유 · 단결권 · 단체교섭권 · 강제근로폐지 · 아동노동금지 등, 국제노동기구
(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가 정하는 핵심노동기준 및 적정수준의 최저 임금과 근로 시간 및 산업 안전 보건 보장 등의 국제노동기준을 반영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기업의 근로자 대량해고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측면이 있는 등, 미국보다 노동권 보호수준이 더 높다. 또한 이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미국만큼 유연하지 않고 경직된 여러 요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참조).
그러나 미국은 노동분과협상에서 한국이 현재의 국내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무역을 증진하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할 목적으로 현재의 노동권 보호 수준을 저하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단 한국의 입장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핵심은 주휴(일요일) 유·무급 등이 근로시간과 관련이 있는지의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권 보호수준 조정 가능해야
한국은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17조)'에 근로기준법 규정(54조, 71조)에서 명시한 유급 휴일 또는 여성근로자에게 유급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규정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규정(5조, 6조)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업종에 한하여 근로자파견대상 업무를 확대하거나 파견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한국측은 국제적 보호수준을 존중하는 한, 국내노동법의 노동권보호수준의 조정이 가능해야 하며 노동입법의 자율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번 6차 협상에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동협정문의 준수를 담보할 수 있는 장치 즉, 공중의견제출제도와 정부간 협의절차 및 분쟁해결절차의 도입 여부도 협상 쟁점이다.
공중의견제출제도는 협정당사국 즉, 미국이나 한국의 노동계나 시민단체 등 일반 대중이 단독 또는 상대국 단체와 연합하여 상대국의 협정 위반 사항에 대해 자국 또는 상대국 정부에 의견을 제출하고 조사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다. 이 경우에 노동협정문상 의무를 위반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적고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 제도는 미국이 체결한 모든 FTA에 포함된 것이며 공중이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 미국은 자국의 노동단체를 설득하고 국회비준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한국은 이 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제 운영사례를 연구하고 노사단체 등과 협의 후에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공중(public)의 정의 및 이의제기 대상을 제한할 지 여부도 쟁점이다.
미국은 노동법의 효과적 집행이 실패할 경우에 분쟁해결절차(dispute settlement panel)를 도입하고 연간 1,500만 달러 한도에서 벌과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한국은 노동법 미집행과 관련해 분쟁이 발생하면 정부간 협의(consultation)를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이 경우에 협의의 대상을 국내노동법의 집행 실패로 한정하고 국내노동법의 재·개정관련 사항은 예외로 할 지 여부도 관건이다.
세계화(globalisation)의 거센 물결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국경간 자유로운 이동(free movement of labour)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자본과 상품·서비스 교역의 자유화로 세계경제가 긴밀히 연계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입국비자 없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도록 각국 정부가 허용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나 경제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나라는 자국 내에서조차 산업간이나 직종간 또는 지역간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데 이는 정부가 물리적인 제재를 가해 인간의 기본권인 이동의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로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 즉 유연성(flexibility)이 부족한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경직된 노동시장이 생산성 향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국 경제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유럽, 특히 프랑스의 경제가 활력을 잃고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는 반면에 미국 경제는 성장을 계속하고 실업률도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프랑스의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프랑스 정부의 보호주의 정책과 노동법이 기업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해고를 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을 기피하고 임시직이나 계약직 근로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 가장 큰 희생자는 전문 기술이 없는 비숙련 근로자와 대학을 갓졸업한 젊은 층이다. 물론 법과 규제만이 노동시장 경직의 원인은 아니지만, 기업들의 직원 고용·해고와 관련된 규제가 적을수록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도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와 유사하다. 아직 실업률이 프랑스 만큼 높은 것은 아니지만 구직을 포기하고 쉬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실업률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의 노동법은 기업들이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만 근로자를 해고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사용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으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인수·합병은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경우에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이를 노동조합과 상의해야 하고, 해고 60일 전에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대표에게 통보해야 한다.
