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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송현숙 |2007.03.22 14:03
조회 23 |추천 0


 

 

 

.... 주교가 도둑에게 베푼 자비를 묵상하는 중 또 다른 도둑이 마음에 떠올랐다. 그를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다. 한 편의 연극을 보듯 그때 묵상한 생각은 이런 것이다.

 

다른 시대, 다른 도둑, 그러나 이번에는 율법이 이긴다. 범죄가 입증된다. 평결문이 건네진다. 형이 언도된다. 집행은 금요일로 정해진다. 항소도 없고 지연도 없다. 정의는 신속, 정확하다. 십자가 사형

 

여기서 나는 마음속에 그 장면을 재현해 본다. 마치 내가 군중 속에 들어가 전개되는 모든 일을 지켜 보고 있는 듯. 시각.음향,냄새 모든 것을 흡입하려 한다. 내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묵상의 한 방편이다. 나의 모든 통찰은 대개 글을 쓰기 전이 아니라 그를 쓰는 '도중에' 얻은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희망과 기대감으로 글을 써 내려간다.

 

금요일이 된다. 세명의 죄수가 예루살렘의 좁은 골목길을 줄지어 지난다. 발부리를 자구만 잡아채던 자갈길은 성벽을 벗어나면서 먼지 푸석푸석한 언덕길로 이어진다. 이 광경은 성 안으로 들어서는 외부인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광고판이 되어 '법을 어기면너희도 이꼴이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첫 죄수를 몸싸움 하다시피 끌어다가 껄그러운 정의의 형틀에 올려놓는 데 병정 여섯이 소요된다. 발길질에 욕까지, 죄수는 형틀 위에서 몸부림을 친다. 그러나 얼굴과 갈빗대에 발길질을 한번씩 당하자 반항이 가라앉는다.

 

쇠못을 때리는 망치소리, 그 못이 그의 양손을 뚫는다. 발을 뚫는다. 병정들이 마치 돛대의 줄을 감아 올리듯 울뚝불뚝한 팔로 십자형틀에 매달린 밧줄을 끌어 올린다. 한 번 끌어올릴 때마다 대못에 뼈가 쓸리고, 톱니처럼 깔쭉깔쭉한 옛 형틀의 고통이 살을 엔다. 형틀의 기둥이 구멍에 쿵 떨어지자 다시 한번 더 심한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병정들이 다음 죄수를 바닥에 눕히는 사이 군중들은 더 잘보려고 서로 밀쳐댄다. 대못과 비명. 기둥 떨어지는 소리와 더 큰 비명

 

둘은 끝나고 이 제 하나 남았다. 이번에는 유대인. 선지자 부류의 사람이다.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재판조차 귀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성 종교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 이상이었다. 그가 고소당한 것은 자기 의에 빠진 나라의 양심에 정확히 죄의 낙인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마에 화인처럼 새기고 떠나야하는 글자가 있었다. '위선자' 어쩌면 처음으로 만인이 그들의 참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이 못말리는 말썽꾼에게 뭔가 조처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뭔가가 왔다. 쇠망치 소리에 그의 판결이 다시 울린다. 예수는 나무 위에 드러누워 대못의 심판에 팔목을 내맡긴다. 피고는 침묵한다. 항변도 없다. 위협도 없다. 욕도 없다. 십자가가 들어 올려져 제자리에 고정된다. 내내 그는 갈비뼈로 신음을 싸안는다. 양손으로 계란을 싸안는 것처럼.

 

병정들이 물러선다. 이 유대인 소유의 솔기 없는 옷 주변에 모여든 몇사람만 빼고는. 개들이 뼈 하나를 두고 서로 이를 드러내듯. 병정들은 이 옷을 누가 가질까 입씨름을 벌인다. 결국 옷을 찢어 나누기보다는 재수 좋은 사람이 갖기로 뜻을 모은다. 이기는 사람이 몽땅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취하는 것은 예수가 주는 다른 덮개에 비하면 넝마일 뿐이다.

 "아버지여 ...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병정들은 동작을 멈추고 올려다 본다. 그러나 잠깐 일뿐이다. 다른 병정이 침묵을 깨뜨릴 때까지일 뿐이다.

 

"이봐, 어서 제비를 뽑으라구" 그렇게 그들은 다시 게임으로 돌아간다.

산정의 처형식을 휘감는 분위기는 마치 괴기한 서커스같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 가장 추악한 것이 난무하는 자리. 군중들은 마치 게걸스런 사냥개 무리처럼 세 개의 나무에 매달린 육체를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는 하나씩 하나씩 찌른다. 도둑들은 저주 섞인 욕으로 되받는다.

 

그러나 가운데 유대인은 말이 없다. 그럴수록 군중은 더욱더 머리에 핏발이 오른다. 입을 비쭉거린다. 야유를 내뱉는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자기를 구원하고...내려오라!"

 

다른 사람이 비웃는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예수는 살점을 찢어 놓는 대못을 견뎌내듯 조롱을 견뎌낸다.

말없이

종교지도자 몇이 그의 발을 꼬집는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하였도다."

 

군중의 입이 다른 먹이를 찾은 데 안도하며 두 도둑도 가담한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그러나 서서히 한 도둑의 마음에 뉘우침이 일기 시작한다. 마침내 뭔가가 그의 마음을 녹인다. 그 까닭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서서히 몸에 진이 빠지게 하는 손과 발의 못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열? 아니면 피치 못할 종말을 저항하고 있는 그 부질없음 때문에?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도둑이요 반역자였다. 그러나 죄는 그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기가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 것도 알았다. 다른 도둑도 마땅히 받을 것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예수는? 그가 무엇을 홈쳤단 말인가? 누구를 죽였단 말인가? 이런 일을 당할 만한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죄수의 말인가? 반역자의 말인가? 신성을 모독한 자의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누구의 말인가?

