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1일.
오늘은 만우절이다.
그런데 내 인생은... 이 이야기는 절대 만우절 우스개 이야기가 아니다.
핸드폰 요금... 이번달에 조금 많이나왔지.
엄마가 경고했지. 3만원 넘으면 해지시키겠다고.
그래서 해지시키셨나보다.. 간단히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는.. 여지껏 내 부모를 미워하고 내 가족을 증오하고 나를 이렇게 만든.. 주위 모든 사람들은..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참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평생 내 어머니를 증오하면서 살거다.
이유?
이유 많지.
내 형제들을 위해서 나를 버린.. 그 짧은 시간동안.. 나에게 어떤 일들이있었는지..
내 어머니란 여자는 알지도 못한다.
내 오빠는 엄마와 떨어질 수 없을만큼 성격이 지랄맞아서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내 여동생은.. 너무 약해서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했기때문에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너무 온순해서.. 그래서 시골로 보냈다고 한다.
두 형제 덕분에 나는... 보호받지 못하던 나는...
아직까지도 내 종아리에 커다란 뜨거운 물에 데인 상처가 크게 있다.
그리고 그것 보다 더 큰 상처가 있다..
내 머릿속에.. 내 몸속에..
그 짧은... 내가 그때가 몇살인지.. 나는 알지도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때 내게 있었던.. 내게 무슨짓거리들을 하던 일들을 모두 기억한다.
그들이 몇살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내 옆집 언니의 오빠였고, 또 다른 옆집 삼촌이었고, 또 강건너 나이 많은 오빠였다.
내 부모가 내 다른 형제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버려두었던 그 시간에
나는.. 그들에게 짓밟혔다.
아무것도 모르던.. 절대 알수없던 그 나이에..
나는.. 알아버렸다.
시골... 맑은 날씨... 참 다정한 오빠들... 손잡고 걸어가던 오빠가..
갑자기 개울 굴밑으로 데러가.. 내 그곳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나는... 너무 놀래서 그 자리에서 뛰쳐나와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그 오빠를 다시는 쳐다보지 못했고..
그사람이 장가간다고 동네에 소문이 퍼지던.. 내가 거의 국민학고 고학년? 중학교? 그때쯤에..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에 증오했다.
나를 망가뜨린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에..
옆집 삼촌은.. 나를 강가 돌위에 눞혀놓고 올라타서 놀았따.
강건너 오빠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땐.. 시골 엄마 아빠 방에서.. 내 그곳을 만지고 또 만졌다.
그가 나중에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에도.. 나는 증오했다.
그리고 나는 내 부모를 증오한다.
주위에서 두분은 금술좋기로 소문이 나있따.
나는 그것도 증오한다.
왜... 두분이 그렇게 금솔 좋은 사이... 나는 내 형제에게 호기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다란 일들이 벌어졌다
내 어머니는 왜 형제간에 우애가 좋지 않냐고 따진다.
다 이유가 있다는걸.. 엄마는 모른다ㅏ.
내 여동생, 나.. 그리고 오빠.
이 세사람만이 알고있는데... 분명 나는.. 어렸고, 분명 오빠도 어렸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오빠가 잘못한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내 부모를 또 증오한다.
2남2녀를 기르느라 고생하셨겠찌... 그리고 유일하게 가는 친척집이... 고모네집이었다.
고모네집에가면 고모는 너무나 잘해주신다. 맛있는것도 많이 해주시고
수영도 하게 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간다.
그리고 나는 .. 갈때마가 갈등한다.
왜... 왜? 왜겠어.. 그곳에서도 나를 해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데 모른다. 어른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뱓았는지..
그리고 내가 초경을 할때.. 생리불순으로 산부인과까지 갔을때..
나는 산부인과 의사가 알아주길 너무나도 간절히 바랬따..
정말.. 너무너무 무서웠지만.. 그때만이라도 알아주길 바랬따..
그래서.. 엄마가 나를 감싸주길 바랬다..
그런데 완전 돌파리였나보다. 아니.. 그 시골 병원의사를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
그리고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증오한다.
단 한번도 나를 사랑해주시지 않았다.
안아주지 않았따..
왜? 왜... 왜그랬을까?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억지를 쓰신다..
엄마가 나를 낳다가 돌아가실뻔 했다는거다.
그게 내탓인가? 나는 30분만에 나왔는데.... 집에서 낳다가 본인들이 잘못해서 피를 많이 쏟아서 그렇게 된것을..
나때문이라고 나를 싫어하셨다.
그게.. 그게 정말... 정당한걸까?
29년이다.
아니.. 엄연히 따지면.. 몇년인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 2학년... 갑자기 머리가 너무너무 아파서 죽을것 같았따.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다 이런이유였을것이다.
언제나 나는 머리가 아팠고.. 언제나 나는.. 죽고싶었다.
언제나 나는 이성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었고..
언제나 나는 아버지까지도 내 이성상대로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왜...
나는.. 단 한번도... 사랑받지도 못했는데..
어제 한의원에 다녀왔다.
원장님 말씀이... 이십대에.. 육십대의 몸을 가지고 살고계시다고... 무척이나 힘드실것 같다고...
일년에 두명이나 올까 말까한데.. 그게 나라고...
내가... 유산했을때는... 고기없는 미역국에.. 밥만 차려먹으라던 엄마가..
내 여동생이 유산을 하니... 별애별것을 다 해줬단다..
알로에도 직접 사서 갈아주고, 팩해주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문어도 자주 사주고
한약도 먹이고.... 그리고 그것이 관상때문에 그럴지 모르니 코수술까지 해주었단다.
나는.. 거지같이 살았다.
고기없는 미역국 먹으며... 눈치받으며... 괄시받으며.. 너무견디기 힘들어 선택한 아이 아빠였는데..
결국 나에게 남은것은.. 5살짜리 아들과... 내 몸뚱아리다.
겨우...
나한테 절대.. 평생.. 잊지못할 아주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주제에..
겨우 핸드폰요금 얼마 나왔다고...
이 고통이 얼마나 아픈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죄스러워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겨우 내게 이런 고통을 줬으면서.. 겨우 몇푼때문에 ..
일억? 천억을 갖다줘도.. 내 고통을 치유할수없다.
엄마가 무릎꿇고 사과해도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그런데 ..
내 형제는 내 이혼이 창피하고, 내 삶을 멸시한다.
그래.
다들 얼마나 잘 사는지 지켜보겠어
가족을 미워하게 만든건 엄마였다.
형제들간에 이간질 시킨것도 엄마였다.
절대... 절대.. 용서하지 않을꺼다.
그때... 그 어린 나를.. 버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지금의 나는... 아마도 엄마가 태몽에서 보았던..
그 빛나는 보석이 되어있을것이다.
왜냐면... 엄마가 버린... 그때부터... 적어도 초경하기 전까지... 나는... 5섯명이 넘는 남자를 상대했으니까.
지나버리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이렇게 일찍 남자를 만나.. 사고친것도.. 모두 다 그때문이니까..
어쩌면 사람들은.. 그건 니탓이야.. 라고 할지도 모른다.
니가 이성이 강했으면.. 이라고..
그래 종종 나도.. 내탓이야 라고 할때가 있다..
하지만.. 내탓이 아니다.. 내탓이 아니다...
내탓이 아니야...
내탓이 아니야...
내탓이 아니라고....
정말 내탓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