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사람 무서워서 결혼 못하겠어.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가족도 날 이렇게 힘들게 할 때가 있는데 전혀 모르는 남을 어떻게 믿고 결혼을 할 수 있는 거지? 아니... 날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걸까?”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 글을 가끔 읽다보면 저도 ‘이거 원~ 무서워서 결혼하겠나~ ㅡㅡ;;;’라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물론 제 주변에 행복한 결혼생활 잘 꾸려 가는 사람들 많고,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상한 과일 하나 때문에 상자를 통째로 버릴 수 없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남의 문제일 때야 이렇게 말해도... 내 문제가 된다면...ㅡㅡ;;; 영~ 자신이 없군요.
미흔은 멍하니 창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봅니다. 불과 몇달 전만해도 이런 모습의 자신을 추호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그녀.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운 날로만 기억될 줄 알았던 크리스마스. 이제 그날은 그녀의 달력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날이 되어 버렸군요. 작년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집으로 불쑥 찾아온 낯선 여자. 남편에게 오빠라고 하며 매달리며 자신을 비웃던 그 여자는 급기야 미흔의 머리를 내리쳤고 그 핏빛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그녀의 모든 걸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습니다. 행복했던 가정도, 건강도, 무엇인가를 할 의욕도...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마저 없어진 채 그녀는 말라죽어가는 고목나무처럼 맥없이 서 있을 뿐이죠. 속죄하듯이 이 조용한 마을로 이사를 한 남편은 숨죽이고 그녀를 살펴보고 그런 그의 모습에 그녀는 더욱 숨이 막힙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만나게 되었죠.
미흔이 인규를 처음 만난 곳은 한적한 교차로였습니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교차로가 아니라 미흔과 인규 모두에게 있어서 인생의 교차로였던 거죠. 그들의 사랑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불륜.... 어쩌면 사랑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자만이 나눌 수 있는 공감대는 그런 모든 감정을 다 뛰어넘는 경우가 가끔씩 있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한눈에 알아보았으나 애써 모른 척 외면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씁쓸하더군요. 그러나 그런 모습은 미흔과 인규 말고도 미흔과 미흔의 남편, 인규와 인규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모른 척한다고 덮어질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의 상처는 타인의 잘못보다는 자신의 그런 이기심에 의해 더 크게 덧나게 됐으니까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일이겠죠.
누군가 나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대한다면 정말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바로 변영주 감독처럼요. 변영주라는 이름보다 [낮은 목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감독이라는 타이틀로 더 강하게 기억된 그녀에게 기대감이라는 이름의 선입견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걸 알면면서도 뒤로 갈수록 점점 힘을 잃어가는 영화를 보고 있자니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군요. 작품 분위기 자체가 워낙 찬기운이 스미는 작품이긴 했지만 좀 더 섬세하게 미흔의 심리를 잡아냈다면 좋았을 텐데 감독이 미흔이라는 인물에 대해 표현력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더군요. 영화 대부분을 주변인물을 배제한 체 미흔과 인규만으로 이야기를 지탱해나가야 하는데 노력을 많이 했지만 웬지 주부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김윤진과 가끔씩 사소한 부분에서 버터스러움을 보여주던 이종원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탓도 있겠죠.
[밀애]는 훨씬 다가올 여지가 많은 영화였는데 그 점이 정말 아쉽더군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확 빠져들어 몰입하는 게 아니라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쩌면 그들이 아니라 제 탓일지도 모르죠.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단추를 잘못 끼운 인연이란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는구나... 사람에게 상처 입은 마음은 금이 간 유리병처럼 참 구차해집니다. 미흔의 남편이 그 여자랑 바람만 안 피웠어도, 인규가 사랑했던 그녀가 그에게 그런 상처만 안 입혔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얼마든지 행복하고 따뜻하게 아름다운 삶을 만들 수 있었던 그들이 결국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드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악연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