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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허구의 절묘한, 그러나 지루한 결합... <아내의 슬리퍼를 신은 남자>

백혁현 |2007.04.08 11:23
조회 267 |추천 0


 

  얼마전 읽은 박형서의 소설집에 실린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에서도 남성 성기가 거세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엽편에 가까운 이 소설을 읽으며 머리를 쥐어뜯은 것이 엊그제인데, 이제 벵상 드 스와르트라는 프랑스 작가는 남성 성기의 거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자리에 여성 성기가 떡하니 붙게 되었다, 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장편의 분량에서 다루고 있다.


  “...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는 매일 술을 마셨고, 어쩌면 만취 상태에서도 30년 전에 빼앗겼던 엄마의 젖을 안느한테서 되찾고 싶어한 건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는 한 여인의 눈 때문에 그녀와 결혼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젖가슴에 중독돼서 결혼하기도 하는 법...”


  소설은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챕터 에서 마흔 살의 소설가인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두드러기 발진을 겪은 후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남성 성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여성의 성기가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라는 족속을 증오한 적’도 없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는 당황한다.


  “... 내 경우는 누군가 위험신호를 켜고 페니스를 앗아가, 그 자리에 여성의 성기를 붙여놓은 것이다. 암보다 더 나쁜 것은 아니지만, 도둑놈이 도망쳐버린 이상, 이런 위로가 모든 것을 낫게 하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안느가 있다. 일을 하느라 피곤한 그녀에게 매일 섹스를 조르던 나는 이제 절대로 그럴 수 없게 된다. 나는 집에서 소설을 집필하는 중에도 혹시 자신의 이런 변화를 안느가 알게 되고, 다른 남자로부터 욕망의 해소를 도움받는 것은 아닌지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나는 매년 안느와 함께 하던 휴양지 루아이앙에서 자신의 이런 변화를 실토하기로 작정하고,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나는 두 개의 성들 사이에 끼게 된 행운 덕에 그 누구보다도 이성에 대해 잘 알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자신의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해 투시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혹은 이 모든 소란스런 일들이 겉으로만 그런 건지, 아니면 최악의 경우, 진자로 성가신 일로 남게 될 것인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실토를 하려던 나의 계획은 휴양지에 머무는 동안 차일피일 미루어만 지고, 나는 바닷가에 나가지도 못한 채 그저 방안에서 뒹굴댈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레 (이제 나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므로) 생리가 시작되고, 나는 그 장명을 아내에게 들키고 만다. 그리고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아내에게 말하기로 작정한다. 여기까지가 두 번째 챕터인 의 내용이다.


  “... 안느를 불렀다.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자신이 차 있길 바랬다. 그녀에게 설명할 것이다. 시간이 되었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제 여자로서 준비가 된 것이다.”


  세 번째 챕터인 로 넘어가면 이제 안느는 모든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무척 놀라던 안느도 결국은 변화된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쓰려던 소설을 폐기하고 나와 안느 사이에 벌어진 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작정한다. 물론 소설의 등장인물이 되어야 하는 안느와 잘 협의해서 말이다.


  “... 녹음기나, 책이나…… 책은 항상 거짓이다. 비록 우리가 진실의 현기증을 향해 나아간다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피노키오처럼 우리와 타인들의 삶에 대해서 끊임업이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다...”


  황당무계의 무게감은 그렇다치고 작가는 그 안에 풍성함을 넘어 빽빽한 넝쿨로 가득한 숲과도 같은 사색을 넣고 있다. 그런가하면 소설 내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성기의 교체를 마치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작가는 소설의 말미에 느닷없이 ‘책은 항상 거짓’이라며 자신이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소설로 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현실은 소설이 되고, 소설이 됨으로써 허구가 된다. 소설이라는 거름종이를 거치면서 현실은 그 껍데기는 남기고 허구만을 아래로 떨어뜨려 인공의 감미로운 커피가 되는 것, 이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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