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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기사中

강승묵 |2007.03.03 16:38
조회 66 |추천 0

68년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은 마산의 한일합섬 공장에 들렀다.
수천 명의 여공들이 수출용 스웨터를 만들고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앳된 소녀들은 나이보다도 어려 보였으며 키도 작았다.
박대통령은 한 여공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영어 글씨를 모르니 감독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글썽이는 여공을 바라보던 대통령의 시선은
옆에서 안내하던 김한수 사장눈과 마주쳤다.
 박대통령이 "김사장"하고 말을 꺼내자마자 김사장은
"당장 야간학교를 개설하겠습니다.
중학교 과정부터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돈 없어 공부 못한 것이 한이라는데 시설을 충실히 해주시오."
"공부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일합섬에서는 여공들을 위한 야간고등학교가 설립됐다.
박대통령은, 이들에게 수료증은 줄 수 있지만
졸업장을 줄 수는 없다고 버티는 문교부 장관에게 특명을 내려
그런 규정을 뜯어고치게 했다.

공부 못한 한을 품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땀흘려 수출한국의 일선을 지켰던 여공들은
그 뒤 어머니들이 되었고 자식들은 대학졸업생이 되었다.
그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공장마다 여성 노동자들이 모자라게 된다.
30년 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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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버지가 공무원 월급으로 유학 못 보낸다고 했다”
“청와대서 보리밥만 먹어 아직도 잡곡밥 먹어”
조선닷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朴槿 ) 육영재단 이사장이
월간조선과 첫 인터뷰를 갖고, 가족들과 어린 시절 청와대 생활을 회고했다.


박 이사장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 묻은 옷을 빨면서 두 분의 기막힌 인연을 생각했다”고 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박 이사장은
“‘어떻게 두 분이 똑같이 총탄에 돌아가시고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리셨을까,
어머니 아버지가 특별한 인연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너무 충격을 받아
갑상선 항진증에 걸려 눈이 좀 튀어나왔다”며
“지금도 눈에 콤플렉스가 있어 늘 선글라스를 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박 이사장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으면서도 늘 검소함을 강조했던 일화도 밝혔다.
박 이사장은 “청와대에서 항상 보리밥을 먹어서 지금도 잡곡밥을 먹는다.
어릴 때 흰 쌀밥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박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고 싶었다고 했다.
‘왜 유학의 꿈을 접었냐’고 묻자,
박 이사장은
“아버지가 ‘공무원 월급으로는 유학을 못 보낸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언니는 공부를 잘해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1등으로 졸업하고 장학금 받아 갔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지방에 내려갈 때 추풍령이 가까워지면 아버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할 때 여기가 제일 난공사 지역이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그분들 생각하며 묵념이라도 하고 가자’고 하셨다”고 말했다고 월간조선은 전했다.
박 이사장은 또 “차를 타고 가면서 아버지는 다리 이름, 터널 이름을 일일이 물어보셨고,
우리가 그걸 다 외웠다.
아버지는 ‘다리 하나, 공장 하나를 건설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셨다’고 했다”고 월간조선은 덧붙였다.

‘재혼할 생각이 없다’는 박 이사장은
“동생 지만이가 아들을 낳아 집안의 숙원사업을 해결했다”면서
“아이들이 예뻐 딸 하나만 있었으면 생각했는데,
조카를 보면서 위안 삼아야겠다”고 했다고 월간조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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