도둑의 눈이 죄패를 향한다.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

이 사람이? 왕?  여기 이렇게 속수무책 무력하게 매달려 있는 그가?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뭔가가 있다. 그 눈에 그 말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그 자세에 뭔가가 있다. 모든 욕을, 모든 조롱을 ,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는 그렇다면 정말일가? 저 머리위에 써있는 말이? 이 세상 저편에 다른 세상이 있는 걸까? 어떤 나라 같은 것이?

 

그렇다면 이 사람이 그 나라의 왕일까?

그는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는 죽음의 목전에서 빈손을 내밀어 애원한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지만 무엇때문에 생각해 달라는 것인가? 도둑으로? 심보 고약하고 입버릇 사나운 도둑으로? 도대체 예수님이 그를 무엇때문에 기억해야 한단 말인가? 착한 것이 있어서? 동정심이 있어서? 사회에 공헌한 것이 있어서?

 

"나를 생각하소서" 그는 애원한다. 자기의 어떠함을 인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인해서. 원수들에게도 용서를 베푸실 수 있는 예수님이라면 혹시 그에게도 뭔가 베푸실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은 머리를 드신다. 머리칼이 머리 가죽에 험상궂게 붙어 있다. 기운을 잃고 핏기 없이 마비된 손. 생명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머리의 상처와 손발에 뚫린 구멍으로 . 갈가리 찢긴 등으로. 눈은 로마 병정의 주먹에 연신 얻어맞아 잔뜩 부어 있다. 도둑쪽을 향해 들려진 한 팔이 마치 그의 손을 잡으려고 내미신 손 같다. 그렇게 그분이 말씀하신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분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용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죽어가는 영혼의 타들어 가는 입술에 어떻게 느껴졌겠는지 생각해보라.

 

'오늘' 다른 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

'네가' 나와 함게 있을 것이다. 너 . 도둑이. 너. 죄인이. 정죄당한자가. 버림받은 자가.

네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한다. 최후의 말은 로마법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 내가 말하노니 이 나무 십자가 바리케이트 저편에 너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나. 왕과 함께.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의 오른편에 보좌가 있는

 

그리고 나와 함께 있되... 십자가 위도 아니고..... 무덤속도 아니고... 몸이 떠난 혼이 떠도는 어두운 구천 따위도 아니다.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동산에 죄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에. 눈물이 없는 곳에 . 금이 도로포장에 사용될 정도로 흔하고 보석이 건물 재료로 쓰일정도로 널려 있어 더 이상 도둑질할 이유가 없는 곳에. 생수의 강, 생명나무, 하늘의 부,이것들이 네 것이다. 전 부 다 네 것이다.

 

아무리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한다 해도 , 방금 일어난 일이 무슨 일인지 우리가 감히 이해의 근처에라도 갈 수 있을까? 손에서 손으로 건네진 이 엄청난 선물을 볼 수 있을까? 어마어마한 선물과 그 선물이 건네진 지극히 낮고 천한 자리를 다 볼 수 있을까?....

 

.......

 

우리도 도둑이다. 당신도. 나도. 짧은 시간 인생의 마을을 지나오며 우리는 많은 것을 홈쳤다. 아무도 안 볼 때 작은 것을 주머니에 집어 넣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탕 하나.조그만 장난감. 얼마 후에는 다른 사람의 신체로부터 쾌락을 홈쳤다. 물이나 빵을 홈쳐다 몰래 먹던 그 짜릿함.

 

쾌감, 욕구. 그것이 한덩어리로 어울려 엄연한 도둑질이 되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가 가담한 도둑질이 또 있다. 솔직히 말한다면. 정말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의 기록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지 않은가?

 

분노로 언성을 높였을 때. 우리는 평화를 한 조각 홈친 것이다. 거짓말을 했을 때. 우리는 진리를 한 조각 홈친 것이다. 진실을 말하되 사랑으로 말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누군가를 하나님 나라의 국경 밖으로 좀더 밀어냄을로써 그 나라를 한조각을 홈친 것이다.

 

.... 그러나 우리의 죄가 변호의 여지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보다 크다. 그분의 인자가 우리의 불순종보다 크다. 그분의 자유가 우리의 속박보다 크다. 그분의 자비가 우리의 악의와 시기보다 크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미움보다 크다. 이 모든 것이 이 한마디에 말에 녹아 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자세히 보라.

이것은 조건 없는 약속이다. 유보 없는 약속이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것은 "믿음이 좋다면'이 아니다. 기준에 도달하고 시험을 통과하고 점수가 좋으면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의가 아니다. 선포이다. 칙령이다. 왕의 칙령. 왕의 피로 직접 서명한. 와의 죽음으로 직접 인봉한, 은수저를 홈치다 현장에서 잡힌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은 촛대이다.

왕의 촛대.

그것이 우리 것이다.

영원히.

 

이 엄청난 선물에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

물론 받은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십자가에 달린 자의 겸손으로.

우리야말로 마땅히 우리 자신의 죄로 거기 매달려 있음을 알기에.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단순히 희망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희망임을 알기에

 

그런 감사로 선물을 받을 때 .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영원히 바꿔 놓는다. 우리에게 베푸신 똑같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으로 .(*)

 

 

켄 가이어 /묵상하는 삶/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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