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미안하다....]
필자는 고추먹고 맴맴, 담배먹고 맴맴하는 아주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고향을 떠난 지도 수십년이 되었고, 피붙이가 한 사람도 살지 않아 말만 고향이지 고향을 잊다시피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이따금씩 고향소식을 전해주고 그들의 삶을 전해오고 있는 것은 아마도 필자가 자신들과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한 자랑스런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나 대학 친구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애경사를 함께 도와가면서 자주 연락을 하여 왔지만, 초등학교 친구들은 웬만한 애로사항이 있더라도 고향에서 그냥그냥 자기들끼리 해결하여 왔는지 초딩친구들의 애로사항 해결부탁은 그렇게 자주 있지 않은 편이다.
2-3년전 어떤 초딩동창이 전화를 하였다.
이름은 기억나지만, 얼굴은 가물가물한.....
졸업후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그야말로 40년도 넘은 친구의 전화였다.
자신은 운전 중에 신호를 위반한 일이 없는데 경찰관이 신호위반으로 적발하여 벌점과 범칙금 얼마가 나와서 억울한 마음에 정식재판을 청구하려 하니 고향지역에 있는 변호사를 한 사람 소개하여 달라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현직에서 퇴직한 지 얼마 안되는 소위 잘나가는 변호사(?)로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가 그동안 어떻게 변하였는지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수십년만에 동창인 변호사를 찾아 그것도 도로교통법위반 정도의 사건으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재판에 임하더라도 변호인을 선임하여 증인신청을 하고 억울함을 호소하여 본들 친구와 안면이 있다는 우리측의 증인이 친구의 편을 드는 증언을 하여준다 한들 별다른 감정이 없이 우연히 현장에서 위반사실을 적발한 경찰관의 진술을 백번 더 신뢰할 법원의 입장을 생각하면 패소가 명백할 뿐만 아니라
항소심,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간들 무죄를 받기 힘든 사건이고, 또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그동안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다소 억울하지만 벌점과 범칙금을 받아들이고 욕이나 한 번하는 것이 친구에게 훨씬 더 이익이 되리라고 설명을 하였다.
친구는 필자의 충고를 듣지 않고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재판을 받은 모양인데 나중에 알고보니 필자가 예견한대로 대법원까지 가서도 친구는 유죄가 인정되었다.
허지만, 친구는 지금까지도 억울함을 금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항소심에서 전화를 한 번하고는 그뒤로 전화도 없는 것을 보면 필자의 속물근성이 크게 섭섭하다고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친구야, 미안하다.....
얼마 전 어느 법원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었다(대구지방법원 2007. 1. 12.선고 2006고단5359 도로교통법위반).
어떤 택시운전사가 새벽 1시 반에 다른 택시운전사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유턴을 하였다고 고발을 하였는데 고발당한 운전자는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였다.
고발한 사람은 피고인의 택시 뒤에서 택시를 운전하여 진행하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건너편에 있던 손님을 태우기 위하여 유턴지점이 아닌 곳에서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유턴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 수첩에 피고인 택시의 번호와 위반장소, 위반행태를 기재하였고,
다른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자신의 운전에 장애를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약 3년전부터 5-60건 정도의 위반행위를 신고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사인의 신고만을 토대로 범법행위를 적발하는 경우에는 단순한 위반내용에 관한 진술 이외에 그 진술의 신빙성을 더해줄 수 있는 구체적, 객관적 정황이나 동기, 또는 사진 등의 추가적인 입증자료가 필요한데
고발한 택시운전사가 진술한 정도의 정황이나 신고동기만으로는 신고내용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구체적 정황이 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그 진술의 신빙성을 더해 줄 수 있는 추가적인 자료도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하였다.
친구를 적발한 경찰관이 실수를 하였을 가능성도 있는데
필자는 지례 현실적인 이해득실만을 생각하고
친구도 필자의 방식대로 따라줄 것을 강요하였던 것이다.
칙칙한 날씨 속에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친구가 필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냥 고향의 변호사 한 사람을 소개하여 줄 것을....
아니 좀더 친절하고 명확하게 법률적인 자문을 하여 줄 것을.....
그런 생각이 든다....
형편이 어려워 대학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였지만
조상이 물려준 땅에서 부르튼 손으로 농사를 지어
연로한 부모님과 철없는 새끼들을 키워가면서도
이웃과 자식들과 어른들에게
필자의 출세를 칭송하면서
내 친구도 이런 놈이 있다고 두고두고 자랑하였을
내 친구
친구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07. 3. 2. 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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