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가로 보이는 집안의 방문에 민화가 붙여있다. 민화는 상류계층을 포함한 민간 수요의 회화다. 오른쪽은 방문에 붙인 그림과 유사한 민화다. 이 그림은 프랑스 인류학자 바라가 1880년대 서울에서 구입하여 파리로 가져간 민화다. 왼쪽 , 오른쪽 파리 기메박물관 소장.
민화냐 아니면 채색화냐, 그 선택의 기로
민화연구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민화의 정의에 관한 문제다. 사실 민화의 정의는 늘상 민화 연구의 첫머리에 거론되지만, 실제 민화 연구의 결론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민화의 정의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민화 연구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많은 선학들이 민화의 개념과 타당성 여부에 대하여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아직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화가 성행한 18, 19세기에는 민화를 속화(俗畵)라 일컬었다. 18세기말 강이천(姜彝天, 1768〜1801)은 「한경사 漢京詞」라는 시를 통해 광통교 기둥에 걸고 파는 속화에 대하여 읊었다. 19세기 전반 이규경(李圭景, 1788〜?)은 「제병족속화변증설 題屛族俗畵辨證說」에서 여항(閭巷)에서 병풍, 족자 또는 벽에 붙인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 소상팔경도(蕭湘八景圖), 십장생도(十長生圖)와 같은 그림을 속화라 불렀다. 속화는 여항이란 말이 시사하듯 민간의 그림이다. 원래 속화는 문인화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그림을 가리키는 것으로 깨달음의 정도에 의한 구분이지만, 그 바탕에는 명칭이 시사하듯 신분의 차별의식이 깔려있다.
그렇다면 속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민화에 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속화라는 용어를 간단히 사용하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18, 19세기에 사용된 속화는 민화뿐 만아니라 풍속화를 의미했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속화라는 의미가 저속한 그림이라는 뜻으로 폄하하는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를 대표적인 명칭으로서 내세우기에는 객관성과 공정성이란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민화라는 용어를 처음 제기한 야나기 무네요시. 앞으로 계속 민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려면, 궁중회화를 제외한 민간 수요의 회화만으로 한정해야 할 것이다.
속화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이는 야나기 소에츠(柳宗悅, 1889〜1961)이다. 1937년 월간지 『공예 工藝』에 실은 「공예적 회화」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민화라는 용어를 정의하였다.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라 하자."
그는 민화를 취향, 제작, 수요 세 측면에서 정의하였다. 여기서 민중은 천재 작가가 아닌 보통사람을 가리킨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생활용품 속에서 천재의 예술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조형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때문에 그는 민화의 중요한 특색으로 무명성, 즉 "이름없는 화가"의 그림을 꼽았다. 민화에는 화가의 이름이 명기된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명성이란 정의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 보듯, 이후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발단이 되었다.
민화라는 용어에 대하여 선뜻 동의하지 않는 우리나라 민화연구가들은 각기 여러가지 용어를 제안하거나 재해석하기에 이른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민화연구가들은 민화의 범주를 서민, 민중으로 한정하는 시각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민화대신 ‘겨레그림’, ‘한민화(韓民畵)’ 등의 용어를 제안하면서 민화를 한국 회화의 중심으로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는 민화가 하치의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회화의 뿌리이자 중심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민화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학문적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여 학계의 호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한창 민주화운동이 전개되었던 1980년대에는 민화를 민중미술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민화를 봉건사회가 해체되는 민중항쟁시기에 민족적 삶의 정서가 표출되는 그림으로 인식한 것이다. 민화가 민중들이 애호한 그림임에는 틀림없지만, 단순한 생활그림을 민중미술과 같이 정치적으로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개최한 "Hopes and Aspirations"라는 전시회에서 김금자선생에 의해 처음으로 민화대신 채색화(Decorative Painting)란 용어가 제기되어 구미 학계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1990년대에는 여러 논란을 불러온 민화라는 용어 대신에 채색화[Decorative Painting]란 중립적인 개념이 제시되었다. 김금자(Kumja Paik Kim)는 한국회화를 채색화와 수묵화(Ink Monochrome Painting)로 양분하고, 채색화를 다시 종교회화, 궁중회화, 민화로 세분하였다. 채색화를 내세운 이유는 민화와 궁중회화가 유사한 화풍과 주제를 공유하고 있고 외국에서 유난히 한국 전통회화 가운데 채색화를 선호하는 취향을 고려한 제안이다. 이러한 분류는 궁중회화와 민화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둘을 포괄하는 범주를 제기한 것이지, 민화의 정의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이 용어에도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민화 중에 엄연히 존재하는 수묵화는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가 가장 큰 문제점이고, 채색화의 분류에는 고분벽화, 사대부회화 등이 빠져있고 보완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구미의 학계의 공감을 어느 정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루어진 민화 전시회에서는 거의 Decorative Painting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추세다.
