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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칠면초/거대한 땅그림/순천만

박종현 |2007.04.10 22:32
조회 74 |추천 0

그것은 거대한 땅 그림처럼 보였다. 칠면초(七面草)가 뒤덮은 붉은 땅 위엔 푸른 갈대섬이 외계의 문자처럼 돋아 있었다. 아메바가 증식하듯, 물방울이 합쳐지듯, 원형의 갈대섬은 때로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서로 맞닿았다. 여기는 순천만. 가을의 길목이 선사하는 거대한 땅 그림은 10월 중순이면 사라진다. 갈대는 은빛꽃을 피우며 모랫빛으로 변하고, 칠면초는 찬바람과 함께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붉은 칠면초 사이에 푸른 갈대섬이 아라비아의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다. 칠면초 군락의 끝은 갯벌과 맞닿았다.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 용산 전망대. 비가 그친 뒤 300㎜ 망원렌즈로 당겨 찍었다.

왜 벌써 가느냐고 사람들은 물었다. 순천만은 대표적인 늦가을 여행지. 금빛으로 물든 S자형의 물길과, 솜털처럼 흐드러진 갈대로 기억되는 곳이다. 전세계에 1만여마리밖에 없다는 흑두루미 200여마리가 겨울마다 집을 짓는 철새 도래지다. 그러나 순천만엔 갈대와 철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계절의 경계에 선 지금, 순천만엔 칠면초가 한창이다. 뭍에서 갈대밭, 칠면초, 갯벌, 모래밭, 바다로 이어지는 연안의 질서도, 넉넉한 가을빛이 모든 것을 금빛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더 잘 보인다.  

 

해안선 길이 35.8㎞, 너비로는 8백만평. 순천만을 한눈에 보려면 해룡면 농주리 용산에 올라야 한다. 순천시가 지난해 8월 대대포구 갈대밭을 가로질러 용산 전망대까지 산책로를 닦아놓아 접근이 쉬워졌다. 갯벌을 가로지르는 S자형 물길을 경계로 오른쪽이 대대포구 갈대밭, 왼쪽이 농주리 칠면초 군락이다. 맞은편 산자락을 돌아나가면 일출 조망지인 화포, 화포 맞은편이 일몰로 유명한 와온해변이다. 순천만 전체는 지난 1월 국내 연안습지로는 처음으로 습지관련 국제기구인 람사협약에 등록됐다. 국제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의 월동지인 데다, 연안습지의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기 때문이다. 

 

호수에 뜬 개구리밥 같은 갈대섬을 보던 사람들은 “순천시가 일부러 원형으로 깎아 놓은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순천만 ‘지킴이’인 서관석 순천환경운동연합 순천만위원장은 “절반은 맞는 소리”라고 말했다. 

 

“1996년 골재 채취 공사 때문에 갈대들이 떠밀려 흩어졌어요. 물결이 잔잔하다보니 멀리 가지 못하고, 떨어진 자리에서 번식해 원형 갈대섬을 이루게 된 것이죠.” 

 

서씨는 “칠면초 사이에 갈대섬이 있는 것도 생태계 교란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연안의 질서대로라면 뭍, 갈대 군락, 칠면초 군락이 차례로 이어져야 한다.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와 달리 칠면초는 뭍과 갯벌 사이의 염습지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가는 길, 영종대교 아래 돋아난 붉은 염생식물이 바로 칠면초다. 

 

용산자락 농주리에서는 칠면초 군락 코앞까지 접근할 수 있다. 봄에 연둣빛으로 싹을 틔워 차츰 붉어지다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11월이면 하얗게 말라죽는다. 일곱 번 색깔이 변한다고 칠면초란 이름이 붙었다. 육면체 모양의 열매 각 면마다 색깔이 달라 칠면초라는 이야기도 있다. 염분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간척지에 일부러 심기도 한다. 퉁퉁마디, 나문재, 해홍나물 등이 비슷하게 생겼는데, 일반인은 구분이 어렵다. 

