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전라도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방학이나 어린이날이면 종종 마을 문화회관에서 '우뢰매' 시리즈를 상영했는데, 이런 날을 놓치면 죽는 줄만 알았다. 나는 주인공이 괴수를 무찌르면 좋아라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는,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치면 화질도 좋지 않은 스크린을 뚫어지도록 쳐다보며 숨을 죽이는 그런 시골 극장 분위기에 익숙한 지극히 촌스러운 사람이다. 그러므로 상영관 내에서 어느 정도의 무질서한 행동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웃어넘기는 편이다.
그럼 시작하자. 이 영화에 대해 나와 있는 리뷰는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하다. ‘2시간짜리 피트니스 클럽 CF’라느니, ‘액션은 그럭저럭 인데 스토리가 별로’라느니, 상영관에 들어서기 직전까지 그런 평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던 터라 스스로도, 이 영화에서 건질 수 있는 건 ‘점점 위용을 더해가는 내 뱃살에 대한 반성’과 ‘영화의 스케일, 액션의 아름다움’ 정도이리라 한정지었다.
불이 꺼지고, 몇 장면도 지나지 않아서 짜증이 확 났다. ‘뽀뽀뽀’에서나 본 듯한, 눈 부분에 노란 전구를 설치한 인형 옷을 뒤집어 쓴 것 같은 CG 늑대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늑대가 등장한 순간 뒷자리에서 들려온 키득거림이 거슬려서였다.
내 지금껏 영화관 안에서 예의와 공중도덕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을 수도 없이 보아 넘겼으나 이 번 만큼은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천박하게 느껴졌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와 상상력, 그리고 고대문화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는 관객들이 무지막지하게 미웠다. 심지어, 영화 중반쯤에는 '저 치들은 좀 상영관에서 나가주었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리스든, 중국이든 그 방대한 양의 신화를 정리하는데 성공한 위대한 대가들은 책의 말미나 서문에서 항상 고대인들의 자연과 토테미즘에 대한 인식 단계를 밝히고 있다. 그동안 나는 이러한 언급들에 대해서, 몽매한 독자들이 '에이, 이런 게 어디 있어. 뻥이다.'라며 책장을 덮을까 걱정해서가 아니라, 신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고 믿어 왔었다. 천둥, 번개, 맹수와 초인적 영웅들에 대한 고대인들의 두려움이나 경외가 동료나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졌을까 한 번 상상해보자. 처음에 전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와 그의 묘사를 통해 듣는 이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일치할까? 아마 다분히 과장되고 변형되리라. 그게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매력이다.
아니다. 낄낄거리던 그 몇 명의 관객들을 위해 더 유치한 예를 들어주는 편이 낫겠다. 낚시에서 잡은 손바닥만 한 붕어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40센티미터의 가물치로 둔갑한다. 우리는 이를 ‘기만, 위선’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호랑이와 도깨비가 등장하는 우리 전래 동화의 삽화를 보며 밤에 무서운 꿈을 꾸었던 경험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영화의 과장된 묘사에 호의와 희열을 느껴야 정상이다. 그런데 ‘어머, 유치해.’라는 비웃음이라니, 말할 수준조차 못 된다.
영화가 방대한 스케일과 스타일리시한 액션, 비장미 감도는 비주얼의 표현에 막대한 역량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전으로 전해진 고대사의 한 토막에 대한 매력적인 묘사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오히려 높이 평가하고 매료되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가 피어싱으로 가득한 거대한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에, 뒷자리의 비웃음소리 톤도 최고조에 이르며, 그들에 대한 나의 경멸과 짜증도 극에 달한다. 그 짜증을 장문의 리뷰 작성의 동력으로 삼았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까. ㅋ
미국이나 프랑스의 표현력이 풍부한 미대생을 한 스무 명 정도 모아 놓고, 임진왜란 중의 잔인한 학살 장면을 묘사한 소설이나 이야기를 들려준 뒤, 그 장면을 캔버스에 옮기도록 해 보자. 그리고 그 결과물을 우리나라나 일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그 그림들을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혹은 유치한 발상의 소치로 평가함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표현의 영역에, 고증과 사실성을 강요한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할 마음조차 없다. 하물며 근대사도, 현대사도 아닌 고대의 전투임에야 일고(一考)의 가치조차 없지 않은가.
