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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은 마치고 싶다

최영호 |2007.02.13 17:15
조회 33 |추천 0

 

이 팔다리로 백두대간을 마칠 수 있을까?


필자는 30-40대에 등산에 미쳐있었다.


 위대한 대통령들께서 공직자가 골프를 하면 작살을 내겠다고 하여 실제로 식목일에 골프를 하다가 일주일 뒤에 시골로 쫓겨간 사람도 보았기에 아들이나 다른 사람이름으로 등록을 하는 도둑골프를 포기하니 마땅한 취미생활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신문에서 산악회들의 주말산행을 안내하는 것을 보고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출발하는 주말산행을 시작으로 10여년 가까이 수없는 산행을 하였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을 데리고(아니 강제로 끌고) 동두천의 소요산에 갔다가 10미터 앞에 떨어진 벼락도 보았고, 아들녀석을 끌고 가평의 명지산에 올랐다가 안개짙은 아재비고개에서 지도와 나침반으로 길을 찾다가 완전히 탈진하였던 일도 있다.


 높은 산에서 지도와 나침반만으로는 절대로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은 ‘92년인가 ’92년 초겨울에 공룡능선을 올랐다가 동사직전에 구출되는 일을 겪고 나서 확신하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이미 공룡능선은 물론 용아장성능선까지 여러번 산행을 하였고 특히 공룡능선은 그 장쾌한 능선을 따라 휘파람을 불면서 다니는 것이 너무 좋아 1년에 한 번 이상 다니던 터라 산길도 익숙하였고 등산지도도 등고선 간격이 10미터인 상세지도까지 가지고 있던 터라 비록 겨울산행이었지만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같이 등산을 하기로 하였던 친구가 급한 일이 있어 필자가 하루 전날 먼저 출발하여 설악동에서 기다리던 중 친구가 늦어져 아침 일찍 일어나 조금씩 오르다보니 어느덧 마등령이 된 것이다.


 세존봉에 이르렀을 무렵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였지만 아침이라 시야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친구가 비선대를 출발한 것을 확인한 다음 천천히 마등령까지 올랐다.


 요즘과 달리 당시의 휴대폰은 밧데리가 덩치는 컸지만 수명이 짧아서 친구와의 통화는 마등령에서 끝이 났다.


 금방 따라잡을 것 같은 친구가 나타나지 않자 필자는 체온유지를 위하여 나한봉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진행을 하였는데 그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가 계속되었다.


 필자는 침착하게 눈보라 속에서 나침반과 등고선 지도만으로 나한봉을 찾아 확인한 뒤 더 이상의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 공룡능선의 산행을 포기하고 마등령방향으로 후퇴하기로 하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도대체 대낮인데도 눈보라가 몰아치고 순식간에 쌓인 눈으로 산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충분히 가지고 간 덕분에 설악골로 내려가는 길옆의 동굴처럼 파인 구덩이에서 눈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가 질 무렵에야 마등령에서 친구를 만나 목숨을 건졌다.


 비선대에서부터 친구와 함께 올라온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구조대원은 필자에게 일장훈시를 하였지만 유구무언이라 할 말이 없었다.


 설악골에서의 몇 시간 동안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겁먹었던 일도 벌써 15년이 되었다.


 그 일 이후에 필자는 당시 월급의 반이 넘는 가격에 휴대용 GPS를 구입하였다.


 요 물건은 지금의 자동차용 내비게이터와는 전혀 다르지만 크기는 요즘 휴대폰의 두 배 정도이고, 기온, 기압, 해발고도, 진행속도가 표시되었는데 등산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트랙기능이 있어 진행하는 루트가 계속 표시되므로 산행 중에 안개가 끼거나 길을 잃더라도 최소한 제자리돌기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필자는 그후 모든 산행에 이 물건을 들고 다녔다.


 필자는 한 번 능선을 오르면 가능한 한 능선을 타고 최대한 멀리가는 산행 스타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필자와 한 두번 등산을 하고는 너무 힘들다면서 동반을 사양(?)하는 터에 손님이 끊겨 필자는 주로 혼자서 차량을 운전하여 올라가는 곳에 차를 두고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는 버스나 다른 교통편으로 주차해둔 곳에 가서 차량을 몰고 돌아오는 형식으로 등산을 하였다.


 아내도 지리산 종주까지 같이 할 정도였지만,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입시생 엄마라는 이유로 슬그머니 등산장비만 챙겨주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안내산행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고, 특별한 경우에는 회귀산행 즉 올라간 곳으로 한바퀴 돌아내려올 수 있는 등산코스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백두대간 종주를 3분의 2 정도 하였을 무렵 사표를 내고 변호사 개업을 하였는데 개업 이후에는 더 많은 산행을 하려고 하였으나 생각과 달리 아직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다리의 근육이 많이 풀린 상태이고, 높은 산을 다녀온지가 몇 년이 되어 이제 큰 산을 오르기에는 겁부터 나니 이 기계(?)는 고철이 되어가는가 보다.


 필자는 요즈음도 백두대간을 하는 분들의 블로그 포스트를 보면 마음이 설렌다.


 오늘같이 희뿌연 스모그 속에서 살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면서 향로봉에서의 벌거벗은 북녁을 바라보던 때와 천왕봉에서 내려다보던 섬진강 줄기가 그립다.


 필자는 과연 이제 굳어져가는 요 팔다리로

마치지 못한 백두대간을 완주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 깔려있는 고뇌의 덩어리를 전부 훌훌 털어버리고


저 드높은 천왕봉으로

저 바람드센 대청봉으로

저 눈물나던 대덕산으로


그냥 달아나면 안될까?

(‘07. 2. 13. 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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