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여러분
저는 경기도에 올 때마다 든든합니다. 기를 받습니다. 저의 정치적 백이 경기도에 있습니다. 오년 전, 국민경선 때 경기도민 여러분이 일등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오년이 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금방 흘러갑니다. 아마 이번에도 경기도에서 일등으로 만들어줄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경기도에서 일등하면 대한민국에서 일등합니다.
다음 주가 경칩입니다. 겨울 내 땅속에서 숨죽이며 살던 개구리가 기지개 켜며 나오는 때입니다. 우리에게 겨울이 너무 길었습니다. 기를 펴지 못하고 기죽어서 지냈습니다. 우리도 기 한번 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기지개 한번 크게 켜고 시작합시다. 기왕 기지개 켠 김에 호주에서는 프리허그라는 가슴과 가슴을 부딪히는 포옹을 합니다. 왼쪽, 오른쪽에 계신 분들과 같이 포옹 한번 합시다.
정해년 잘 될 것 같습니다. 평화와 경제를 위한 경기포럼 대표님 가운데 치과의사이신 김승원 원장님은 주역공부만 20년 하셨는데 점심때, 대한민국에 왕운이 들어 기운이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자리에 왜 오셨습니까? 아마 가슴 속의 답답함 때문에 오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가슴 속에 희망을 심고 싶습니다. 정동영과 여러분이 힘을 합치면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지지해서 김대중 정권을 만들었고 노무현 정권을 만들었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힘을 합치면 희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공고화 되었고 사회는 투명해졌습니다. 우리는 민주화, 산업화를 눈부시게 전진시켜 왔습니다. 중국에, 동남아에, 유럽에 어디에 가서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해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해 온 것은 경기포럼 여러분들과 같은 국민들 덕입니다. 기죽지 맙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넘어 우리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가야합니다. 미국 독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개의 기둥으로 가야합니다. 평화와 서민경제라는 두 축으로 가야합니다.
우리는 어디 살고 있습니까? 지정학적으로 한반도, 동북아시아입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두동강 나있습니다. 우리에게 과제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2007년 오늘 한반도 현실 속에서 해결해야하는 과제는 경제, 서민경제입니다. 평화와 서민경제라는 두 기둥을 떠받칠 때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행복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광화문에서는 개성으로 가는 버스 두 대가 출발했습니다. 남쪽의 젊은 기술자 천명과 북쪽 만명의 젊은이들, 만천명이 21개 공장에서 냄비, 화장품 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핵실험이 없었다면 작년 연말까지 300개 공장이 십만평의 부지 위에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늦어졌습니다. 100만평은 터도 닦여 있고 기반시설이 되어있습니다. 이런 개성공단을 10개 만들면 남북의 경제는 통합됩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어려움은 잠재성장력의 벽입니다. 경제에는 사람 노동 자본이 핵심입니다. 대한민국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노령화 인구가 늘어납니다. 그리고 돈 벌만한 업종이 없습니다. 이곳에서도 나가보면 업소라는 업소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장사가 안된다고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처가 없습니다. 은행에는 육백조가 넘는 돈, 육천억달러가 넘는 돈이 보통예금으로 있지만 투자처가 없습니다. 70~80년대 잠재성장율이 7~8%, 90년대에는 5~4%지만 더 내갑니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리기 위한 유일한 길을 남북의 경제통합입니다. 북에는 천만명이 넘는 말이 통하는 양질의 젊은이가 있습니다. 땅값도 쌉니다. 남에는 땅값이 문제이지만, 개성공단의 평당 가격은 14만원입니다. 서울 경기에는 이런 땅이 없습니다. 바로 이 개성공단은 북을 돕는 사업이 아닌 우리를 위한 자조적 사업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한나라당과 그 당의 후보들이 개성공단을 닫으라 했습니다.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라, 해상을 봉쇄하라고 했습니다. PSI가 그것입니다. 국지전을 감수하고라도 본때를 보여라고 말했습니다. 자신들의 본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과연 그때 그러했으면 6자회담 타결이 되었겠습니까? 바로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 민주정부 10년의 역사는 옳고 여러분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2.13 합의는 우리에게 미래를 제시해주는 나침반입니다. 작게 이야기하면 북핵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는 것이지만 크게 보면 우리는 과거에, 조금 전 화면에도 전쟁의 상처가 있었지만 우리는 전쟁이 나는 줄도 모르고 전쟁이 일어났고 분단이 되는 줄도 모르고 분단이 되었으며 식민지가 되는 줄도 모르고 식민지가 되고 쿠데타가 발생했는지도 모르고 쿠테타가 일어난 역사를 바로 돌릴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2000년 가을 처음으로 우리 민족이 역사의 낙오자로부터 세계사의 주류의 흐름에 합류하려는 그 순간에 마가 끼었습니다. 2000년은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으며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갔고 김정일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즉, 한반도를 냉전으로부터 탈냉전으로 이끌어내려는 흐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12월 8일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악의 축, 선제공격 등의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즉, 한반도에서 다시 신냉전이 거듭되었다.
