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를 보는 토끼, 목표를 보는 거북이.... 과연 토끼는 목표를 잃었을까?
강동훈
|2007.03.26 12:44
조회 55 |추천 2
며칠전 영어스터디 때문에 박정희가 쓴 광화문 현판이 새로 교체되는 작업에 대하여 뉴스와 사설을 찾던 중에 "Joongangdaily"라는 사이트에서 흥미있는 사설이 있어 유심히 보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요즈음 노무현은 박정희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여 박정희 기념관 백지화, 그때 그사람들 혹은 효자동 이발사와 같은 영화를 통한 간접적인 박정희 비판, 광화문 현판과 같은 사건들을 통하여 박정희의 행적을 지우거나 축소, 왜곡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비유하여, 노무현은 토끼로서 목표에는 관심없고 라이벌인 거북이만 이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당시의 박정희는 초지일관 자신의 목표를 두고 달려갔다. 북핵문제, 경제파탄 등의 어려운 시국에서 과거에 집착하여 현실에 충실하지 못함을 꾸짖으려 한다.
그러므로, 노무현은 좀 더 성숙하고 완성도 있는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위해 뛰어라.
특정 대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피력하여 견책하고 격려하는 사설이라는 글의 특성을 보아 그렇게 쓰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내 생각에는 몇가지의 연관성 있는 개개의 사건을 꼬집어 "(노무현 = 과거에 집착하는 토끼) & (노무현의 라이벌 = 박정희 및 여당)" 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논을 한다는 자체가 억지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문화적인 몇가지 사건은 충분히 그 자체로써 의미와 가치가 있지만, 거기에 대한 제멋대로의 평가와 재해석가 위와 같은 터무니 없는 공식을 이끌어 낸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라이벌은 누구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현재까지의 행동 또는 말을(항상 그의 말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상당히 진보적이다. 그의 발언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총리에게의 대통령 다수 권한의 위임, 권위주의적 대통령도 시민이라는 생각을 더욱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 등을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접하였다.) 보았을때 그의 라이벌은 그 자신이거나 혹은 이상적인(imaginary) 누구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과거에 집착할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낭만으로서 과거를 바라보곤 한다. 이 시대 주요한 의사 표현 계층인 3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은 모두 박정희 시대를 겪었고 "그때가 좋았지..."라는 담배 한모금 뒤 날아가는 담배 연기처럼 과거를 회상하곤 한다.(사실 30대 중반까지는 박정희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담배 연기가 한국 민주주의의 허파를 찢어내고 간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독재, 군부정치, 수많은 고문, 사망 등의 희생, 억압 등은 우리에게 분명히 박정희에 의해 존재했던 것들이며, 우리가 당사자 혹은 그들의 가족이었더라면 이러한 단어들이 그냥 단어이기만 할까? 그들에게 그것들은 삶의 고통 자체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교과서 역시 박정희 시대의 경제 성장에 대해 미화하여 학생들에게 부각되고 있어 그 시대에 자행되어진 독재와 만행, 사건, 사고 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줄어듦이 사실이다.
어찌보면 저 사설을 쓴 사람의 말처럼 거의 동시대를 산 두 사람을 역사는 라이벌로 기록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주위에서 회자되고 있는 그 두사람에 대해서 현실에서는, 이성적이고 중립적인 판정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처음부터 상황이나 환경, 목표가 달랐던 두 대통령...... 부디 역사에 의해 적절히 판정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