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 퍼붓듯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은 조선조 선조 27 년. 왜군 15만이 조선을 3 년째 피로 물들이고 있는 선조 27 년.
여기는 지리산 기슭. 몇 채의 초가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집들은 황토흙과 돌을 쌓은 것을 벽으로 삼았으며 짚을 엮은 이엉을 지붕으로 삼고 있었다.
칠순 나이의 노인 한 분이 그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는 어제 자기 며느리의 시체를 뒷산에 묻었다. 그러니까 3 일전, 노인은 그의 눈 앞에서 왜병들이 며느리를 능욕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긴 칼과 조총의 서슬에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능욕을 끝낸 왜군이 며느리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며느리의 코를 베어내는 것도 노인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노인의 아들은 논의 물꼬를 보러 집을 나갔다. 노인은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수염을 쓸어 내렸다.
밖에는 번개가 번쩍이었고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얼른 돌아오지 않고 무얼 한담"
노인은 아들을 기다리다 못해 초조한 마음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왜병 대여섯이 노인의 초가 안으로 들어닥쳤다. 비를 피해 들어왔을 터였다. 왜병들은 여늬 때처럼 그들이 벤, 아직도 상투가 틀린 조선 사람들의 머리를 허리춤에 대롱대롱 달고 있었다. 3 년동안 보아 온 일이어서 노인은 덤덤이 보고만 있었다.
덤덤이 보고만 있던 노인이 깜짝 놀란 것은 왜병들이 그들의 허리춤에서 상투가 틀린 조선 사람들의 머리를 방바닥에 쏟아내렸을 때였다. 그들이 쏟은 머리들 가운데 아들의 머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쓰러질뻔하였다. 노인은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다리만 후들후들 떨렸다.
이제 왜병들은 쏟아내린 조선인들의 머리에서 코를 도려내기 시작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장께서는 사람은 귀를 둘씩 가졌으니 베어낸 귀의 수로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 지 알 수 없다. 대신 코를 짤라 보내라. 코는 하나이므로 짤라낸 코를 세면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명령을 내려셨어"
그들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노인은 알아듣지 못한 채 간신이 그들에게 호통을 칠 수 있었다.
"이 개보다 못한 놈들! 너희들이 인간이냐? 이 짐승보다 못한 놈들아!"
그러자 한 왜병이 노인의 목까지 번개처럼 베어 버렸다. 그 왜병은 쓰러진 노인의 얼굴에서 코를 도려내기 시작하였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 퍼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