 

동네 사람들은 칠면초를 ‘기진개’라고 부른다. 봄철 새순은 데쳐 먹기도 한다. 잎 자체가 짭짤하기 때문에 따로 간을 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에선 퉁퉁마디를 잘 말려 소금 대신 쓰기도 한단다. 몇년 전만 해도 와온해변 솔섬 앞에도 칠면초가 무성했는데, 지금은 한 포기도 구경할 수 없다. 약재로 쓴다며 포대로 캐어가곤 했단다. 한해살이 풀이기 때문에 씨앗을 뿌리기 전 캐내면 다시는 돋지 않는다. 

 

칠면초뿐일까. 순천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염습지가 발달한 지역이다. 16과 40여종의 염생식물 중 15종 가량이 발견된다. 들국화를 닮은 갯개미취, 쑥 모양의 비쑥, 갯질경이, 나문재, 해홍나물, 퉁퉁마디 등이 자란다. 

 

칠면초 군락에 들어서자마자 발이 푹푹 빠졌다. 게들이 발길을 피해 바쁘게 움직였다. 이따금 고라니며 너구리 발자국도 발견된다고 한다. 열 걸음쯤 딛자 신발은 뻘투성이가 됐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순천만 갯벌은 ‘체험학습’이 불가능할 만큼 질다. 어른 가슴높이까지 빠진다. 주민들은 “예전에 보성만으로 침투하던 간첩이 갯벌에 빠져 결국 익사한 채로 발견된 적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어민들은 널판지에 한쪽 무릎을 괴고, 다른쪽 다리로 바닥을 밀어서 전진하는 ‘널’(뻘차)을 타고 바다로 나간다. 널에 얹은 소쿠리에는 갯벌에서 캐낸 꼬막이며 맛조개가 들어있다. 여자들이 널을 타고 나간 동안, 남자들은 긴 막대기 끝에 갈고리를 달아 짱뚱어를 낚는다. 겨울잠을 자는 짱뚱어는 가을 한철 양껏 먹어 체력을 불린다. 봄부터 가을까지 낚지만 가을에 가장 맛이 좋다. 

 

갯벌에 물이 들어온다. 순천 시내를 따라 내려온 동천의 민물이 바닷물과 섞인다. 갯벌의 플랑크톤은 강물 따라 흘러온 하수를 정화하고, 탄수화물을 생성해낸다. 물을 따라 올라온 치어들은 갯벌의 플랑크톤이나 칠면초에 붙은 곤충을 먹고 자란다. 어린 물고기는 어른 물고기가 되고, 사람들은 물고기를 먹고, 다시 하수를 흘러보낸다. 하수 속의 유기물은 강을 타고 내려와 갈대와 칠면초를 살찌운다. 1㎠에 분포하는 갯벌의 규조류가 10억마리로 육지 옥토의 2배라는 숫자도, 갯벌의 생산성이 뭍의 3.25배라는 계산도, 이 생명의 순환 앞에서는 무력하다. 

 

98년 골재 채취작업이 중단되면서 순천만엔 숨통이 틔었다. 강의 하구는 죄다 댐으로 가로막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연안습지의 원형이 남아있는 지역’이 됐다. 교란의 흔적은 남았으되, 꾸준히 넓어지고 있는 칠면초와 갈대밭. 자연의 상형문자는 ‘생명의 순환’을 가르치려는 것이었을까. 

 

〈순천|글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훌쩍 떠난다]부딪칠 때마다 파드득, 푸른 갈대 순천만은 넓다. 해안선만 35.8㎞. 풍경 좋은 포구들이 곳곳에 박혀 있어, 순천만 만을 둘러본다고 해도 꼬박 하루를 잡아야 한다. 대대포구를 중심으로 화포, 와온을 차례로 둘러보고 순천만 자연생태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코스를 잡으면 된다. 

