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망한다!
우리 조상들은 어른이 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나 보다.
필자가 정확히 알고 있는지 몰라도 조선시대에는 14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한 사람들도 많았고, 갑신정변의 주동자들 모두 18세 전후였던 것을 보면 옛날에는 세상물정을 파악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부모들이 아이들 사람구실 하도록 가르치는데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었나 보다.
그러나, 요즘에는 아이 하나 낳아 제구실하는 어른으로 만드는데 엄청난 시간과 경비가 아니 무엇보다도 엄청난 정성이 필요하다.
어렵게 병치레를 다 막고 젖을 떼자마자 유아원부터 유치원을 거쳐 만물박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모들의 욕구인지 사회의 욕심인지 알 수 없는 사교육의 쇠사슬이 시작되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여 결국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대학생활을 마치게 되지만,
결국, 과외와 입시를 벗어나 자유인입네 하고 폼잡는 대학생활을 마치자마자 다시 취업의 경쟁에 목을 메고, 취업을 하더라도 조직의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다가 남자는 군대를 가던지 여자는 결혼을 하던지 30이 훌쩍 넘어 짝을 찾는 것이 다반사라고 한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교육목표는 모든 학교의 교과일정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거나 소홀히 취급되어 결국 우리의 아이들은 그 중요한 시민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회인이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하긴 요즘에는 교사들이 자신의 강좌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신의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만들기 위해 싸우는 세상이라니....
필자는 어른들로부터 돈버는 방법, 재산을 늘리는 방법에 대하여 배우지 못했고,
아직도 내 자식들에게 경제인으로서의 역할을 가르치지 못한데 대하여 크게 후회하고 있다.
허지만, 필자는 우리네 학교와 우리 아이들을 끌고 간 군대에서 반드시 시민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등 16년 동안, 그리고 남자의 경우 소집된 군대생활의 피같은 세월의 2년 동안 우리 아이들이 이 복잡다단하게 얽히고설킨 경쟁사회에서
이해관계를 명확히 구별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건전한 사회인으로, 당당한 시민으로서 행세할 수 있는 시민교육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학교다닐 때 미분, 적분을 잘하면 세상에서 나를 다 잘 살게 해주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이야기인데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하여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죽을 때까지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 일리가 있는 가설이었지만, 그 복잡한 수학은 지금 필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를 생각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시민교육을 받지 못한 필자의 업보라고나 할까?
대학은 많은 학과와 교육과정에서 예전의 학원이나 기술학교, 고등공민학교에서 하던 기능중심의 취업 준비장소가 되었고, 고등학교는 학원에서 수강하느라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곳으로 되었다면 지나친 평가일지도 모르겠다.
학원은 무엇을 하는 곳이고, 학교는 왜 있으며, 선생님들은 누구인가?
필자를 그렇게 혼내고 기합을 주시면서도 사랑과 용기를 주시던 그 선생님들은 다 어디 가셨나?
오랜만에 헌법을 한 번 살펴보았다.
고시공부할 때에는 헌법이 필요하였지만 그 뒤로 거의 헌법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그동안 헌법을 살펴볼 여가가 별로 없었는데
한동안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였던 "사학법개정"과 관련하여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고 무엇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나 한번 살펴보니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헌법은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를 그냥 그대로, 어디에다 버리지 않고(?) 그냥 보전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지만, 필자가 고시공부 할 당시에는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되었었는데
지금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로 바뀌고, 법률에 위임하는 내용도 뭐라고 뭐라고 길게 쓰여져 있다.
세상에 머시든지 길어지고 복잡해진다고 하여 더 좋아지는 것은 없다(이 글도 마찬가지...).
아--, "교육의 전문성"과 "대학의 자율성"이 법률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새로운 규정에 따라 서울대학교 총장선거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하는가 보구나.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총장선거를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한다?
다른 나라에도 선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좀 이상하기는 하다. 그런데 선거를 해서 당선이 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아도 위법이 아니라는데 맞는 말인가?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으니....
잠깐 야그(?)가 옆으로 샜는데..
