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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10년…“과거 회귀증후군을 조심하라”

경제通 |2007.03.05 10:58
조회 40 |추천 2
외환위기 10년…“과거 회귀증후군을 조심하라”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외환위기를 겪은 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정확히는 1997년 11월에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하였으므로 약 8개월 후면 공식적인 외환위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된다.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변화하였는가?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유혹은 없는가? 우리 경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는가?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외환위기의 근본원인은 충분히 이해되고 있는가?

외환위기는 과거 10년을 뒤돌아 볼 때 우리 사회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경제가 맞이한 최초의 시스템 위기였으며, 국가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였고 그 후유증은 여전히 우리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1997~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원화 가치는 이전에 비하여 1/2 이하로 하락하였고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마이너스 7%, 설비투자는 마이너스 42% 감소하였다. 고용은 1996년에 비해 11%이상이 감소하여 전체 실업률은 8%를 넘어섰으며,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7.5% 상승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은 외환위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부모의 실직과 파산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젊은이들이 이제 막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파산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경제활동에서 배제된 노년층들은 미래 생계에 대한 충분한 대책이 없는 가운데 삶의 뒤안길로 주저앉은 상황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대부분이 외환위기를 아픈 경험으로 기억할 것이며, 이 기억은 아마도 정부의 존재이유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 후유증 야기했던 외환위기
외환위기는 심각한 후유증도 야기했다. 그 후유증으로는 흔히 고용 없는 성장, 경제양극화 심화, 지나친 위험회피, 기업의 투자 감소 등이 지적된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내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으로 수출을 담당하던 대기업의 부는 크게 증가한 반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중소기업은 급격히 쇠퇴하여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은 하되 고용은 없는 기이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또한 당시 실물부문의 투자수익률이 현저히 하락하고 실업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시장이자율의 급격한 상승은 저축할 수 있는 소득계층의 부를 크게 증가시킨 반면 저축할 수 없고 오히려 차입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계층의 부는 급속히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전례가 없는 경제주체들의 파산경험은 극단적인 위험회피행위를 초래함으로써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고, 금융시장에서는 위험관리능력을 쌓지 못하여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간의 적정한 분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타인의 선택을 뒤좇는 소위 쏠림행위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외환위기의 원인으로는 기업의 무리한 중복투자와 과도한 부채비율, 금융기관 및 감독기관의 리스크관리 부재,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된 자본시장개방정책의 실패 등이 지적되어 왔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로 우리나라에는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이 두 병 있었는데, 하나는 1988년 올림픽이고 다른 하나는 1996년 OECD가입이라고 한다. 올림픽을 계기로 소위 3D업종 기회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OECD가입을 계기로 자본시장은 급격히 개방되었으며 그 해 순 대외채무는 수출규모의 약 1/3에 해당하는 마이너스 460억 달러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왜 이러한 현상들이 빚어졌는가? 그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왜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되는 일들이 나타나는가?

외환위기 근본원인은 시장경제시스템 그 자체
외환위기가 권위주의 정부 시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권위주의 정부가 과도하게 담당했던 역할이 당시 미숙아 수준에 불과한 시장(market)으로 갑자기 이전되고 그 역할이 현저히 바뀌게 된 정부를 포함한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시행착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기업, 가계, 정부 등 경제주체들이 시장경제시스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진 의사결정의 분권화는 큰 시행착오를 행하게 되고 결국 외환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외환위기를 야기한 근본원인은 권위주의에서 독립한 ‘섣부른’ 시장경제 시스템 그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2월 당시 세계은행 수석부총재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Joseph Stiglitz) 교수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정부의 어설픈 금융자율화 및 민간 부문의 잘못된 결정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한 바는 주의 깊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시스템에서는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정부역할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역할과는 크게 달라지고 또한 최소화된다. 과거 경제개발시대에는 정부의 역할이 극대화됐었다.

정부는 개발계획의 수립자이면서 동시에 개발계획의 추진자로서 그리고 경제주체들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이 크게 분권화되는 시장경제시스템에서는 정부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어 과거처럼 경제주체들의 행위를 직접 통제하는 ‘권위’ 대신에 ‘신뢰’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경제원칙의 수립, 금융시스템의 위기관리, 그리고 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을 검토하고 이를 제시 혹은 제안하는 역할로 변화한다.

그러나 이런 역할이 짧은 시간 안에 제대로 이뤄지는 것은 쉽지 않고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데, 이 시행착오 과정 중에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선진국 도약에는 ‘위기’ 뒤따르기 마련
미국, 유럽 등 해외선진국을 볼 때 위기 없이 선진국으로 도약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문제의 핵심은 위기가 발생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위기로부터 얼마나 큰 교훈을 얻고 바람직한 경제규범을 세웠는가에 있다.

정부는 바람직한 경제규범을 세우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또한 민간경제주체로 하여금 경제규범을 이해하도록 돕고, 원칙과 일관성을 부여해야 한다. 해외경험에 비추어 볼 때, 경제위기는 그 자체가 실패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었으며, 성공여부는 위기로부터 충분히 배웠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기를 통해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 문제점을 바람직하게 해결함으로써 선진적인 발전을 실현했던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이 정부에게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는 외환위기를 야기하지 않을 경제운영능력이다. 1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경제주체들이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동일하다. 다만 정부의 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이 분권화된 상황이라 정부가 과거와 같이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추진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축소되었다.

때문에 정부는 보다 더 섬세하고 원칙에 충실하고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 ‘신뢰’를 얻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경제주체들이 정부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상황이 곧잘 발생하는 시장경제에서, 정부는 때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곤혹스러움이 크면 클수록 원칙에 더 충실하고 섬세하게 접근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방안일 것이다.

경제주체들 간 신뢰와 합리성 기초로 내실 있는 성장 이룰 때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진정한 원년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시장경제제도의 연령이 이제 겨우 10세임을 의미한다.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연령에 일도 서툴고 이해가 부족할 것임은 당연한 것이다. 정부를 포함한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들의 경제행동 수준이 이제 10세에 불과하다는 평가에는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외환위기와 그 후유증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권위주의 정부의 장점이었던 직접적인 통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100년에 걸쳐 이룩한 경제성장을 30년 만에 달성하는 외연적인 압축성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다. 경제성장이론의 대가인 MIT 대학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 교수는 1998년 3월 우리나라의 외환위기와 관련해 “과거 회귀증후군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남긴 바 있다.

선진국으로의 발전은 경제주체들의 합리성과 신뢰에 기초한 내실 있는 성장을 의미한다. 기업의 투자를 정부가 보증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을 해결해주는 과거방식의 경제성장은 더 이상 존재의미가 없다.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압축성장을 추진하면서 나타났던 지나친 정부주도 개발계획 그리고 공급 및 공급자 중심주의적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제는 더 이상 정신적 성장이 결여된 육체적 성장은 큰 의미가 없다.

이제 곧 있을 10세 생일잔치 때 그나마 10세가 되었음을 무엇으로써 드러내 보일 것인가?
외환위기라는 소중한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과 원칙은 신뢰와 합리성의 형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가계,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들은 외환위기 이후 합리성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고 해야 하는지 진지한 분석과 고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 김자봉 박사
서울대 철학·경제학 학사, 동 대학원 경제학 석사,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현재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정책제도팀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지급결제 안전성에 관한 실증연구’ ‘사모투자펀드 활성화’ ‘전자금융의 발전과 주요 이슈’ ‘FTA와 금융산업의 경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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