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그루누이는 생선장수를 하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자마자 생선내장 사이에 버림을 당한다.그러나 살고자 하는 본능때문이었을까...울음소리 한방으로 경찰에 발견된 그는 수도원의 도움으로 보모에게 의탁된다.그러나 젖은 악착같이 빨면서 아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섬뜩하다는 첫번 째 보모에게서 외면당한 그는 후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보모에게 보내진다.돈만 아는 보모는 수도원에서 육아비가 끊기자 그리말이라는 무두장이에게 그루누이를 판다.
짐승의 날가죽을 손질하여 파는그리말의 체취를 맡는 순간 그루누이는 자신이 위험에 처함을 간파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동물적인 본능으로 일을 하는 그루누이를 맨바닥에서 자게 하는 그리말에게 조금씩 신용을 얻어 외출까지 하게 되는데...어느 날 파리 시내에 나갔다가 악취속에 날려오는 어떤 향기를 맡는다. 향기를 따라 길을 걷던 그루누이의 눈앞에 오이를 썰고 있는 어린 소녀가 보인다.그것이 최초의 살인이었다.자신의 기분을 최상으로 업시켜 준 그 향기를 내면속에 품고 길을 걷던 그루누이에게서는 어떤 상식이나 선과 악에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우연히 향수제조인인 발디니의 가게에 발을 딛게 된 그루누이는 발디니에게 천재성을 발휘하여 도제로 들어간다. 그러나 발디니는 그의 향수 비법만 알아내려 할 뿐이다향기제조에 관한 강한 욕망으로 그라스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본인에게선 아무 향기가 나지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루누이는 동굴에서 7년간 은둔 생활을 한후 향기의 도시 그라스로가 그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수에 대한 염원이, 막 여성성이 자라나는 어린 소녀들에게 마수를 뻗치게 된 것이다.
그라스에서 어린 소녀 스물다섯 명이 그렇게 사라졌고 도시 전체는 공황에 빠질 듯 위태롭다.스물 다섯명의 살해범으로 그루누이가 잡혀와 사형을 언도받지만 그루누이가 뿌린 향기때문에 군중들은 적개심을 버리고 그를 추앙하게 된다.최근 영화로도 개봉하였는데,영화에서는 그 향기를 맡고 모든이들이 섞여 에로스적인 성교를 맺는 장면으로 그들과 향수의 이중성을 묘사한다.
사형집행장에서 빠져나온 그는 본능적으로 그가 태어난 파리에 도착한다.그가 만든 향기에 취한 거리의 부랑자들에게 한순간에 죽임을 당한다.마지막 죽는 순간에야 부랑자들의 배와 마음을 채워준것일까.살인에 대한 최책감으로 죽음을 당한것은 아닐 것이다.
'향수'자체가 씻지않는 그들의 악취를 업애고자 만든 것인데 깨끗히 잘 씻게 된 현재에도 치장의 일부분으로 포함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한 방울의 향기에도 사고조차 매혹시키는 향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향기일까 라는 생각이 영화와 소설을 보는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유혹.
[콘트라베이스]와 [좀머씨 이야기]등으로 백만장자임에도 낡은집에서 낡은 스웨터를 입고 작품의 대성공으로 인한 문학상조차 거부한채 햇빛과 여자와 TV없이 은둔생활을 하는것으로 유명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현대 도시인의 탐욕에 대한 조롱과 비판을 주제로한 작품으로 유명하며,그의 작품에서는 사회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그늘에 있는 사람이거나,비주류의 사람들이 주역이다.
재미 있는건,작품속엔 대부분 작가의 성향이 깊게 물들어 있다.
예를 들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속 여주인공들은 항상 하얀피부에 바짝 말르고,목욕하기가 유일한 취미이며 무기력하게 일하기 싫어하고 삶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주의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그녀의 사진을 보면 그녀의 성향이 소설에 녹아있는것이 이해되는데,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 사회와 사람들은 어떤 상처를 입혔길래,은둔생활을 통해 글로만 세상을 조롱하는 걸까?대신 신께선 그에게 천재적인 작가성을 주셨으니,그도 햇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세상으로 걸어나왔으면 좋겠다.
천재적인 그의 소설에도 밝음이 깃들면 더 좋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