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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원을 향하여 보내는 따뜻한 시선... <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백혁현 |2007.02.28 01:33
조회 11,777 |추천 29


 

  독특한 필명이다. 영국의 그룹 (처음 들어본다)의 제목에서 프랭키를 따오고, 대학시절의 별명인 릴리(백합)을 합하여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단다. 그런가하면 이 작가의 프로필이 또 심상치 않다.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이고 일러스트레이터이며 그림책 작가에 디자이너를 겸하고 있으며, 작사와 작곡을 하고, 방송구성작가인가 하면 방송인이고 포토그래퍼이기도 하단다. 여기에 ‘일본 미녀 선별가 협회’의 회장을 맡는가하면 성인 비디오 업체가 주최하는 비디오 선정대회의 총재를 맡기도 한다니, 전방위도 이런 전방위가 없다.


  그런데 소설은 이처럼 (다재다능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좌충우돌의 작가가 썼다고 보기에는 차분한 편이다. 이런 비유가 맞을지 모르지만, 하재봉이(시인에 소설가에 평론가에 교수에 방송인에 홈쇼핑 모델까지 했으니...) 심윤경의 풍으로 쓴 성장소설을 읽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뭐 여하튼 동명의 소설인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에 비하여 서너배쯤 좋은 소설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청년 시절에 이르는 시간 동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자전소설이다. ‘자신이 창피를 당하는 건 괜찮지만 남에게 창피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는 엄마, 언제나 ‘마이페이스’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가는 아버지, 그리고 이러한 부모 밑에서 오락가락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어린 아이의 하루와 한 해는 농밀하다. 점과 점의 틈새에 다시 무수한 점이 뻑뻑하게 차있을만큼 밀도가 높고, 정상적인 시간이 착실한 속도로 착착 진행된다... 그들에게는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시간’ 같은 건 없다... 어른의 하루와 한 해는 덤덤하다. 다선 선로처럼 앞뒤로 오락가락하다가 떠민 것처럼 휩쓸려간다. 전진인지 후퇴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모양새로 슬로모션을 ‘빨리 감기’한 듯한 시간이 달리가 그린 시계처럼 움직인다... ‘그냥 어쩌다보니 지나가는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다.”


  이또한 선입견일 터인데, 작가의 이력에서 보여지는 난장판의 기운을 소설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말한바와 같이 소설은 침착하고 삶에 대한 성찰과 번뜩이는 기지로 가득하다. 아이의 시간과 어른의 시간을 비교한 위와 같은 부분이 특히 그렇다. 성장소설 특유의,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권역별 분석을 굉장히 정확하게 해내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가하면 성장소설 게다가 자전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가지는 소설은 때때로 꽤 감상적이다. 여기에 헌신적인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서 무한정 받기만 하는 아들이라는 설정이 끼어들고 보면 쉽사리 그러한 감상을 떨쳐낼 수 없다. 그래도 엄니의 작아만 보이는 인생을 바라보는 열 여덟 살의 내가 ‘그건 자신의 인생을 뚝 잘라 나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라는 답에 도달할 때는 대견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종종 보여지는(선입견에 딱 맞아 떨어지는), 문장 속의 위트도 소설을 읽는 또다른 재미로 충분하다.


  “양쪽 귓불에 셀 수 없을 만큼 피어스를 꽂아 넣은 염색머리의 간호사가 무시무시하게 기다란 바늘의 예비 마취주사를 엄니의 어깨에 찔러 넣었다... 이봐요, 당신이 평소에 줄리아나 도쿄에서 부채를 흔들며 팬티를 다 내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주사만은 부디 정확하게 놔줘, 라고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여하간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세 살 친가가 있던 고쿠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보내는 외가의 동네인 치쿠호를 거쳐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며 성인의 노릇을 해내는 동안 엄마의 (마음은 여전하지만) 몸은 변하고, 그렇게 엄마에게 일어난 변화를 계기로 세 명의 단촐한 가족은 도쿄에서 한 자리에 모인다.


  “거울에 비친 도쿄 타워를 보며 미소 짓는 엄니. 창문 너머로 직접 그것을 바라보는 아부지. 그리고 그 두 사람과 두 개의 도쿄 타워를 함께 바라보는 나... 웬일인지 우리는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다. 따로따로 떨어져 살던 세 사람이 마치 도쿄 타워에 끌려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곳에 함께 있었다.”


  웃기고 울릴 줄 아는 작가의 기술, 아니 이제 일본에서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은 듯한 작가의 우여곡절이 풍부한 삶은 고스란히 소설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문학적인 어떤 성취를 말할만한 소설은 아니지만, 일상의 고단함으로 인해 잊고 있던 제 삶의 시원을 향해 한번쯤 고개 돌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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