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이 바쁘겠다.
간만에 오늘 늦게 일어나도 돼서 친구들과 오랜만에 한잔하다보니 새벽 대여섯 시까지(웃음).
를 보니 어떻던가.
모니터를 못한다. 무안하고 계면쩍어서. 특히 드라마 방송 시간되면 일부러 다른 곳에 가있거나 다른 채널을 튼다. 못 보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일단 연기가 어색하다. 내 모습 보는 것이 어색하고, 내가 다른 사람인척 하고 있는 것이 어색하다. 이 영화는 편하게 본 편이다. 덜 무안하게 봤다.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했다. 어떻게 가수를 시작하게 됐나.
우연한 기회에. 미대를 다니면서도 밴드를 했다. 아마추어니까 데모도 만들어보고 했는데 제작자 손에 우연히 들어갔는지 앨범을 내보자는 제의가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라 그런가보다 하고 있다가 졸업하고 한국에 놀러왔는데 우연히 그 제작자를 만났다. 곡도 다 만들어져있고 해서 얼렁뚱땅 냈는데 말도 안 되게 히트가 돼서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웃음).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졌다.
불미스럽다면 불미스러운 거고. 당시는 겉멋이 들어서 대마초 정도는 한 번 펴야지 진정한 가수라고 생각했다. 내가 굉장히 존경하던 가수들은 다들 한번쯤 ‘학교’를 다녀온 전적이 있었으니까. 막상 겪어보니(웃음) 안 좋은 것을 알고 정신을 차리게 됐는데, 시간이 흐르고 생각해보면 필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너무 세상을 몰랐다. 표적수사라는 것 있지 않나. 그런 도구가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겉멋도 당시 중요했겠지만 활동하는 데는 치명적이었을 텐데.
치명적이었다. 나한테는 특별히 더 심했던 것 같다. 요즘은 몇 달 있다가 죄송합니다, 하고 나오는데, 나는 그 사건 이후 4년 동안 활동을 못했다. 굉장히 방황을 많이 했다. 그런 시기를 겪으며 숙성되고 인간이 좀 된 것 같다. 그동안 어릴 때부터 인생을 편하게 살아왔다. 게을렀는데 운이 좋은 편이었지. 그렇게 살아오다 어려운 일을 겪은 것 같아 좋은 경험이었다.
당시 마음을 다잡으면서 자신을 숙성시킬 수 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
음악이다. 음악이 없었다면 많이 망가졌을 거다. 가장 인생의 바닥을 칠 때 음악이 들리더라. 지금은 배에 기름이 껴서 그런지 아무리 노력해도 당시 만들었던 그런 노래들이 안 나온다. 당시 환경이나 시간들이 음악인으로서 날 자라게 했다.
‘나의 노래’ 같은 곡들이 당시 만들어진 노래 아닌가.
‘나의 노래’는 공연할 때 마지막 곡으로 부르곤 한다. 그 노래를 오랜만에 듣거나 부르면 가끔 울컥할 때가 있다. 나름 메마른 사람인데 그때 생각도 많이 나고. 소중한 노래다.
공백을 딛고 다시 복귀한 후, 연기도 시작하게 됐다. 한두 번 출연하는 건 그렇다손 쳐도 이렇게 꾸준하게 연기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도 몰랐다. 일단 연기자가 많이 모자란 것 같다. 좋은 남자, 모든지 다 이해해줄 것 같은 역할을 많이 하다보니까 그런 역이 있으면 으레 나를 찾는다. 전문이 돼버린 것 같다(웃음). 일장일단이 있는데, 최민식 같은 연기는 죽었다 깨도 못할 테니 실장 전문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연기하기 전에도 그런 이미지가 있지 않았나. 결혼하고 싶은 남자로 꼽히는 자상한 이미지.
이미지가 많이 왜곡됐다. 그런 모습도 조금은 있겠지만 거칠고 욱하는 성질도 있고 사석에서는 욕도 한다. 그런 모습들은 절대 방송에서 보이지 않고 좋은 모습만 가공돼서 보이니까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친구들은 안다. 내 성격 더러운 걸(웃음).
그런 이미지를 오랫동안 끌고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끌고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다른 연예인들은 회사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데 나는 불행히도 체계적인 회사에 계약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주로 혼자 일하다보니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이상하게 좋은 사람으로 이미지가 형성됐다.
그런 이미지에 크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좋다. 나야 감사한다. 허나 늘 좋은 사람인 척해야하는 어려움은 있다. 어디에서나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하고(웃음). 내 자신을 억눌러야하는 부분이 있다. 오래 하다 보니 내 자신이 그렇게 돼버린 것 같다. 웃기는 일이지.
대중이나 매체에 의해 가공된 이미지를 본인이 따라가게 됐다?
