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Babel
감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엘르 패닝
개봉 :
2007.02.22 / 18세 이상




시놉시스 | 스틸컷 | 예고편
TV를 본다. 저멀리 중동에서 벌어지는 유혈사태 소식이 마치 내집 안방에서 벌어지는 듯 생생하게 보도된다. 20여년전 티브이가 흔해졌을 때, 지구촌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졌었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현실이 되었다. 작은 단말기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수다떠는 세상,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네크워크기술로 공간의 벽은 허물어지고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지만 기술의 발전은 세상을 복잡하게 만든다. 복잡한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을만들어낸다. 다양한 인간은 다양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한다. 언어가 다르니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 그래서 세대공감하자고 오락프로에서 퀴즈도 내고 하는 거다.
사람사이의 문제는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다. 오해는 서로 간의 말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온다. 나는 'A'라고 이야기했는데 상대는 'B'라고 알아들으면 'A' 와 'B' 만큼 두 사람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한 인간의 간극은 쉽게 회복되기 힘들다. 갈수록 말 한마디 뺃기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영화은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관계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저멀리 겁나게 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의 삶도 나와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계가 마치 벙어리들만이 살아가는 백치들의 세계가 아닐까 라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분쟁이 잦을 수는 없잖겠는가
We are the world!
영화는 총 한자루에 얽힌 여러 개의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식의 구성이다. 다양한 국가, 다양한 인종, 다양한 계층속 사람들이 시간의 순서와는 관련없이 관객들에게 '툭''툭' 던져져 보여진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개개의 에피소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로 맞물려돌아가고 종국에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을 일러준다. "너와 나는 무관하지 않아!"
바벨...말이 안통하는 세상
모로코
여행을 온 리처드(브래드 피트)와 수잔(케이트 블란쳇)은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작은 문화적 차이에도 의견을 달리하는 두 사람...관계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희미해져 간다. 위기의 순간, 갑자기 날아든 정체불명의 총알이 수잔의 늑골을 관통한다.
멕시코
리처드의 두 아이들을 돌보는 멕시코 이민자 아멜리아.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에 가야하지만 그녀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처드는 자신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만 한다. "나 원, 참! 애들때문에 한 번뿐인 아들 결혼식에도 가지말라는 거야" 아멜리아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리처드의 부탁을 뒤로하고 두 아이와 함께 멕시코 국경을 넘는다.
일본
청각장애인 여고생 치에코...엄마의 자살 이후 말문 뿐 아니라 마음의 문까지 닫는다. 엄마를 잊은 듯한 아빠도 싫고, 오심을 하는 배구심판도 싫다. 세상을 향해 벽을 쌓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타인으로부터의 관심에 더욱 목마르기만 하다. 하지만 세상은 말 못하는 그녀에게 쉽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말로 다가가기 힘듬을 깨달은 치에코...몸으로 세상과 교감 하려한다.
모로코
인적이 드문 모로코의 한 시골에서 양을 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유세프와 아흐메드 형제,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바위산과 시끄러운 양들, 그리고 어린 양을 노리는 늑대들 뿐이다. 더 할 나위 없이 단순한 삶이지만 형제들간에는 사소한 의견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이 때, 이들 소년들의 손에 총한자루가 들어온다. 출처를 알수 없는 이 물건은 다이너마이트의 뇌관처럼 곪을 때로 곪은 관계들을 뒤흔들게 된다.
21세기는 용서와 이해의 시대
모로코
상처입은 일행을 두고 자기 살겠다고 떠나버린 관광객들 덕분에 리처드와 수잔은 외딴 마을에서 홀로 남게된다. 동포에게 조차도 외면 당한 그들이지만 마을사람들은 극진히 두 사람을 보살핀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가슴으로 온정을 느낀 리처드와 수잔. 그래서였을까 닫혀있던 두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멕시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운전하던 조카녀석의 '욱'하는 성질때문에 사막 한가운데 아이들과 남겨진 그녀. 결국 유괴미수로 쇠고랑을 차고 추방까지 당하는 처지가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절절했지만 경찰서에선 그런 순수한 의도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고 경찰서를 나서는 그녀...그래도 그녀 곁에는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는 아들이 있다.
일본
끝없이 방황하는 치에코...아버지에게 반항도 하고, 엑스터시 같은 걸 먹고'뿅' 가기도 한다. 사건을 빌미로 형사를 꼬시고 거리의 아이들에게 돌출행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몸으로라도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그녀다. 하지만 그런 처절한 노력에도 치에코는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마지막 총때문에 아버지를 찾아온 형사에게까지 거부당하자, 치에코는 깨닫는다...말과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새로운 바벨탑의 건설, 그것은...
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교만에 경종을 울린다. 수천가지 언어로 흩어져버린 인류...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밀실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온다. 조금씩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다양한 통로가 생긴다.
이 때 인간들은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여 과학으로 모든 인류를 새로운 바벨탑으로 이끌려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영화속 주인공들처럼 서로 말이 잘 안 통한다. 그것은 인간들간에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마음. 세상에 대한 열린 생각이 사적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이 세계속에서 잘못된 바벨탑의 건설로 다시금 세상이 혼돈속으로 빠지는 걸 막을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