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뉴스 앵커│김주하, 라는 이름의 시작점

이승민 |2007.03.15 18:20
조회 267 |추천 1


 

 

2000년에서 2007년. 입사 4년차에 MBC 아침 정보 프로그램 앵커를 거쳐 진행 5개월만에 MBC 진행. 그리고 6년여의 진행과 육아 휴직, 2007년 주말 단독 진행.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미혼에서 진행 때문에 아이를 친정에 맡기는 것이 마음 아픈 엄마로, 그리고 영화나 퀴즈 프로그램 진행을 하고 싶어하는 떠오르는 스타 아나운서 김주하에서 여성 앵커의 뉴스 제작 참여를 주장하는 국제부 기자 김주하로.

그렇게 김주하는 변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동시대의 한국 여성 앵커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바로미터다. 김주하 이전에 신은경이 이미 주말 KBS 를 단독 진행했고, 김주하뿐만 아니라 KBS 지승현 아나운서가 두 아이를 기르는 기혼 여성으로 주말 를 진행한다. 그럼에도 유독 김주하만이 주목받는 것은 진행을 맡은 이후 김주하가 동시대 한국 여성 앵커가 과연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뉴스의 꽃’은 피고 지고

김주하가 처음 를 진행할 당시만 해도 여성 앵커는 ‘뉴스의 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일쑤였다. 지금도 남성 앵커는 대부분 보도국의 40~50대의 부장급 이상의 간부들이 맡는 반면, 여성 앵커는 미모의 20대 중후반의 미혼 여성들이 맡아왔다. 심지어 백지연 전 MBC 아나운서는 1987년 입사한지 한달 만에 앵커가 됐다. 그러나 백지연 아나운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뉴스 시작 35분이 지난 뒤부터 생활 뉴스를 전달하는 것 뿐이었다. 여성 앵커들이 그나마 20여분 빠른 9시 15분쯤부터 뉴스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은 백지연 전 아나운서가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한국의 여성 앵커가 이미지로만 평가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규원 KBS 아나운서는 논문 에서 여성 앵커에 대해 “여성 앵커들은 젊은 나이에 앵커로 발탁된 데다 취재 경험이 거의 없어 뉴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내용 전달에 한계를 느낀다.”고 주장했다. 백지연과 신은경은 결혼과 함께 메인뉴스에서 물러나야 했고, 황현정 전 아나운서는 를 진행하다가 물러난 뒤 1년간 교양과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다시 로 복귀하기도 했다. 방송사가 여성 앵커를 ‘언론인’보다는 ‘예쁜 진행자’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여성 앵커에게 뉴스 분석력이나 진행능력에 대한 신뢰감을 갖기는 어렵다. 남는 것은 결국 여성 앵커가 얼마나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여성’ 앵커 너머의 김주하

김주하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불과 입사 4년차에 진행을 맡은 여성 앵커가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엄기영 앵커에 앞서 뉴스를 주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김주하가 보여준 여성 앵커의 이미지는 여성 앵커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화평론가 조흡이 “여성 앵커는 남성 앵커 옆에서 조강지처의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기존 여성 앵커들은 ‘여성다움’, ‘우아함’이 이미지의 근본이었다. 반면 김주하는 당시 테일러드 칼라의 재킷과 내추럴 메이크업, 숏컷에 가까운 보브컷등의 헤어 스타일 등을 통해 중성적인 느낌이 강한 스타일을 연출했고, 이는 여성적인 매력대신 ‘일’에 초점을 맞춘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또 음성 전문클리닉 애송 이비인후과 김형태 원장은 “김주하의 목소리는 200~250Hz 정도인 보통 여성들의 목소리와 달리 190Hz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어서 중성적이며 지적인 느낌을 준다”고 분석했다. 김주하는 여성성을 내세우는 다른 여성 앵커들과 달리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신감, 그리고 지적인 이미지등을 강조할 수 있었다. 실제로 김주하는 남성못지 않게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모으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주하는 다른 여성 앵커와 달리 앵커로서의 신뢰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진 것이다.

모델 혹은 여신, 기자가 되다

이미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주하는 기존의 여성 아나운서와는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되면서 다른 여성 앵커들보다 더욱 주목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고, 그것은 바로 2000년대 여성 아나운서의 가장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 교본이 됐다. 김주하는 를 통해 다소 딱딱하고 지적인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신, 가끔씩 파격적인 행보를 통해 여성으로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켰다. 지난해 방송 3사의 아나운서들이 남성 잡지의 화보를 찍으면서 논란을 일으켰지만, 김주하는 이미 2003년 여성 잡지 에서 붉은색 부츠와 짙은 스모키 화장, 그리고 선글래스를 끼면서 기존 이미지를 뒤집는 파격 패션으로 화보를 찍었다. 이 화보를 통해 김주하는 자신이 또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줬고, 동시에 한겨레에서 만들었던 여성잡지 창간호의 모델이 되면서 여성 앵커, 혹은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라는 대표성을 확보했다. 또한 아테네 올림픽 방송 당시에는 그리스 여신같은 분위기를 낸 옷을 입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예쁜 여성인지 보여줄 수 있는 여성 앵커. 김주하는 여성성과 일의 전문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요즘 여성들의 이상적인 캐릭터를 반영했다. 김주하 앵커는 ‘예쁜 앵커’이되 그것을 커리어우먼의 정장안에 숨겼고, 시청자는 그럴수록 ‘여자’ 김주하가 드러나는 순간마다 환호했다.