반면에 미국의 기업들은 한국보다 훨씬 자유롭게 해고를 할 수 있다. 미국의 노동법(Worker Adjustment Retraining Notification Act)은 사용자가 공장폐쇄나 대량해고를 할 경우에 근로자와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 60일 전에 이를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 조항을 많이 두고 있으며 한국처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와 같은 단서 조항이 없다. 예를 들면, 파업으로 인해 시설이나 작업장을 폐쇄할 때, 한 작업장(single site)에서 50명 미만을 해고할 경우, 또는 50~499명을 해고하더라도 해당 작업장 전체 근로자의 33% 미만인 경우에는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노동시장도 미국만큼 유연해질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국내노동법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것과, 이를 어겼을 경우를 대비해 강제적 분쟁해결 절차의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노동분과 협상은 문제 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노동시장의 유연성 또는 경직성을 한 두 마디로 간단히 정의할 수는 없다. 실업률이 높아 실업보험에 의존하는 사람 수가 너무 많거나 그 기간이 긴 경우, 법이 정한 규정 때문에 기업이 근로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거나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거나 잔업수당을 과도하게 지불해야 하는 경우, 또는 노동조합의 힘이 너무 막강해서 경영진이 경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기존의 일자리 보호에만 급급해서 사업장에서의 업무 방해도 서슴지 않는 경우에도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노동 시장의 유연성은 그 나라의 거시경제적 현상과 법과 제도는 물론이고 사회·정치적 환경, 관습과 문화까지도 포함해서 판단할 문제이며 그 특성도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노동시장을 경직되게 만드는 요인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경직된 정도를 (아주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계량화하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며, 이를 거시경제 모델을 만드는데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제학자 Robert M. Solow는 베버리지 커브(Beveridge curve)를 노동시장 경직 정도를 나타내는 가늠자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베버리지 커브는 영국의 경제학자(Sir William Beveridge)의 이름에서 유래하는데, 채워야 할 일자리의 수가 전체 노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vacancy rate)과 실업률과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이 두 비율은 반비례하며, 완전히 일치할 때 ‘완전고용’ 상태라 부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구조적인 제약과 일자리가 있어도 자격이 미달하는 등의 이유로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시장이 완전히 유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 “What is Labour-Market Flexibility?” The British Academy, 1998.
한국 협상팀의 마스코트 김도현씨는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외교통상부에서 외교문서의 통·번역 편집 일을 시작할 때만해도 자신이 한미 FTA 협상에서 통역을 맡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조금은 두렵기도 했지만 너무 흥분되고 기대에 벅차 거의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사뭇 앳된 모습의 사회초년병인 그녀에게 한미 FTA 자동차분과 협상에서 통역을 맡는다는 것은 분명히 가슴 설레는 경험임에 틀림 없다. 게다가 통상·법률 용어는 물론이고 자동차와 관련된 기술적인 전문 용어들이 낯설어 거의 매일 자료를 뒤지며 공부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자동차분과 협상은 물론이고 김종훈 수석대표가 내·외신 브리핑을 할 때면 외신기자들을 위해 통역까지 맡고 있다. 협상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면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통상법을 전공하기로 작정하고 이미 여러 대학의 로스쿨에서 입학 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이다.
한미 FTA 협상에서는 자동차분과를 비롯해서 무역구제, 농업 및 지식재산권 등 10여개 분과 협상에서 통역을 사용한다. 미국측 통역은 영어를 한국어로, 한국측은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하는데 서로 상대방의 통역이 정확한 지도 확인한다.
한 개의 분과 협상에 여러 관련 부처에서 참여하기 때문에 부처의 입장을 밝힐 때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도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통역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협정문 작성시 뿐만 아니라 협상 중에 나누는 대화에서도 적합한 단어나 어휘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통역을 하는 동안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거나 대응논리를 생각할 수도 있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상대방이 표면적으로 원하는 것과 내심 얻고자 의도하는 것, 그리고 절대로 양보가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최소한 이 세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하지만 서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니 상대방의 의도나 과연 어디까지 양보할 것인지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할 전략을 세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은 양측 대표들은 상대방의 말 속에 함축된 의미(nuance)는 물론이고 농담 한 마디 또는 얼굴 표정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협상 분위기가 험악한 것은 아니다. 한미 FTA 협상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긴장을 늦출 수야 없지만 분위기는 비교적 화기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담을 주고 받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웃음소리가 협상 장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한국측이 미국보다 협상능력이 떨어지고 상대방에 끌려 다닌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실상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한국은 미국측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경우가 많아 미국은 한국이 “가장 까다로운(toughest)” 상대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고 한다. 김도현씨는 “오히려 한국이 미국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할 때가 있다”고 말할 정도이니 이제 국민들도 안심하고 협상팀을 성원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