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나는 그의 곁에 있는 모든 여자를 질투했었다.
칸나라는 여자는 물론이고,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있던 뚱뚱한 아주머니까지.
공원을 걷다가 그가 일으켜 세워 주었던,
넘어진 열 살짜리 꼬마 아이까지.
그게 누구든,
그가 나 이외의 모든 여자에게는
찡그린 표정만 보여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게 터무니 있든 없든 그랬다.
나는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고 싶었다.
가끔 그의 손이 내가 살고 있는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면
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잠들고 싶었다.
어릴 때 피아노 뚜껑을 덮어버려서 흉터가 남은 그의 손가락에
내 얼굴을 대고 싶었다.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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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사랑은,
제 삼자에겐 평범했고 나에겐 비범했다.
늘 그렇듯,
상대가 모르는 외사랑에서 시작된 사랑은
남모르는 통증을 수반한다.
이를테면,
어느 주일 그가 작은 여자아이를 폭 안아주며
"나중에 크면 꼭 오빠한테 시집와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꼬마가 부럽다 못해
"내가 저 아이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 당시 난,
그의 침대에 놓인 인형도 모자라,
그의 도시락통이었으면,
그의 수건이었으면,
그의 신발이었으면,
하고 끝없이 열망하곤 했다.
그 열망이 당시 내 주에너지원이었고,
그 열망 덕에,
나는 평범한 사춘기 소녀에서,
특별한 여성으로 둔갑할 수 있었다.
재잘거리는 친구들을 등지고,
난 혼자 책상에 엎드려 생각했다.
"난 너희들과는 달라." - 우쭐한 통증.
기적처럼 그 사랑이 이루어지고,
그가 "언젠가 오빠에게 시집오지 않으련," 하고 내게 말할 때즈음,
우습게도 내 마음은 이미 열 걸음쯤 멀어져 있었다.
그의 인형, 수건, 도시락통, 신발이 되고자 했던 나의 열망은,
그가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면서 사그라들어 버렸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어디든 함께 가고 싶었던 바람은,
나만의 공간을 조금더 확보하고 싶은 이기심으로 둔갑했고,
이유없는 다툼이 시작되면서,
나는 또다른 열망의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
가진 것에 대한 무감.
그 사이를 끊임없이 방황했던 것이 수 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망보다는,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백 번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세월과 함께 터득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까르르까르르 교복무리를 볼 때면,
혹은 공지영의 솜사탕같은 묘사를 읽을 때면,
질풍노도하던 소녀의 애타던 열망이
한없이 그리워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