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칭기즈칸

박재영 |2007.02.05 15:21
조회 29 |추천 0


『몽골비사』에는 세 개의 몽골 기원설화가 실려 있다. 맨 앞에 있는 늑대 설화는 돌궐의 것을 유사한 것이지만 나머지 두 개 즉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의 이동설화와 알랑 고아의 설화는 몽골 고유의 설화라고 한다(박원길 『북방민족의 샤머니즘과 제사습속』1998). 알랑 고아 설화는 고구려의 유화부인(柳花夫人) 이야기와 거의 같은 내용이고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한역하면 고주몽(高朱蒙), 즉 고리족의 명궁(名弓)이라는 말이다. 메르겐은 신라의 마립간(麻立干)과 같은 말이라는 견해도 있다. 


2. 몽골의 기원 (역사적 관점의 몽골지원)


  몽골은 8세기 무렵 아무르강(흑룡강) 상류인 에르군네(Ergüne) 강[河] 유역에서 몽올실위(蒙兀室韋)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여, 당나라, 위구르, 토번 등이 붕괴 또는 와해되는 틈을 타서 지속적으로 서쪽으로 진출하여 11~12세기 무렵에는 오난(Onan) 강[河] 일대까지 진출한다. 오난강으로 진출한 몽골은 게레이드(Kereyid), 메르키드(Merekid), 타타르(Tartar), 나이만(Naiman) 등의 부족들과 서로 다투면서 성장하다가 1206년 칭기즈칸을 중심으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계제국을 건설한다[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역사와 민속』(민속원 : 2001)].


  몽골의 기원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몽골은 동호(東胡)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쉽게 말하면 남쪽에 있는 동호는 거란이 되었고 북쪽에 있는 동호는 몽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당나라 때에 이르러 현재의 흑룡강 부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몽골 또는 모골 또는 머골(蒙兀)이라는 이름이 이 때 나타났다(屠寄『蒙兀兒史記』卷1 「世紀」).


  몽골의 원류인 동호계는 주로 해(奚 : 현재의 내몽골 지역), 습(飁) 실위(室韋 : 현재의 몽골 지역) 등이다(『新五代史』卷74 「契丹」; 『北史』卷94 「奚」).


  해(奚 - 여자노예라는 의미), 습(飁 - 큰바람) 실위(室韋 - 집에서 잘 다듬은 가죽) 등 말들이 대부분 욕설에 가깝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없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이 말들이 음차(音借 : 발음을 빌림)를 한 말이기 때문이다. 한족(漢族)들은 이렇게 주변민족을 항상 욕설로 부르고 있다.


  이 한자말들은 서로 다르게 보여도 발음은 모두 [쉬] 또는 [쇠]에 가깝게 나타난다. 즉 해(奚)는 쉬[xī], 습(飁)은 쉬이[xí], 실위(室韋)는 쉬웨이[shìweí] 등으로 소리가 나서 범한국인을 의미하는 예(濊) 또는 예맥(濊貊)과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 가운데서 해(奚)는 거란이 되고 실위(室韋)가 바로 몽골이 되었다고 한다(상세한 해설은 『대쥬신을 찾아서』제2권 참고).


  『신오대사』는 거란과 동류인 “해(奚)는 본래 흉노의 별종(『新五代史』卷74 「契丹」)”, 『북사』는 “해는 거란과 이종동류로 본래 고막해(庫莫奚)라 하였는데 그 선조가 동호의 우문(宇文)의 별종(『北史』卷94「奚」)”이라고 한다. 요나라 태조가 해(奚)를 정벌하면서 “거란과 해(奚)는 언어가 서로 통하니 하나의 나라이다(『요사』권72 「종실열전」).”라고 한다. 요나라는 자신의 발상지인 현재 내몽골 자치구 빠린줘치(巴林左旗)를 상경(上京)으로 하였다(『契丹國志』권22 「四京本末」).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