100% 가공은 아닐 거다. 그 안에 어느 정도 내 모습이 있지 않겠나. 내가 가진 많은 모습 중 다행히도 좋은 모습들만 부각된 것 같다. 운이 좋은 편이다. 지저분하고 더럽고 안 좋은 모습도 많이 있는데 다행히 좋은 모습들만 부각되고 언론에 잘 포장됐다.
가 공식적으로 첫 영화고 첫 연기다.
말도 안 되는 인터넷 영화다. 당시는 나름대로 신선한 시도였는데 아무도 안 봤다(웃음).
연기를 해보니 느낌이 어땠나.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재밌고 그런 것을 떠나서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노래 부를 때 가수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해서 4분 동안 쏟아낸다. 굉장히 짧고 집중력 있게. 드라마나 영화는 4분을 만들기 위해 오랜 기다림과 반복을 견뎌야한다. 그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고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사람이 ‘옥탑방 고양이’부터 행보를 보면 정말 많이도 출연했다(웃음).
‘옥탑방 고양이’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했음에도 드라마가 히트를 쳐서 욕먹지 않고 실장 이미지를 굳히게 된 계기가 됐다. 연기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재미있었다고?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그때는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니까 내가 너무 몰입했던 것 같다. 진짜 실장이 된 것 같은 느낌. 연기는 더럽게 못하면서 너무 몰입이 된 거다(웃음). 내가 진짜 얘를 사랑하는 구나, 라는 것을 느꼈고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경험이 너무 새롭고 특별했다. 굉장히 골 때리는 경험이었고,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그런 재미를 느끼기 위해 계속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첫 경험만 못하다.
< S 다이어리 >가 본격적인 영화다.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첫 작업을 하며 영화 연기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극장의 큰 스크린에 대문짝만하게 내 얼굴이 나오면 그게 너무 신기했다. 은막에 나오면 폼 나지 않나.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이 집중해 내 모습이나 입가의 잔주름까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다.
그 전까지 드라마에서 맡았던 역과 좀 다르긴 했다.
그렇다. 비아그라 먹고 자기 힘을 주체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신부 역이었는데(웃음) 원래 시나리오에는 심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적나라한 신들이 있는데 의논해서 다른 장면들로 바꾸곤 했다.
실장, 외교관, 의사, 대표 등 주로 직급 있는 역할을 했다. 아무래도 연출자들이 이현우에게 원한 이미지가 그런 것이었겠지.
약간 그런 이미지가 있었나보다. 로얄 패밀리의 2세라는 소문도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곱게 자란 듯 보이나보다. 별로 곱게 자라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연기다.
탈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나.
사실 그런 욕심이 없었다. 연기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역할을 탐내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하다 보니 조금씩 욕심이 생긴다. 흐트러지고, 바보 같아도 좋다. 그전 모습과 다른 역을 해보고 싶긴 하다. 지금 드라마를 찍는데 결벽증이 있는 역이다. 대본을 볼 때는 추잡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해보니 재밌더라. 완벽하게 가공된 것 보다 약간 단점이 있는 역을 해보고 싶다.
욕심은 아닌 것 같다. 연기자가 되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 욕심 안 부린 것이 당연하겠지만, 과정에서 재미도 느꼈을 테고 이제는 인생에서 연기의 비중이 어느 정도 커졌을 테니.
얼렁뚱땅 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해버렸다. 욕심보다는 어차피 연기로 노출이 된다면 욕은 먹지 말아야지, 짧게 나오건 길게 나오건 한 번할 때 제대로 해보자는 욕심은 생긴다.
보는 사람들 입장도 그렇다. 한두 번 보면 몰라도 계속 본다면 좀 더 성장하거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을 거다.
그렇다.
의 성지혜 감독은 이현우를 고집했다던데 직접 뭐라고 말하던가.
말이 굉장히 많고 전화하는 신도 많다. 말이 많다보니 목소리를 굉장히 중시했다. 하이 톤이면 듣는 사람에게 지루하고 짜증날 수 있으니 오래들어도 질리지 않을 목소리를 찾다가 라디오 진행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들었다. 이야기하다보니 굉장히 자랑같이 돼버렸다(웃음).
기존과 다른 캐릭터는 물론이고, 저예산영화 등 다른 요소에서 끌린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계산해서 예쁘고 대중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에게서는 흥미를 못 느낀다. 프랑스나 일본 등의 거친 언더그라운드의 영화를 좋아한다. 미국영화도 오래된 영화나 7~80년대의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한 영화를 좋아한다. 이번 영화는 수십억이 들어간 상업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약간 모순이긴 하지만 부담이 되면서도 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시나리오 읽으며 느낀 감정과 연기하며 느낀 감정과는 어땠나.