이제 2.13으로 다시 방향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미국은 삼천명이 넘는 젊은이가 이라크에서 죽었습니다. 이라크는 수령입니다. 이것을 밀어붙인 사람은 네오콘들입니다. 네오콘을 우리말로 하면 신보수, 뉴라이트이고 뉴라이트와 상생아가 거대야당입니다. 미국은 내년, 한국은 올해 선거가 치루어집니다. 미국에서 최소한 네오콘은 퇴락합니다. 네오콘 인사 중 한명은 2.13합의 후 이틀 지나 잘못된 합의다라고 했고, 또 한 사람은 사표를 던졌습니다. 미국은 내년에 정권이 바뀌던지, 아니면 네오콘은 물러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제 한반도에서 냉전적 시각을 가진 반북냉전 철학이 들어서면 또 엇박자가 납니다. 6년 전에는 미국 때문에 올해는 한국에서 엇박자가 납니다. 그러나 평화와 경제를 위한 경기포럼이 출범하는 오늘, 우리는 과거로 돌아서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이 자리에 왔다 확신한다.
경제 어렵습니다. 서민경제 어렵습니다. 누구나 경제를 이야기 합니다. 돈 버는 것이 중요합니다. 돈이 싫다고 한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개인도 국가도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국가경제가 지금 대한민국 뉴스를 보면 물가는 안정되어 있고 수출은 3200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경제가 아닙니다. 경제성장률 개념의 시대로부터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수출이 아닌 내수를 통한 사천팔백만 국민 모두의 호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합니다.
수출경제, 대기업경제만으로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한가지만 강조하면 우리의 목표는 오십년 전에는 가나 콩고와 함께 출발했지만 지금은 비교가 안됩니다. 바로 우리가 민주주의의 가치위에 이루어 낸 것입니다. 다음의 목표는 독일 일본 프랑스 이런 선진국들입니다. 이런 나라들과 경쟁하는 비결은 서민경제와 일반 자영업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민생경제 핵심인 중소기업 300만개에는 제조기업이 32만개이고 400만명이 종사합니다. 이런 제조업과 관련하여 도소매. 숙박, 운송 등 1100만명이 먹고 삽니다. 노동인구의 절반입니다. 자영업이 안된다고 합니다. 핵심은 중소제조기업에 온기가 돌아야 합니다. 대기업은 잘나가는데 중소기업은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구하기도 힘들고 수익구조도 어렵습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런데 일본 대만 독일의 선진국은 국민이 잘삽니다. 국민생활이 우리보다 윤택한 일류국가입니다. 차이는 그 나라들은 중소기업이 강한나라입니다. 대기업도 있지만 일본은 모노주꾸리라고하는 손끈으로 물건 만드는 것이 발전된 나라입니다. 독일에 가 있는 동안 중소기업 현장을 살펴보며 어떻게 모든 국민이 중산층으로 잘사는가를 살펴보니 중소기업이 중산층을 담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무계급 사회입니다. 모두가 생활수준이 비슷한 것은 중소기업 때문입니다.
대만 독일 일본이 가능한데 왜 대한민국은 안되는가? 그것은 책상에서 만드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 부처별로 1450가지의 중소기업 정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가려운 곳은 등인데 정부는 허벅지를 긁고 있는 것입니다.
핵심은 4가지입니다. 땅문서나 집문서 같은 담보, 두 번째는 기술, 세 번째는 사기, 네 번째는 돈 즉, 인력입니다. 방법이 없느냐? 길은 있습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것을 해결하면 됩니다. 담보, 이 문제 다른 나라는 기술평가로 해결합니다. 가령 독일의 슈트투가르트는 수만건의 기술평가 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아이디어와 사업성을 평가하고, 평가하고 나면 돈이 붙습니다. 중소기업 생태계의 무성한 숲은 만듭니다.
두 번째는 기술입니다. 대기업의 기술력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연구소도 인력도 쓰기 어렵다. 참여정부는 올해 예산이 160조인데 9조 8천억을 기술개발지원에 예산을 할애했습니다. 그러나 효과가 잘 안납니다. 이 중에 4%, 3600억원만 중소기업에 지원됩니다.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십조의 돈이 큰 창고에 문서로 쌓입니다. 물건 만드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미국은 1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을 가차 창출하는데 우리는 100원을 투자해서 10원을 창출하는 비효율을 어떻게 바꿔낼 수 있느냐. 대통령만이 할 수 있습니다. 공장과 현장의 필요에 의해서 아래에서 위로 연계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혁해야 합니다. 알고 있음에도 개혁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하나 인간은 이기심의 동물입니다. 결국 사업을 열심히 하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집니다. 독일은 올 3월에 법을 통화시킬 것입니다. 중소 제조기업을 하는 사장은 10년동안 일자리를 유지했을 때 상속세를 없애는 것입니다. 중국과 인도는 중소제조기업의 상속세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우리 국민이 합의만 한다면 중 소제조기업하는 분들에게 10년동안 일자리를 유지하면 상속세를 없애줄 수 있습니다.
