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나지 않는 첫사랑 신드롬
알싸한 박하사탕 같다는 첫사랑의 환상은 도무지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랑은 두번째도 세번째도 다 좋은 것을. 어찌하여 첫번째에 그다지 집착하는 것일까. 모든지 처음이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알지만 사랑은 조금 다르다고 본다. 어쩌면 더 성숙하고 농익어지면서 훨씬 소중하게 다가올지도 모르지. 그러나 영화 속의 사랑은 늘 첫사랑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다. <언니가 간다>도 이 첫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순진한(?) 남녀들의 이야기다.
고등학생 시절 만났던 생날나리 바람둥이 선배에게 당한 상처때문에 도무지 남자를 못사귀는 여자 정주. 서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당시의 상처를 털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일이 꼬이는 모든 원인이 첫남자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고딩 때 그녀는 순진한건지 은근히 까진건지 그 날나리 남자와 춘천 여행을 가서 첫경험까지 치르고 만다. 결국 그녀의 상처를 더 들여다보면 단순히 사랑하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순결을 바친 것에 대한 울분과 허탈함이 크다. 몸 주고 마음 줬는데 너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이다. 그러나 바람둥이 남자의 공식인지 목적을 성취한 남자는 매몰차게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불러 정주에게 씻지못할 상처를 남겼다.
결국 자신의 소망대로 과거로 돌아가 첫남자를 바꾸려하지만 어린시절의 자기 자신과 마주한 정주는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언니가 간다>가 진부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가 원하던데로 첫남자의 선택을 바꾸게 되었다면, 그래서 그 결과로 태훈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거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주가 상황을 바꾸려하면 할수록 점점 어린 정주는 바람둥이 하늬에게 매달리고 결국 어떻게 하든 원래의 상황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누구나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을 것이다. 어디 남자뿐이겠는가. 성적도 바꾸고 싶고 첫직장도 바꾸고 싶을 수 있고 아쉬운 과거는 바구고 싶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토록 우리가 바꾸고자 갈망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바꾼다하여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주는 조금도 자신의 과거를 바꾸지 못했지만 스스로 그 그늘에서 벗어나면서 태훈을 받아들이게 됐다. 과거에 대한 집착, 혹은 미련은 그 과거 탓이 아니라 그것을 잊지 못하는 인간의 탓이다.
94년을 추억하다.
90년대 중반으로 돌아간 영화의 무대는 당시의 가요가 곳곳에 등장한다. 고인이 된 듀스의 멤버 김성재의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유행하던 노래와 춤, 방송 프로그램이 추억을 되세긴다. 90년대 중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영화의 질과 상관없이 반가움이 앞선다. 신세대라는 말이 돌던 94년도 지금 2007년에 돌아보니 어느덧 향수를 자극하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 듀스의 "나를 돌아봐",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이 영화 내내 흐르고 당시 막 도입된 노래방과 스티커 사진의 풍경은 시간여행에 적합하다. 특히 TV를 통해 보이는 듀스의 흥겨운 노래와 춤은 94년 김성재의 갑작스런 피살로 충격을 받았던 많은 팬들에게 또 다른 선물이다.
그녀의 두번째 사랑, 그러나 결국 그의 첫사랑
자신의 어린 시절 선택을 후회하며 한때는 쳐다도 보지 않던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결국 그녀의 선택동기는 무엇인가. 오태훈이 어리버리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말끔하게 변신하고 CEO까지 되었다는 것? 그것 말고 영화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한 가지 더 있다면 그렇게 근사한 "조건"의 남자가 자기를 첫사랑이라 여기며 아직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기억에 조차 희미하던 남자가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 내가 사실은 너 좋아했었다..라고 말하니 참으로 쉽게 마음을 돌린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첫사랑의 그늘에서 벗어났지만 오태훈은 첫사랑사수의 최후 승자가 된 셈이다. 정주에 대한 오태훈의 마음은 기존의 첫사랑 신드롬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고소영 연기의 아쉬움
그녀는 15년에 가까운 연기 경력에도 불구하고 늘 한결같다. 한결같이 어색하고 한결같이 어여쁘다. 그나마 로맨틱코메디 연기는 봐줄만 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아직도 자신이 예쁘게 보여야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그녀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가졌다. 그래서일까. 또래의 여배우들에 비해 연기의 폭이 제한되어 있으며 스스로도 변화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의 그녀는 아직도 "엄마"와 "아줌마"가 되고싶지 않은 늘 아가씨이고 싶은 소망이 끔틀대는 여인네다. 그녀는 한 번도 엄마인 적이 없으며(하루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하루만에 죽었으니) 아줌마였던 적이 없다. 90년대 후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리던 전도연, 심은하, 고소영은 이제 더 이상 트로이카도 아니다. 전도연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나 심은하는 은퇴하여 진정 엄마의 삶으로 접어들었고, 고소영은 오랜만에 보여주는 작품들이 영 시원치 않다. 더 이상 어여쁜 젊은 여자가 아닌 이제는 배우가 되는 그녀가 보고싶다. <비트>에서의 로미는 그녀의 당돌함과 발람함만으로도 만족스러웠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녀에게 발랄한 아름다움만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끔은 그녀가 파마머리를 한 동네 아줌마도 되고, 백빽 울어대는 아이 엄마도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