그러나, 김주하가 지금 한국 방송계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대중에게 호감을 얻는 그 이미지 때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이다. 김주하는 아나운서로서의 인기가 정점에 선 순간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직종을 바꿨다. 그 전에도 김은혜 MBC 앵커가 기자 출신으로 앵커가 된 바 있었다. 그러나, 김주하는 아나운서 출신의 인기 여성 앵커의 위치에 올랐을 때 기자가 됐다. 김주하가 보도국에 들어가 선배들에게 ‘깨지’면서 기사 쓰는 법을 배우고, 사회부 기자가 돼 경찰서를 출입한다는 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중의 흥미를 끌었고, 그것은 여성 앵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상징성을 가졌다. 대중은 김주하를 통해 앵커를 기자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고, 김주하가 뉴스에서 직접 리포팅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인기 여성 앵커가 ‘뉴스의 꽃’이 아니라 뉴스의 실질적인 내용을 건드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렇듯 김주하는 스타 앵커이면서도 ‘언론인’으로서의 신뢰성과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인기 여성 아나운서가 기자로 변신해 남자 선배 언론인들과 함께 기사를 구성하고, 자신의 뉴스에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밥을 먹으면 수명이 짧다”

이는 여성 앵커와 여성 아나운서의 가장 큰 딜레마를 깰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김주하를 비롯해 황현정, 백지연, 신은경 등 인기 여성 앵커는 모두 그 시대 ‘가장 닮고 싶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방송사에 입사했고, 메인 뉴스 진행을 위해 6시경부터는 누구와도 대화조차 하지 않고 뉴스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재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 앵커의 전성기는 메인 뉴스 시간을 맡는 20대 중후반에 끝난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오프라 윈프리처럼 한국 여성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해외 여성들이 중년의 나이에 능력과 권력을 모두 가지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남성 앵커들과 달리 그들은 방송사의 말단 직원이고, 뉴스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메인뉴스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들이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설 기회는 없다.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할만한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온갖 노력을 다 해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서지만, 나이와 외모의 변화에 따라 금새 내려와야 하는 현실. 그것은 여성 앵커의 딜레마이자 한국 여성들의 현재를 상징한다. 여성 아나운서가 오락 프로그램 MC로 더 유명해지고, 프리랜서 선언 여부를 놓고 갈등하는 것은 이런 여성 앵커의 한계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여성 앵커를 하는 것보다 오락 프로그램 MC가 더 수명이 긴 것이다.

그러나, 김주하는 뉴스를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여성 앵커’에서 ‘언론인’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었다. 그것은 결혼과 출산에도 불구하고 주말 의 단독 앵커로 돌아올 수 있는 김주하의 자산이 됐다. 김주하가 한 말 그대로, 그는 이제 여성 앵커라기보다는 언론인으로서의 앵커로 다가설 수 있게 됐다. 김주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여성앵커의 짧은 수명에 대해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밥을 먹으면 수명이 짧다. 직접 뉴스 기획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고, 자신이 원하는 ‘심층 뉴스’를 위해 MBC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김주하는 뉴스 진행이 아닌 ‘뉴스’ 그 자체를 주도하려는 첫 번째 여성 앵커다.

김주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할까

물론, 김주하의 모든 변화와 그가 앞으로 변화할 모습 역시 단지 이미지 메이킹의 한 부분일 뿐일지도 모른다. 김주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역시 지난해에야 케이티 쿠릭이 CBS 저녁뉴스를 진행하며 처음으로 메인뉴스 진행자가 됐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빠른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케이티 쿠릭은 주말이 아닌 주중의 단독 앵커이며, 가장 관심사가 되는 뉴스들을 초반부터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그의 뉴스 진행방식은 로부터 “언론 측면에서 매우 질 높은 뉴스 방송”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케이티 쿠릭은 앵커가 곧 자신의 뉴스를 뜻대로 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그 자리까지 올라왔다. 반면 김주하는 이제야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뉴스를 진행하려는 시도를 진행중이고, 그만큼 뉴스 진행자가 아닌 언론인으로서의 김주하의 역량은 분명하게 검증된 바 없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 김주하만큼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여성 앵커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1927년 경성 방송국의 마현경이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로 등장한지 80년. 여성 앵커는 김주하를 통해 드디어 ‘미모’대신 ‘무엇을’ 전달하느냐로 대중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과연 한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가장 닮고 싶은’ 여성앵커 대신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앵커가 등장할 수 있을까.

(글) 강명석 ( 기획위원)

저작권자 ⓒ 매거진t.

 

바로가기 - -  www.pstank.com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