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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사라지지 않는 조폭문화

강호중 |2007.04.10 01:57
조회 506 |추천 8

   대학을 입학하던 날에는, 군사 문화의 잔재가 화석처럼 잘 보존돼있던 80년대의 고등학교 울타리를 탈출해서 이제 드디어 자유라는 것을 누리게 될 것이란 기대감에 자그마한 단과 대학 캠퍼스가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

   그러나 그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린 것이 학군단 생활이었다. 군대 면제를 받는 대신 1,2학년 동안 예비역 하사관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하길래 거의 노예문서 수준의 학군단 입단 서류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신나게 도장을 꽝 찍었다.

   멋진 단복을 입고 폼 나게 입단식을 치른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선배들의 소집령이 떨어졌다. 모여보니 다짜고짜 단체 기합이다. 군기를 잡아야 한단다. 훈련이 있으나 없으나 단복을 입어야 하고, 선배들을 보면 하늘이 떠나가라 악을 쓰며 경례를 해야 하고, 둘 이상이 걸을 때는 보조를 맞춰 걸어야 하고…..

이런, 이것은 대학 생활이 아니고 군대 생활이었다! 이 배신감이란….

 

   일 주일이 멀다 하고 단체 기합이 이어졌다. 과별로도 불려가서 단체 기합을 받는다. 다행히 우리 과학과는 2학년 선배가 모두 여학생이라 불려갈 일이 없다 싶었는데,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긴 체육과 선배들이 우리를 위해 날을 잡아놨다는 말도 들려온다.

   아무리 학군단 소속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캠퍼스의 낭만을 누릴 기회를 박탈해 버리질 않나, 학군단 조직과는 무관한 학과별 기합을 하지 않나, 못 마땅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국, 우리들은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원칙도 없이 자행되고 있는 단체기합을 공식적으로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작전을 짰다. 일단 모이라고 하면 모이긴 해야겠지만 그것이 기합으로 연결되면, 일체의 명령에 불응하며 꼼짝도 않고 서 있기로 했다. 사뭇 비장한 각오로 1년차 모두의 단결력을 보여 주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2년차 선배들로부터 소집령이 떨어졌다. 운동장에서 약 20명의 선배들이 엄숙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평소에 우리의 군기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나서는 그러한 이유로 불가피하게 정신 교육을 시작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전체 엎드려 뻗쳐!”

 

아무도 안 움직인다.  아주 짧은 순간에 당혹, 긴장, 냉소, 분노가 어지럽게 교차한 듯 하더니 다시 한 번 명령이 떨어진다.

“내 말이 안 들리나! 엎드려 뻗쳐, 이 자식들아.”

역시 아무도 안 움직인다.

“어쭈, 이것 봐라. 교육을 거부하겠다는 건가?”

잠시 침묵이 흐른다.

“좋다. 다 앉아.”

그 앉으란 말을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말 정도로 이해한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다 다 같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내 약간 높아진 톤으로 이어지는 말은 “일어서”였다.

모두 일어섰다.

“앉아”

다시 앉았다.

“일어서”

일어섰다.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이런! 역시 선배들은 노련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들의 투지를 꺾기 시작한 것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몇몇 친구들이 작지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독려를 한다.

“야, 앉지마. 앉지마. 이거 기합이야.”

뒤 늦게 정신을 차리고 모두가 다시 부동 자세로 들어간다.

그러자 이 번엔 주변에 늘어서있던 선배들이 대열로 들어오더니 한 명씩 붙잡고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말을 듣지 않는 친구들을 향해 여지없이 주먹과 발길질이 오간다. 여기저기서 퍽, 퍽, 윽, 윽 소리가 이어지고 얻어터진 친구들은 하나 둘, 기가 꺾이는 듯한 분위기다.

 

그러자 대장이 나서서 선배들을 일단 대열 밖으로 내보내고는 우리 보고 다시 앉으란다. 이번엔 정말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것은 기합이 아니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앉으라 하니 모두가 자리에 앉는다.

“좋다. 너희들이 정 그렇게 용감하게 교육을 거부하겠다면, 정당하게 자기 의사를 밝혀라. 단,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의사 표현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니 모두 눈을 감아라.

눈을 감고 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서라.”

그래서 일어섰다.

 

그런데 뭔가 주변의 느낌이 이상하다. 다 같이 일어선 것이라면, 아니 다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반만 일어선 것이라도 이렇게까지 사방이 조용할 리는 없는데….

“일어선 사람은 눈을 떠라.”

눈을 떠 보니 이게 왠 일인가? 나를 포함해서 딱 두 명이다. 그나마 나머지 한 명은 2년차 선배와 잘 아는 사이인지, ‘야, 앉아, 앉아…”하는 다급한 권유에 얼른 다시 앉아 버렸다.

