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를 찾아준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많은 기억들이 당신과 나사이에 공유되어 있겠지만,
지금 이순간 당신이 저의 곁에 앉아 있음이 저에겐 의미이고, 기쁨입니다.
저의 묘비가 의자모양인 것은
당신이 제 곁에 잠시 앉아 주길 바라여서 입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제가 드리는 마지막 디자인이기도 합니다.
수백 년간 기억해 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살아오지도 않았던것 같습니다.
저를 기억해주고 사랑해 주었던 당신들이 제곁으로 떠나 올 때쯤,
이 묘비도 사라져 바람에 흩어질 것 입니다.
많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은 슬픔의 대상이기 쉽지만.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던 때에 당신과 나눈
추억들이 저에게 더 짙게 남아있습니다.
저는 지금 사라져 있습니다.
위인들이 남긴 멋지고 간결한 무엇은 떠오르지 않지만,
멀리있는 우리가 잠시나마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한 행복들이 하나하나 더해져 단신이 떠나 올때 쯤 ,
또 다른 기억들을 더래 우리는 인사하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날들을 기다립니다.
초라한 저의 묘비는, 아름답지도, 인상적이지도 않겠지만
그안에 제곁의 사람들과 일상들에 진실할 수 있는 감정을 가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물이 감정을 가지는 것은 제게 그런 의미였습니다.
물건이 가지는 위력중에 하나는 그 물건이 본애 가지는 기능 외에,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서랍, 창고, 상자들 속에 물건이 터질듯 많아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개의 경우, 물건의 생산과, 차후의 의미에는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우연이거나 사용하는 사람의 경험과 시간이 의미를 부여 시킵니다.
함께한 사람을 항상 느끼게 하는 하찮은 컵이나, 지금도 얼굴을 붉게 만드는 오래된 인형이 그렇습니다.
물건이 만들어 질때에, 그것이 가지게 될 다른 의미가 의도되어 지거나,
예정되어 징 수 있을까라는 질문던져봅니다.
그리고 그디자인을 이 묘비에 담아 봅니다.
제가 적고 있는 이글이,
제 무덤에 적혀질 날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지금의 저에게, 그리고 제가 떠난 후에 당신에게만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한 의미와 감정들이 이묘비에 담기길 기대합니다.
저의 글이 당신의 시간에 의미를 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당신의 의미들의 아주작은 부분에 저의 기억이 남아,
우리의 기억을 다시 나누며 이야기 할말을 기다릴 뿐입니다.
당신의 열정과 추진력을 본받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꼬옥 만나고 픈 야심찬 디자이너 심태호
맺음도 당신도 먼 훗날 당신의 묘비도 행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