은행장들, 경제 분석가들은 제안합니다. 은행에 있는 600조가 갈 곳이 없다고. 이 돈을 중소기업에 투자했을 때 투자한 돈에 대한 혜택을 주면 이 돈으로 중소기업은 튼튼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현장에서 나오는 정책입니다. 탁상이 아닌, 현장에서 즉, 수출이나 대기업이 잘되는 쪽이 아닌 어려운 쪽에 집중될 때 중소기업 문제 왜 대한민국은 못 풀겠습니까. 독일 일본 대만과 같이 만들면 자영업도 장사도 돌아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제가 엊그제 2박3일 인천 부계동 철거민 촌에서 철거민들과 함께 먹고 자고 애환을 이야기했습니다. 이것도 알고 있으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35조는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생활 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어렵고 어려우니 이백 삼백 전셋집에서, 산동네에서 십년 이십년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들은 어머니가 없거나, 혼자 할머니가 손주들을 데리고 또는 질병을 안고 집집마다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도 정부가 있어야 하고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헌법이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려면 주공이 재개발법에 의해서 형식적 보상이 아닌 원래 살던 분들이 돌아와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을 참여정부가, 열린우리당이 과거정부와 다르게 하지 못했구나 반성했습니다. 대한민국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철거민들을 밀어내고 생긴 이윤과 세금을 합쳐서 주거환경 개선과 함께 그 자리에 살았던 사람들이 51%이상은 다시 돌아와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포용적이 사회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할 길의 가장 주요한 가치는 포용입니다. 대북포용, 대내포용, 상호포용입니다. 미국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아동에게 1달러를 투자하면 100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장애인 공장에서 그들과 함께 칫솔을 만들었습니다. 저도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불량률이 비장애인이 만드는 것보다 적고 품질은 우수합니다. 정말 집중력이 놀라웠습니다. 혼신을 다해서 그들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장님의 애로사항은 판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애인 일터에서 만든다는 편견과 마케팅이 익숙치 않다보니 생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정부가 도와줘야 합니다. 칫솔이 팔리면 공장을 늘리고 장애인들에게 일터가 보장되고 더 많은 장애인들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일터는 단순히 일이 아닌 존재 의미입니다.
선진민주 국가가 되려면 포용으로 학교에서도 통합교육으로, 동네에서도 시설에서도 격리가 아닌 가정에서도 케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사회가 배제하고 소외 시키는 것이 아닌 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대북포용 대내포용 상호포용 이것이 우리가 그리는 내일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전당대회가 끝나는 날, 탈여의도를 선언했습니다. 저는 2004년 국회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여기 두분의 국회의원님이 있는데 통합신당의 길에 한분은 당에, 한분은 당에 안계십니다. 그러나 목표는 같습니다. 여의도에 지도부가 있고 통합신당의 가치를 공유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 역할은 이석현의원과 이종걸의원이 하고 저는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라는 열망을 가지고 서민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내일 부터는 경남창원에 갑니다. 중소기업의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 하려합니다. 저는 평화와 경제를 위한 경기포럼의 여러분들과 함께 하면서 앞으로의 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대학시절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내나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한국사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던 청년시절, 유신독재 속에서 인간은 인간이 아닌 동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신체의 자유도, 집회 결사의 자유도, 말할 자유도 아무 자유가 없었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고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포승줄에 묶여 고등군사법원에 가면서 도로위에서 두팔을 흔들던 행인의 자유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신체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 속 깊이 새겼습니다.
청년시절 어머니와 평화시장에서 옷장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평화 그러면 평화시장이 떠오릅니다. 저희 집은 아들이 9명이었습니다. 어머니께 훈장을 드려야합니다. 난리통에 아들 넷을 잃고 제 밑에도 한명을 잃어 4명만 키웠습니다. 다섯째인데 장남입니다. 제가 태어난 산골동네 뒷산에는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습니다. 태어난 날도 공교롭지만 어떤 동네 친구들은 아버지가 한명도 없습니다. 철들고 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대학에 입학하고 서울에 간 아들이 툭하면 경찰서, 구치소를 왔다 갔다 하니 어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서울로 오셨습니다. 판자촌에 집을 얻고 재봉틀을 놓고 옷을 만드셨습니다. 아동복 바지였는데 새벽이면 평화시장에 파셨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나갔다가 버스 차장이 재수없다고 밀치는 바람에 버스에서 뒹구셨습니다. 온몸에 피멍이 들었고 전 자다가 일어나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안합니다. 저는 다음날 새벽부터 77번 버스타고 옷을 납품하고 원단, 실, 단추, 고무밴드 같은 것을 사서 백묵으로 재단하고 오리고, 오바로크도 치고, 시다도 하며 칠팔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현역정치인 가운데 장사 안되서 속 타는 것을 정동영만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정치한지가 12년이 됩니다. 정치를 하는 동안 끝없이 도전이 밀려왔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늘 청년시절 가슴속에 새겼던 무엇이 옳고, 무엇이 서민의 아픔이고, 저의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해 왔습니다. 그리고 실천했습니다.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있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평화와 경제라는 깃발 아래,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평화와 경제를 위한 경기포럼 식구들이 함께 일어선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