내가 했던 작품 중 가장 편했다. 그리고 가장 즐기면서 했다. 너무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뻔뻔한 사람인데 현실에서 그러기가 어렵지 않나. 그런 사람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 후련했고 재미있었다. 지저분한 표현이긴 한데 쾌변을 본 것 같은 쾌감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중적인 면이 잘 드러나는 캐릭터다. 툭툭 내뱉다가도 무표정하게 김보경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이현우가 갖고 있던 기존의 자상함이 어우러지기고 하고.
이 캐릭터가 오묘하다. 진짜 희한한 사람이다. 나쁜 놈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작업이었다.
그만큼 만족감도 크겠다.
내 자신을 평가할 때 여태까지 한 연기 중 가장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웃음). 이런 면이 나에게도 있나,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됐고.
그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연기하기에 바빴겠지만 이제는 외적인 시야들이 넓어졌을 것 같다.
촬영현장에 익숙하지 못하니 집중이 안됐다. 카메라 뒤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했다. 촬영현장에 어느 정도 적응되다보니 연기자 흉내를 내려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굉장히 흉해진다. 좋은 색이건 나쁜 색이건 내 색깔을 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버해서 보기 좋은 사람이 있고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 감추면서 하는 것이 내 색깔이라는 생각이 든다.
는 연애담이지만 집중적으로 표출된 부분이 인물들 간의 심리를 통해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다는 거다.
로맨스 자체를 미화한 영화도 아니고 현실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것이 아름답지만 극히 이기적이다. 자기만을 위한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 이야기지만 예쁘게 미화되지 않아서 오히려 개운한 것 같다.
실제로 사랑을 많이 고민하지 않나. 나이 들면서 많이 이기적이 된 건가?
해가 갈수록 점점 이기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사랑이 힘들어지고, 연애가 힘들어지고, 결혼이 힘들어진다. 사랑, 연애, 결혼, 이 자체도 자기한테 맞추려고 한다. 그런데 사랑은 이기적이면 안 된다고 아직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에 나오는 외무관의 모습 중에 내가 현실에 많은 부분을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게 나이가 드는 거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사랑할 준비는 돼 있지 않나.
준비는 늘 돼 있다. 콩깍지 씌운다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앞뒤 재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미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너무 좋은 기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늘 준비는 하는데 쉽지가 않다(웃음).
노총각 패밀리들은 다 결혼했다.
어차피 인생 다 혼자 사는 것 아닌가. 다 자신을 위해서, 덜 외롭기 위해서 패밀리지 상대방을 위한 패밀리가 아니지 않나. 아무리 패밀리의 일원이었다고 해도 자기 짝을 찾으면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것이(웃음) 패밀리의 본질이다. 작년에 결혼식장을 많이 다녔는데 출혈이 좀 심했다(웃음). 절차가 너무 힘들더라. 연예인들은 뭔 이벤트도 그리 많은지. 종신이는 간략하게 한 편인데도 장난이 아니더라. 사람과 사람이 좋아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M&A같은, 비즈니스 같은 느낌이 들어서 머리 아프다. 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단순히 맛만 보는 수준이 아닌데 어떻게 하다 분야가 이렇게 넓어졌나.
잡다한 아이디어들이 많다. 벌리는 것은 좋아하는데 마무리를 못한다. 일은 벌려놓고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성격을 갖고 있다(웃음). 막상 해보면 생각 같지 않은 것들이 90%지만.
돈 많이 벌었겠다.
점쟁이 말은 안 믿는데 항상 하는 이야기가 많이 버는데 많이 나간다고 한다. 그건 정확한 것 같다. 사실 많이 번다. 그런데 많이 나간다. 목돈이 생기면 이것저것 일을 벌인다. 그런데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 많이 날린다.
곧 앨범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고맙게도 이런저런 역들이 계속 주어진다. 엄청난 역은 아니어도 연기하는 것이 재밌어서 즐기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띄엄띄엄 계속 해보고 싶다. 앨범이 3월에 나오기 때문에 앨범 나온 후에 집중적으로 음악을 해야 할 것 같다. 전국투어도 계획 중이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지(웃음).
인터뷰를 준비하며 이현우의 매력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느림의 미학’이 아닐까 싶더라. 순발력이 필요한 상황인데 느리게 해도 타이밍을 맞추고, 무엇을 해도 쫓긴다는 느낌이 안 들고 즐기면서 하는 것 같고.
느림의 미학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장점이 있다. 좀 천천히 느리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한 번 더 거르고 생각하게 된다. 실수를 덜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막상 중요한 순간에는 폭발적인 힘을 내니까
더 매력적인 걸 테고.
그때는 그동안 쌓아뒀던 것이 폭발하는 거다(웃음).
*사진_이상수 sill64@joyc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