고대 그리스인에게 있어 페르시아 군대의 이미지는 '반지의 제왕'에서의 오크보다도 더 끔찍했으리라. 동네 형, 아버지, 삼촌의 목숨을 빼앗고, 팔이나 다리를 앗아간 페르시아의 악랄한 군대가 신사적이고 용맹하여 합당한 예우를 갖추어야 할 대상으로 비춰지리라는 생각 자체가 우스운 논리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반공 교육으로 인해 우리 초등학교 아이들은 북괴군을 뿔이 세 개 쯤 달린 귀신이나 도깨비처럼 상상했다. 다분히 정치적으로 의도된 것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전쟁의 상처와 기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을 시기다. 역사 안에 침략으로 인한 전쟁과 살육의 기억을 포함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모두 적에 대한 이미지 설정에 두려움이나 증오가 배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페르시아 제국과 아시아인에 대한 이미지가 거북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최근의 국제정세와 무리해서 연결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예술적 표현의지의 소산을 굳이 정치라는 진흙구덩이로 끌어내리려는 이들에 대해서는 같은 논리로 응수해 줄 필요도 있으리라 여겨 사족으로 한 단락만 더 쓰자면, 일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평한 바 있는데 그 영화가 취한 ‘반미’ 코드에 비한다면 차라리 영화 ‘300’은 훨씬 솔직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거대 망둥이가 사람을 우적우적 씹어대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게이 간지의 피어싱 황제나 흉측한 괴인 군대가 훨씬 솔직하고 상식 수준이다. 한 민족끼리의 전쟁에서도 이를 갈 정도의 적개심을 품는 판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곳에서 침략해 온 페르시아 군대에게 ‘야만인’ 정도면 너그럽지 않은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도 그 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노란 피부의 야만인이었으리라. 마을을 불태우고 학살하는 침략군이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사진과 라디오, TV가 발명된 이후에 일어난 전쟁이니 구전과 노래로 전해질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지극히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스파르타인의 모습과 언동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심기가 불편해진 듯도 하다. 하지만, 고대 스파르타의 법과, 문화와 생활상이 그러했던 것을 어쩌겠는가. 300명 가운데 여성 동지들을 한 100명 갑자기 끼워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려서부터 짐승처럼 군사훈련만 받아온 남자들에게 갑자기 매너와 교양을 기대할 수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다른 의도 따윈 없다. 그냥 고대 스파르타가 그랬고, 그랬던 것을 그렇다고 표현한 것뿐이다. 전형적인 미국 영화니, 국가에 대한 충성과 남자다움에 대한 광신이니, 전부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호사가로 치부해도 무방할 듯. 계속 반복하지만, 표현의 영역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군사 독재 시절에, 마음에 안 드는 소설가나 시인을 잡아다가, ‘당신 시와 소설은 북괴 정권을 찬양하는 내용임에 틀림 없어!’ 하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한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라인에 대한 불만들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러닝타임의 제한을 고려해달라며 관객에게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전투씬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보니 구성의 치밀함을 고려하기에는 좀 모자랐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물론, 전투 이외의 플롯이 주가 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남편을 살리기 위해 정조를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아냥거림 덕분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왕비가 칼로 푸욱 찌르자 배신자의 품에서 적국의 금화가 쏟아져 나와 조국을 배신한 사실을 죽음과 동시에 만천하에 들키고 만다는 희극적 헤프닝은 조금 용서가 안 된다. 영화의 값을 확 떨어뜨리는 주책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을 가득 채운 화살비를 맞으면서도 서로 농담을 나누며 낄낄거리는 300명의 CG 수준의 복근의 소유자들을 바라보며 비현실적인 설정이 가져다주는 유치함을 비웃을 일은 아니다. 우리는 영화가 시작한 순간부터, 300명의 용사들 중 단 한 사람의 생존자가 남은 이들에게 입술로 전하는 영웅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나! 비웃음 대신에 우리는 두려움과 불합리에 저항하는 또 하나의 (물론 매우 터프하고 억지스러운) 방식을 채택한 사내들이 있었음에 전율해야 한다. 그들이 나가서 싸우다, 죽은 것을 국가에 대한 충성이니, 자유에 대한 갈망이니 하는 말들로 가리는 것조차 이 영화의 미덕을 언어의 장막으로 가리는 셈이다. 고대의 어떤 사내들에게 순수한 야성과 용기와 불굴의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배웠다면, 자칫 액션과 스케일의 향연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영화라지만, 충분히 훌륭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아, 아직도 이 리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떤 이유로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한 가지 미리 밝혀두지 않은 배경지식을 던져보자. 이 영화는 ‘씬 시티’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그러니까 원래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졌다는 것. 자, 아직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이 영화를 비웃을 자신이 있는가?
"Spartan! What is your Profession!?"
"Augh! Augh! Augh!"
"Give them nothing, Take from them,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