대장의 기세 등등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일어선 사람은 열 밖으로 나와라.”

그래서 열 밖으로 나왔다.

“그럼 지금 앉아 있는 사람들은 교육을 받겠다는 건가?”

조용하다.

“다시 묻겠다. 교육을 받겠다는 건가?”

여기 저기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산발적인 대답이 들려온다.

“예, 예, 예….”

“어쭈 목소리 봐라. 교육을 받겠다는 건가 아닌가?”

그러자, 다 같이 아주 큰 소리로 대답한다.

“받겠습니다.”

“다 같이 귀잡아!. 토끼뜀으로 운동장을 돈다. 출발!”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서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한 선배가 기세 등등해서 다가 온다.

“이 자식은 뭐야. 그래서 넌, 왜 교육을 안 받겠다는거야?”

하늘이 도왔다.

바로 그 질문. 그 질문을 기다렸던 것이다. 다짜고자 주먹부터 날아왔다면 그냥 맞아야지 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아무튼 나는 기회를 잡았다.

“저는 이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교육을 통해 우리한테 지적한 내용이 뭡니까? 복장 불량, 사복 착용, 걸어다니며 담배 피우는 것…그런 것이었지요? 지금 이 자리에 나와있는 선배님들 중 대부분이 그거 지키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도 지키지 않는 것을 가지고 우리한테 교육을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건 교육이 아니고 공연히 생트집 잡아서 후배들은 골탕먹이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은 받을 수 없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얼굴이 뻘개진 이 착한 선배는 내 말에 한 마디도 대꾸를 하지 못했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평소의 선배들이 그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혼자 씩씩거리다 그냥 휙 가버린다.

 

시간이 점점 흐른다. 저 쪽에서 또 한 명의 선배가 달려온다. 아마 아까 그 선배로부터 내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뭔가 작정하고 오는 듯 하다.

“그래서. 니가 그렇게 잘났어?”

하고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 순간. 운동장 저 쪽에서 호각 소리와 버럭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린다. 교관이다. 처음부터 우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 같이 이쪽으로 모여.”

기합을 받던 친구들이 교관 앞으로 모인다.

“거기 서 있는 너도 이리 와서 같이 줄 서.”

 

그리고 양측의 이야기를 경청한 교관이 최종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는 2년차는 너희들 임의대로 1년차 정신 교육을 시키지마라.”

그래서, 그 이후로 선배들의 단체 기합이 없어졌다. 비록 중간에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그래서 아주 쑥스럽지만 아무튼 굴종이 아닌 투쟁의 열매는 달콤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우리는 2년차가 됐고, 우리 밑으로 후배가 들어왔다. 작년의 투쟁을 기억하고 있을 우리들은 당연히 뭔가 개선된 방법으로 후배들에게 군인 정신을 가르쳐야 했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작년에 선배들이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 후배들을 불러다 단체 기합을 줬다. 후배들이 영 군기가 빠져서 안되겠다고 난리다.

 

오호 통제라! 누구나 권력을 쥐면 그렇게 인식이 변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무지한 뒷골목 깡패들이던, 장래 교단에 설 예비 교사들이든 권력을 쥐었을 때의 모습은 어찌 그리 똑 같을까?

 

평택의 농민을 공권력으로 진압하는 대한민국의 참여 정부나,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 군사 정권이나,  노동자 농민의 천국을 만든답시고 피흘려 공산당 혁명에 성공한 다음에 지금에 와서는 엄청난 빈부 차이를 만들어 놓은 지금의 중국 공산당 정부나,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 놨더니 약소국에 전쟁 일으켜서 무기 판 돈으로 제 배를 불리고 있는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똑 같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이런 현실이 오랜 세월 일제의 식민 통치를 겪고, 군사 독재 시절을 보내면서 보고 배운 것이 그런것 밖에 없어서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이나 민주적으로 사회 질서를 수립해 가는 방법에 대한 개념 자체가 머리 속에 형성이 안돼서 그런 것이려니 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다. 세월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믿었단 말이다.

 

그런데 최근 아주 충격적인 뉴스를 봤다. 학군단도 아닌 일반 대학에서 선배가 후배를 기합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질서도 잡히고 선후배 간의 관계도 돈독해진다고 믿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혐오스러운 군사 문화가 오히려 더 심해진 것이다. 민주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지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저급한 조폭 문화가 사라지기는 커녕 종횡으로 확대된 것이다.

 

대학 만이 아니다. 교문에서 선도부가 복장 검사를 하고, 지각생을 잡아 기합을 주는 모습 또한 중고등학교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두발검사를 해서 머리를 가위로 쑥 잘라버리는 벌칙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인격적인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자녀나 제자를 인격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아 정말 우울하다.

추천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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