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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의 봉다리, 삼팔선을 넘어 봉쥬르!

최용일 |2007.03.19 16:59
조회 36 |추천 0
 

“봉쥬르!”

 

18일 열린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역전의 봉다리 이봉주가 불혹을 바라보는 37세의 나이에 '제3의 전성기' 열었다. 1970년생 이봉주는 우리 나이로는 서른여덟이다. 그의 첫 전성기는 90년대 후반기였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이봉주는 2시간12분39초로 은메달을 목에 건다. 금메달 못지않게 화려한 은빛으로 빛났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동갑내기 황영조의 그늘에 가린 것도 사실이다.

 

 

1996년 황영조 은퇴이후 외롭게 혼자 이끌어온 봉다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황영조와 비교된다. 동갑내기인 두 선수는 1990년대 한국 마라톤을 주도했던 승부사 고(故) 정봉수 감독 사단에서 세계적인 철각으로 거듭난 점도 그렇고, 하나는 현역 선수로서 하나는 지도자로서 현재까지 한국 마라톤계를 이끌어 오고 있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두 사람의 마라토너로서의 길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면이 있다. 세계적인 선수에서 어정쩡한 지도자로서의 삶으로 바뀐 천재선수 황영조에 비해 이봉주 선수는 대기만성형으로 갈수록 그 진가를 발휘해 나가서 국민의 존경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황영조는 일찌감치 1992년 바르셀로나의 영웅이 된 뒤  세계적인 스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 1994 보스턴 마라톤 한국최고기록 수립 등 대기록을 남겼지만 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홀연 은퇴해버린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젊은 나이에 대사를 앞두고 지도자의 길 운운하는 어줍잖은 이유로 은퇴를 하여 한국 마라톤계를 무주공산으로 만들어버린 그의 퇴장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못해 무책임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무주공산을 홀로 채워가고 있는 이봉주는 아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땀으로써 황영조 이후 추락할 뻔한 한국 마라톤계를 떠받쳤고 정봉수 사단의 신화를 이어갔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1999년에 발생한 이른바 '코오롱 사태'로 팀을 떠나고 한동안 방황해야 했다. 선수 생활의 최대 위기였다. 삼성전자 육상단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봉주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불운 속에 24위에 그쳤다. 그러나 잡초같은 삶을 살아온 이봉주는 넘어질지언정 쓰러지지는 않았다. 2001년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7분20초로 한국기록을 세우며 부활을 알렸고, 같은 해 세계 최고 권위의 마라톤대회인 제105회 보스턴마라톤에서 극적인 우승을 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2001년 4월17일, 서윤복, 함기용 옹의 발자취를 더듬어 반세기 만에 우승한 그는 귀국 직후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올림픽 우승자 못지않은 영웅으로 떠올랐다.


두 번째 전성기를 보낸 이봉주는 또 시련에 휩싸였다. 2001년 에드먼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생애 처음으로 레이스 도중 '타월'을 던졌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봉봉남매' 함봉실과 남북 동반 우승을 해냈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14위로 또 좌절했다. 슬럼프라고 딱 집어 말하기 어려웠지만 냉탕과 열탕을 오가자 주변에선 슬슬 은퇴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구력과 더불어 스피드를 중시하는 추세로 바뀐 세계 마라톤의 흐름을 더 이상 쫓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육상계에서는 하루 빨리 '포스트 이봉주 세대'를 이끌 차세대 주자를 발굴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포스트 이봉주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후배들이 뒤를 받쳐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냥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이번 서울국제 마라톤에서 드디어 일을 내면서 제3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이다. 2006년 로테르담대회에서 2시간 6분 44초의 기록을 냈던 세계랭킹 1위 선수인 키루이에 역전승을 한 값진 성과였으며, 2시간 8분대의 세계적인 기록이었다.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치며 쓰라림을 맛봐야 했던 한국 마라톤의 침체는 봉다리로부터 연유한 것이기도 했다. 이봉주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뛴 레이스는 2004년 8월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풀코스 마라톤 4회, 하프 마라톤 4회, 10000m, 5000m 장거리 트랙 레이스 4회 등 모두 열 두 차례 크고 작은 대회에 출전했지만 국가대표 자격을 갖고 뛴 적은 없다. 18일 서울국제마라톤도 마찬가지다. 그러는 사이 한국마라톤은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5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지난 해 도하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권은 커녕 완주에 급급했다. 봉다리 처럼 한국 마라톤계도 역시 다리가 풀려 있었다.


하지만 봉다리는 다시 일어섰고, 다시 태극마크를 달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 서울국제마라톤은 8월 일본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대회였다. 그러나 이봉주의 눈은 현해탄이 아니라 만리장성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37세의 이봉주는 이날까지 생애 37번째 풀코스 도전에 35번째 완주를 했다. 40대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37세의 나이까지 서른 번 이상 풀코스를 완주하며 끊임없이 정상급 기록을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2시간8분대 기록은 아예 세계 마라톤계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이미 38선을 넘어선 그의 눈은 벌써 만리장성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기록만 놓고 보면 당연히 베이징 올림픽 대표선수는 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올해 8월의 세계선수권대회니 내년의 하계 올림픽이나 무더운 8월에 열리는데다 전통적으로 기록이 아니라 순위 경쟁을 펼치는 대회인지라 이봉주 입장에서는 쉽게 출사표를 던질 만한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18일 세계적인 마라톤 강국의 세계적 선수에게 역전승을 이뤄낸 그에게 생물학적인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아프리카 선수들에 비해 환경적으로 뒤지기 때문에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 아프리카 선수를 상대한다고 위축될 것도 없다. 나도 나이 때문에 약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 할 것만 제대로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당당히 우승소감을 밝힌 그의 인터뷰를 우리는 믿는다.


세상이 온통 이태백이요 삼팔선이 유행어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마라토너로서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38선을 돌파한 그에게 사오정인들 오륙돈들 무슨 상관이랴. 마라톤을 거의 '道'로 승화시킨 그는 도전할 것이고 우리는 그런 도전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올림픽은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말도 말이거니와 어차피 그가 아니면 누구도 우승할 수 없는 것이 한국 마라톤의 현실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저 미안할 따름이라며 출전해주는 선처를 빌면 되는 것이다. 좌절과 낙오로 점철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봉다리의 끝없는 도전정신을 우리 젊은이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봉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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