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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적인 관점에서 본 신(神)과 차원에 대한 한 가지 궤변]

송은경 |2007.02.10 23:29
조회 151 |추천 1

 과거와 현재, 미래.

 현재 내가 이렇게 쓰고 있는 동안에, 현재는 3초 전의 과거가 되고 미래는 3초 전의 현재가 된다. 다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누는 것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화자일 뿐. 시간이란 자연처럼, 또한 道처럼 존재하는 것일 뿐. 

 하지만 시간 속에 살고 있는 화자에게는, 시간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리라. 화자인 인간에게 있어서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며, 현재가 있기에 미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의 개념을 (원)인과 (결)과 관계로 설명해도 완전히 그릇된 건 아니지 않을까?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 미래가 있을 수 있듯이, 결과도 또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듯이, 앞서 존재하는 원인과 그로 인한 후의 결과가 서로 섞이지 않고 결합된 채로 (물론 '거울 나라의 엘리스'의 경우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있기 때문에, 시간을 인과의 개념으로 환원시켜도 무리가 없을 듯 싶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시간의 개념에 대해 구질구질하게 본인의 궤변을 늘어놓는 이유는, 문득 책을 읽다가 신과 4차원의 개념에 대한 망상(-_-)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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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ㆍ자연은 일어나는 모든 일의 내부 원인이란다. 곧 자연의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렇듯 결정론적인 자연관을 갖고 있었단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자를 상상해 보아라. 그 사자가 스스로 육식 동물로 살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니? 그래서 무력한 영양을 덮치는 걸까? 사자가 채식주의자로 사는 게 더 좋다고 결정했더라면 어땠을까? 바로 자연 법칙에 따라 살지. 물론 데카르트에 의존해서 사자는 동물이고 자유로운 정신력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 그러나 갓난 아기를 생각해 봐라. 아기는 소리치고 움직인다. 그리고 젖을 주지 않으면 바로 손가락을 빤다. 이런 젖먹이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겠니?"

 "그럼 이 어린 것이 언제 자유 의지를 갖게 될까? 두 살배기 여자 아이는 근처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띄는 것은 모조리 가리킨다. 세 살이 되면 칭얼거리며 쏘다니고, 네 살이 되면 갑자기 어두움을 무서워한다. 어디에 자유 의지가 있다는 거냐?"

"스무 살이 되면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해 보겠지. 이 때쯤 혼자서 결정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까?"

 "그 아이가 바로 너이며, 이는 확실하다. 하지만 그 소녀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살고 있지. 중요한 사실은 소녀가 하는 모든 행동 뒤에 엄청나게 복잡하고 많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통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나무는 자유롭다. 그것은 자기의 가능성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과나무라면, 그 나무는 사과나 자두 가운데서 아무것이나 원하는 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직 사과 열매만을 맺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정치적 상황이 우리의 성장과 인격적 발달을 저해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다른 외적인 강제가 우리를 억압할 수도 있다. 오직 우리가 우리 안의 가능성을 자유롭게 발전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 역시 내부의 소질과 외부 조건의 영향을 받는 점에서 석기 시대 소년이나, 아프리카의 사자나 정원의 사과나무와 다를 바 없다"

" 스피노자는 오직 하나의 존재만이 철저히 자기 원인으로서 완전한 자유 속에서 행동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신이나 자연만이 이처럼 자유롭고 필연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람은 외부의 강제 없이 살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자유 의지'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의 육체는 연장(물체)이라는 속성의 한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이 없는 존재다. 그것은 기계적인 육체 안에 갇혀 있단다."

 "스피노자는, 명예욕이나 탐욕과 같은 인간의 열정이 진정한 행복과 조화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필연에서 생기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자연 전체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것이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체험할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전체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스피노자는, 모든 것을 영원의 형상에서 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게 무슨 뜻이죠?"

 "모든 것을 영원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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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의 기나긴 구절은, 아마 아는 사람은 다 알리라 생각되는 책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조종하는 모든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영원의 형상에서, 영원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시간의 개념이 추가된 공간인 4차원에서는, 모든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도 해방되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필연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곧 4차원에서의 모든 존재물들은 철저히 자기 원인으로서 완전한 자유 속에 행동하는 존재인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차원의 존재는, 한 등급 낮은 차원인 3차원의 존재물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마리오네트의 조종자처럼 보이지 않는 조정을 가함으로써 '신'이라 불리게 된 것이 아닐까... 다만 우리가 이러한 고차원의 존재들처럼 자신들보다 더 낮은 차원들에 조정을 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3차원 이하의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2차원의 경우, 모든 존재물들은 '높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존에 필수적인 장기기관 등이 있을 수 없어 존재할 수 없다고 밝혀졌다고 한다. 1차원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

 정리하자면, 곧 신이란 다만 4차원에 존재하는 존재물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궤변이 들어맞는다면, 우리가 4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인 5, 6차원을 경험하게 된다면 더이상 신이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신이란 단어가 이전과 같은 뜻이 아닌, '4차원 상의 존재물'이란 뜻밖에 지나기 않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도중에 문득, 이러한 인과 관계를 이루는 자연 법칙을 모조리 파악한 완벽한 철학자가 존재한다면, 그러한 철학자는 4차원에 무리 없이 진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또한 들게 되었다. 곧 현세계의 인류에게 있어서 4차원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진입하는 방법이란 소설 속 타임머신이나 차원머신 같은 기계를 이용한 구체적이고도 자연과학적인 방법이 아닌,,, 순수하고도 순수하고도 순수한 이성 그 자체, 오로지 뇌, 이성으로만 존재하는 완벽한 철학자, 연금술사가 되는 추상적이고도 순수학문적인 방법을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유리알 유희가 극에 달하는 순간, 그 유희자는 4차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이상 쓸모 없는 망상적 궤변이었음.-_-.

 반론하는 립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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