우리 헌법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요즈음 헌법교과서는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필자가 헌법공부를 할 때에 있던 교과서들을 보면 뭐라고 장황하게 써있었는데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필자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선 우리 헌법은 "국가가 모든 국민을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하여야 할 의무"를 명시하지 않고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국민의 권리에 대한 반사적 의미로 당연히 국가에게는 그러한 의무를 부여한 것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의 의무나 권리는 이렇게 헌법에 선언하여 우리나라 헌법도 선진헌법이라고 폼을 잡는 선언적 규정이 아니라 실제로 보장되어 있는 권리, 언제든지 강제화 내지 현실화될 수 있는 권리, 의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속성상 헌법이라는 법 자체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념적 선언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와 이러한 의무는 헌법상 중요한 규정인 생명, 신체의 자유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거의 대등한 가치를 갖는 중요한 권리와 의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모와 조국을 선택할 자유를 갖지 못한채 이 나라에 강제로 태어나
어떤 경우에는 내 부모와 이 사회,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모든 뛰어난 조건을 그대로 삶의 터전으로 물려받아 그에 의지하면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축복받은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내 부모가 가지고 있는 많은 어려움과 한계 그리고, 우리 사회와 조국이 처한 수많은 아픔과 시련을 그대로 물려받아 그 안에서 나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그를 바탕으로 나의 삶을 이어나가다가 내 자식에게 내가 가지고 내가 만든 만큼만 물려주고 여기에 묻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숙명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한계 내에서 나, 너, 그리고 내 아이, 네 아이, 우리 온 국민이 빠른 시간 내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습득하게 하고,
개개인의 인간으로서, 가족과 조직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유시민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 경쟁과 이익다툼이 만연하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단위로 존재하면서 필요하고도 충분한 도덕과 윤리를 깨우치게 하고,
어떤 사회가 바른 사회이고, 그런 사회를 향하여 우리 개인은 어떻게 하여야 하며, 어떤 삶의 지혜를 배워야하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는 어떠한 규칙에 따라야 하는지, 제한된 생명체의 한계내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깨달아
소위 "독립한 개인" 내지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겨 주어 그들이 한정된 나머지 삶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주는 것이 국가와 부모의 의무가 아닐까?
사람사는 세상, 우리들이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살아가는 중에 가장 지켜져야 하는 것.
일한 만큼 보수를 받고, 사랑한 만큼 사랑을 받고, 노력한 만큼 인정을 받고, 죄진 만큼 벌을 받고, 다른 이에게 아픔을 준만큼 그도 아픔을 겪어야 하고, 권한이 부여된 만큼 책임을 안아야하고, 의무가 많이 주어지면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부여된다는 "주는대로 받는다"는 원칙.
소수와 다수의 전환, 부자와 빈자의 전환,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전환, 강자와 약자의 전환, 치자와 피치자의 전환, 여당과 야당의 전환 등 "지위전환의 가능성".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되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고, 다수의 의사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여당도 옳고 야당도 옳지만, 서로 자신의 결정이 잘못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보수도 좋고, 진보도 좋지만 결국 이론적으로는 제로섬이므로 어떤 결정이라도 오류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내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 내가 하고자하는 일에 거추장스런 사회제도는 모두 적이라고 단죄하는 어리석음을 버리는 "반대자에 대한 관용".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가 심화됨에 따른 인간소외와 금권만능의 병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적개심과 상대적 빈곤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세상의 아픔을 함께 하는 이웃사람들과 정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방법,
법과 윤리나 도덕보다 힘이 지배하는 경쟁일변의 국제사회에서 조국의 현실을 바로 알게 하고, 우리 민족과 국가가 지나친 국수주의도 아니고, 극단적인 민족주의도 아니면서 합리적으로 위기를 감당하여야 할 사고방식.
모든 국민은 이러한 시민교육을 배워야할 권리를 갖고,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 할 의무를 갖는다.
나아가 우리 헌법은 "교육을 받아야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모든 국민은 이러한 시민교육을 받아야할 의무를 갖도록 규정하여야 한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형편이 되는데도 자식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 그것도 무상이라는데 가르치지 않을 부모가 있겠는가,
따라서 모든 국민은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 지금 헌법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고칠 필요는 없다. 고친다고 실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명한 결론이 다 나온다.
사학법 개정은 일반 민법상의 법인의 규정과 비추어 심히 부당한 결론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위헌이 되건 합헌이 되건
개정이 되어도 사학의 부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둔다고 부정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며, 위헌이 되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와도 사학에 대한 국가의 간섭은 불가피하다.
법좋아 하는 사람들이 그보다 더 골치아픈 법은 못 만들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되나?
법은 오로지 법에 불과하다.
국가는 물론, 그 의무를 대신 행사하는 사학재단들은 모든 국민에게 올바른 시민교육을 시켜야할 의무가 있고, 모든 국민은 제대로 된 시민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존망의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운명은 이러한 시민교육의 완성여부에 달렸다는 생각은 지나친 기우에 불과할까?(‘07. 2. 6. 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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