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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풀스토리/이현도 - TV 타임즈

황종식 |2007.03.21 08:52
조회 45 |추천 0
이현도가 김성재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탄 것은 지난해 7월21일. 듀스의 마지막 콘서트를 끝낸 두 사람은 이제 한 사람의 보통 청년으로 돌아가려 한다. 미국에 도착한 그들은 소원대로 아늑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LA 근교의 맨션 아파트를 얻어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마음껏 쉴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전쟁과 같은 것이었다. 연일 강행되는 스케줄과의 싸움은 두 사람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치게 했던 것이 사실.

 

미국으로 간 표면적인 이유는 ‘단지 쉬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현도는 공부를 하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듀스의 프로듀서로, 작곡가로 활동했지만 본격적인 흑인 음악을 본고장에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특히 흑인 댄스뮤직과 재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더욱 깊이 공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2개월 정도 평화로운 시간이 흘렀다. 김성재의 솔로 독립 프로젝트가 세워졌다. 이현도는 오랜 친구이자 듀스의 멤버였던 김성재를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휴식을 즐기며 재충전한 보람이 있었는지 작업은 예상 외로 호조를 보였다. 원래 듀스의 다음 앨범을 위해 작곡해 둔 곡에다 4곡을 더 보태 김성재의 앨범을 만들었다.

 

김성재는 김성재대로 춤 연습, 노래 연습. 이현도는 이현도대로 하루 5시간씩 잠을 자는 고역 속에서 앨범이 완성되었다. 눈을 감으면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작업을 하는 2개월여가 지나고 김성재는 앨범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허전했죠. 따뜻한 얘기 한마디도 해주지 못하고 보냈어요. 2월쯤이면 앨범이 본궤도에 오를 것이고, 그때쯤이면 다시 한국에서처럼 다정한 친구 사이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따뜻한 악수 한 번 못하고 헤어졌는데….”

 

하지만 며칠 후 날아든 소식은 이현도를 망연자실케 했다. 갑자기 김성재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매니저가 전화를 받았다. 김성재는 첫 방송을 하고 돌아와 잠든 시간이었다. 매니저가 깨워주겠다는 소리를 듣고도 이현도는 ‘그냥 푹 쉬게 내버려두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정확히 40분 후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놀라지 마라’는 말로 시작된 전화는 김성재의 죽음을 전하고 있었다. 믿겨지지 않았다. 놀랄 수도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혼자 방안에 누워 있었다.

 

잠시 후 각 언론사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에서야 사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사실이었다. 다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후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이 싫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멍하니 하루하루를 모냈다. 멀쩡하게 지내다가도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세수를 하다가도 눈물이 쏟아졌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그 생각을 하기 일쑤였다. 모든 작업에서 손을 뗐다. 배가 고프지도 않고, 잠이 오지도 않던 시간이었다.

 

단 하나의 위안이 있었다면 팬들의 편지였다. 그나마 용기를 북돋워 주는 팬들의 편지를 읽으며 그날 몫의 슬픔을 달래나갔다. 매일매일 우편배달부가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복음처럼 느껴졌다. 강원도에서, 전라도에서, 멀리 제주도에서… 팬들의 정성과 사랑은 눈물겨웠다. 영원히 가까이 있을 것 같던 사람은 떠나가고, 떠나갈 것으로만 알았던 사람들은 남아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일어나야 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석 달이 지나 있었다.

절대로 다시 가수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했던 결심을 뒤바꿨다. 아직까지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답을 하자는 결심이었다.

 

성재의 영정을 들었던 친구의 집이 LA 근교의 해변가에 있었다. 그곳에서 보름을 머무르며 다시 일어날 준비를 했다.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작업실로 돌아와 작업을 시작했다. 먼지 낀 키보드를 닦아내고, 오래 만지지 않아 멋쩍어진 컴퓨터를 다시 열었다.

 

4월께 한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룰라였다. 룰라는 표절 파동과 이상민은 자살 소동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왜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안 좋은 일만 생기는 걸까?’. 룰라는 도와 달라고 했다. 기꺼이도와주고 싶었다.

 

미국에서 룰라와 함께 작업을 하는 동안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 노이즈의 홍종호와 천성일도 그의 집에 머물렀다.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격려에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팬들의 편지는 매일매일 비둘기처럼 반갑게 날아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앨범을 들고 룰라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룰라는 다시 일어났다. 그도 룰라와 함께 일어났다. 룰라가 떠난 3일 후부터 그는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자신의 솔로 앨범 작업이었다.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이고, 녹음을 하고, 앨범 재킷 사진을 찍고,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시간은 총알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지난 9월15일 새벽 모든 업은 끝났다.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그는 12시30분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 생활은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선 김성재와 룰라의 앨범이 성공한 것이 큰 성과죠. 제가 할 일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죠. M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가수들을 직접 만나 음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본고장에서 미국의 흑인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돌아가는 것이다. 1년 2개월 만에. 그동안 그에게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언제나 팬들은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팬들을 위해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가슴속에 켜켜이 쌓았던 피곤들이 한꺼번에 잠으로 쏟아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서울이었다. 멀리 눈 아래로 서울이 펼쳐져 있었다. 사랑하는 성재가 있는 곳, 그리고 사랑하는 팬들,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랑하는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취재 : 이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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