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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강도영 |2007.03.31 00:36
조회 67 |추천 0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 사람을, 공동체를, 그리고 사회를 이렇게 통째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고 놀랍다..

 

해방직후 재일 조선인 1세들은 자녀들이 장차 조국으로 돌아가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위해서 ‘조선학교' = ‘우리학교’를 세웠다. 당시만 해도 540여 개가 넘던 조선학교는 일본 우익단체들의 탄압에 80여 개의 학교만 남게 되었다. 한일협정이후, 일본정부는 재일동포들에게 한국국적을 취득하면 많은 이득을 주겠다며 선전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정책은 한국 교민사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수많은 재일동포들은 국적 취득을 포기했고 일본정부는 남쪽, 북쪽의 국적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인 조선의 국적을 부여했다. 타지에서 그들의 한 맺힌 설움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통일, 하나 됨에 대한 비전의 씨앗을 가슴에 담고 김명준 감독은 남은 조선학교중 하나인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 대한 솔직한 삶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냈다.

 

"언제 처음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오또상, 오까상’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 부를 때부터 ‘조금 남하고 다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 학생 조성래 (고급부 3학년)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과정을 한 학급에서 밟게 된다. 12년 동안의 과정을 같은 반 친구들과 보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가 없다. 오히려 서로를 배려하고 위하려고 노력한다.

 

"우리학교에 다니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혹시 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소년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 학생 윤태명 (고급부 3학년)

 

"학교에 처음 편입해 왔을 때 우리말이 익숙지 않아서 일부러 말도 하지 않고 아이들과 서먹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어요..우리말만 쓰는 ‘우리학교’에서 우리말이 익숙지 않아 아예 입을 다물고 살았는데… 그런 사정을 알고 반장이 편입생들은 일본말을 써도 된다고 해서… 정말 울 뻔 할 정도로 기뻤습니다. 너는 왜 알아주는가 나의 사정을…”

                          - 학생 오려실 (고급부 3학년)

 

남쪽 땅덩어리의 3/4크기에 달한다는 홋카이도 섬은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가장 큰 섬이다. 이렇게 거대한 땅에 재일동포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조선학교’는 이 학교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통학을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저 멀리서 기숙을 하는 학생들도 꽤나 많았다.

그들은 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또 선생님들과 같이 뒹굴며 살아간다. 총각 처녀 선생님들은 같이 머물고 있는 학생들을 친동생처럼 대하며 사랑하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들하고 한 이불 속에 다 같이 들어가 자는데 한 녀석이 ‘이런 거 일본학교에서는 생각 못한다’ 하니, 더더욱 사랑스럽고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느끼지요.”

                                           - 교사 김유섭

 

‘우리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재일동포 3세나 4세로 구성되어 있다. 오히려 일본학교에 다니면서 일본아이들처럼 살아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미국으로 이민 떠난 재미동포들은 미국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의 말과 행동, 생각 속에는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깊이 사무쳐 있었다.

 

"추운데도 불구하고 왜 치마저고리를 입어요?"

“그것을 입으면 뭔가… 조선사람 으로서의 의식이 커진다고 할까, 나에게 용기를 준다고 할까...”

                         - 학생 오려실 (고급부 3학년)

 

이들의 마음에는 내가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조선사람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르다는 것-이것을 그들은 민족성이라고 말했다-을 내면으로만 생각하고 간직한다면 결국 그들도 일본사람들과 똑같아질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문화가 그들의 내면에 침투할 것을 걱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겉으로도 표현해야 한다. 내가 조선 사람이고 비록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재일동포 사회를 처음 접했을 때 지금까지 해왔던 세계하고는 영 다른 세계가 있어서… 이 아이들은 정말로 밝은 표정으로 생활하고 있구나. 아주 신선한 느낌이어서…”

               - 교사 후지시로(축구부 코치/일본인 선생님)

 

‘우리학교’에 유일한 일본인 교사로 있는 후지시로는 일본인 세계에서는 접할 수 없는 그런 사회를 접했다고 고백한다. 유명한 축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지시로는 매우 우연한 기회로 ‘우리학교’를 알게 되고 선생님까지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어느 한순간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공부를 하거나 축구를 할 때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동포들을 위해, 조선을 위해 한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 따르기 쉽지 않는 가치이지만 이들은 그 가치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계속 함께 하기를 소망했다.

 

축구 교사인 후지시로와 박유사 선생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학교 대항 축구대회에 나갔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일본학교 대항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90년대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학교로도 인정을 못 받았을 뿐 아니라 일본학교들이 그들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 때문에 대회에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대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이 안건은 한사람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통과가 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이 조선학생들의 실력이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는 실력도 되지 않으니 그냥 받아달라는 ‘우리학교’ 선생님들과 일부 일본선생님들의 간청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정말 몸을 사리지 않고 죽어라 뛰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량을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시합은 1-0으로 지고 말았다. 경기가 끝나고 실망스런 결과에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몇몇의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이 경기가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더욱 슬펐지만 그들이 흘린 눈물의 진정한 의미는 대표자로서의 안타까움이다. 자신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동포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순수한 마음은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미어진다.

 

“졌다고 기죽지 마라. 너희들다운 게임이었다. 너희는 백(100%)내었다. 오늘을 잊지 말자”

          - 교사 박유사가 일본학교 대항 축구대회에 패한 후

 

영화를 감상한 후,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故조은령감독과 김명준감독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무엇이며 이들을 통해 어떤 인사이트를 보여주시려고 했는지 궁금했다.

 

‘우리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2시간 남짓 보면서 강하게 뇌리를 스치는 두 가지 생각은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정체성을 대표하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우익단체로부터 협박도 받고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 일본친구들을 볼 때는 힘들기도 하지만 정체성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했고 그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이 확실하지 않다면 그들의 존재자체가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포사회를 대표하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은 매우 숭고했다. 나를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다.

 

이것이 바로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내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

극히 개인주의적인 사회에 우리는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 집안, 직장 등으로 끊임없이 평가되고..

내 자신이 누구인지..

삶을 살아가는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세상을 특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세계관이란 것은 존재하는지 

안다는 것이 전혀 애매모호한 그러한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 우리학교 아이들은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비록 그들의 마음이 10년 20년 지속될 그런 결심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삶이 무엇이며 우리는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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