채색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민화 속에 적지 않게 존재하는 수묵화를 배제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일본민예관 소장.(도판출처 : 반갑다 우리민화)
최근에는 궁중회화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민화와 궁중회화를 분리해서 보려는 주장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홍남의 모란도병, 이성미의 오봉도병, 박정혜의 궁중기록화, 강관식의 책거리, 이수미의 궁중장식화 연구 등이 그러한 성과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로 말미암아 그동안 지나치게 확대된 민화의 범주를 좀더 명료하게 규정하고, 궁정회화와 민화와 같이 신분적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민화는 하류계층인 서민들만의 그림은 아니다. 과 같은 사진 자료나 지방 사대부가의 소장품 조사에 의하면, 민화의 수요자는 상류계층인 사대부들도 포함된다. 그렇다고 사대부의 감상화를 민화라 하지 않는다. 집안 치례를 위해 사용되는 장식화에 한정된다. 따라서 민화란 "민간수요의 장식화"로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민간은 서민뿐만 아니라 사대부도 포함한 개념이다.
베트남 동호의 길거리에서 민화를 파는 모습. 민화는 민간이 길거리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싼 그림이다.
이러한 기존의 논의와 별도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세화(歲畵)라는 용어의 사용도 검토해볼 만하다. 중국에서는 민화를 민간연화(民間年畵)라 하고, 베트남에서는 테트화라 부른다. 연화는 우리의 세화와 같은 개념으로 세해를 축복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란 의미이고, 궁중연화도 있기 때문에 그것들과 구분하기 위해 민간으로 한정한 것이다. 테트(Tet)란 대나무의 마디를 가리키는 것으로, 새해란 의미다. 테트화 역시 세시풍속과 관련된 개념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러한 동아시아 회화의 동향에 따라 세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민화의 경우 세화가 그 중심을 이룬 것은 틀림없지만, 민화들이 모두 세화로만 그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용어의 선택을 다소 주저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 민화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민화관련 공모전에서는 민화라는 이름아래 궁중회화가 민화와 함께 출품되고 있고, 민화가들은 민화와 더불어 궁중회화를 함께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따져 올라가면, 야나기 무네요시가 정의한 "이름없는 화가의 그림"이라는 데 있다. 관례상 화가의 이름을 적지 않는 궁중회화도 이 정의에 의하여 민화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민화가들은 이 정의에 따라 민화와 더불어 궁중회화를 민화라는 이름 아래 제작하고 있다.
또한 민화관련 공모전에서는 점차 순수 민화보다는 궁중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한다. 궁중회화는 몇달에 걸쳐 제작하는 반면, 순수 민화는 하루 또는 며칠만에 완성할 수 있다. 때문에 궁중회화와 민화가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잠깐 그린 순수 민화보다는 오랜 정성이 깃든 궁중회화가 심사위원의 눈에 먼저 잡히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미술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점차 근접해 가고 있는 민화의 정의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민화가들의 현실은 이처럼 서로 다르다. 만일 민화의 정의를 미술사학자들의 의견처럼 민화를 궁중회화로부터 분리한다면, 민화가들이 제작하는 그림의 범위가 상당히 축소되거나 다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과연 현재 활동하는 민화가들이 제작이 위축되는 현실적인 여건과 기득권이 축소되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는 두가지의 선택이 놓여있다. 하나는 궁중회화를 제외한 민간회화라는 의미로 민화의 개념을 축소하여 사용하던가, 아니면 현재의 여러 정황을 감안한 다른 용어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만일 민화가들의 제작 현실을 반영하여 민화를 정의한다면, 민화와 궁중회화를 포괄하는 다른 개념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용하는 민화보다는 Decorative Painting, 즉 채색화가 보다 더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용어가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이다.
이밖에 다른 용어의 사용도 검토할 수 있지만, 그동안 제기되었던 많은 용어들이 대부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이내 사라져 버리는 운명에 처했다. 그런 가운데 민화와 채색화가 비교적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용어인 것이다. 기존 제기된 용어 가운데 선택한다면, 이 둘 중의 하나가 앞으로의 용어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다소 혼란스럽게 얽혀있는 민화의 용어 문제는 민화 이론가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커다란 숙제인 것이다. @ 정병모
이 글은 "민화이 개념이 너무 부풀려져 있다."와 관련이 있는 글입니다. 이밖에 "궁중회화에서 민화까지", "민화와 풍속화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를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