 

◇대대포구 갈대밭=대대포구는 갈대포구다. 순천만 전체에서도 갈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8월 대대포구에서 용산 전망대까지 나무데크가 놓이면서 갈대밭 접근이 쉬워졌다. 갈대밭을 휘감아도는 산책로는 0.8㎞. 대부분 산책로 끝에서 되돌아가는데, 순천만까지 왔다면 용산 전망대는 필수코스다.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린다. 처음은 가파른 계단길이지만 계단만 끝나면 평탄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용산 전망대에서 무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농주리 칠면초 군락지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갈대는 한때 대대마을 사람들의 수입원이었다. 갈대를 말려 빗자루와 김발을 만들어 팔았고, 땔감으로도 썼다. 만조 때 물 위로 떠오르는 갈대 부스러기들을 ‘이삭줍기’할 정도였다. 더이상 갈대 제품을 만들어 팔지 않으면서 갈대가 무성하게 불어났다. 1995년 15만평이던 갈대숲은 현재 70만평에 이른다. 늦가을 은빛 꽃을 피운 갈대도 아름답지만, 부딪칠 때마다 파드득, 날갯짓 같은 소리를 내는 푸른 갈대도 좋다. 

 

갈대밭 선상투어도 가능하다. 대대포구에서 출발, 물길을 따라 와온해변까지 다녀오는 30분 코스다. 1인 5,000원. 6명 이상이 모여야 출발한다. 자전거를 타고 대대포구 주변 둑길을 둘러볼 수도 있다. 자전거 대여료 1시간 3,000원. 대대포구는 순천 출신 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무대이기도 하다. 

 

◇순천만 자연생태관=대대포구 입구의 자연생태관은 갯벌의 생태와 순천만에 서식하는 조류 정보를 모아놓은 곳이다. 2004년 11월 개관했다. 아기자기한 체험 시설이 많아 아이들을 데리고 둘러볼만하다. 

 

1층에는 순천만의 대표 조류인 흑두루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CCTV를 이용해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용산 전망대에서 보던 풍경이 CCTV를 통해 화면에 고스란히 옮겨진다. 컴퓨터로 순천만 생태 퀴즈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2층에서 보는 순천만 영상물이다. 180도 곡면 스크린으로 순천만의 사계(四季)를 8분 동안 보여준다. 짱뚱어, 흑두루미, 뻘차를 타고 조업나가는 어민들 등이 담겨 있다. 영상물 상영이 끝나면 광섬유 갈대쇼(5분)가 시작된다. 

 

2층 바닥 한편에는 갯벌 모형을 만들고 유리판을 깔아, 갯벌 위를 직접 걸어보며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흑두루미, 큰올빼미 등 조류 박제, 알 모양의 조류 알 전시장 등도 만들어져 있다. 어린이들이 읽기엔 설명이 다소 딱딱한 것이 아쉽다.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성인 2,000원, 어린이 500원. (061)749-3006 

 

◇와온해변 일몰=와온해변은 순천만은 물론 남해에서도 손꼽히는 일몰 조망지다. 호수같은 바다에 떠 있는 솔섬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좁고 구불구불한 물길이 금빛으로 물드는 풍경이 아름답다. 

 

솔섬은 학이 납작하게 엎드린 모양이라고 해서 ‘학섬’이라고도 부르고, 밥상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상섬’이라고도 한다. 순천만 사진을 찍는 사진가 박인수씨는 “예전엔 솔섬 안에 주막이 있어서, 뻘차를 타고 조업나간 어민들이 목을 축이고 돌아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솔섬 앞에도 칠면초가 가득했다는데,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와온해변은 사진찍기 좋은 곳이다. 꼬막을 캐려고 널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어민들, 낚싯대를 드리우고 짱뚱어를 낚는 사람들…. 풍경은 그림처럼 평화롭다. 순천시내에서 17번 국도 여수 방향으로 달리다 월전4거리에서 863번 지방도로로 갈아탄 뒤 15분가량 직진하면 와온해변 이정표가 나온다.  

 

▶가서 보고 즐기는 법 

 

▲교통 

 

서울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간 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서순천IC를 이용한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3거리에서 순천 방향으로 좌회전, 22번 국도로 갈아타고 직진한 뒤 청암대 앞 4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대대포구로 이어진다. 

 

해룡면 농주리 칠면초 군락지로 가려면 순천시내에서 여수 방향 17번 국도를 탄다. 월전 4거리에서 왼편 순천농수산물도매시장을 확인한 뒤 우회전, 들어오자마자 바로 건물을 끼고 돌아나오면 863번 지방도로 상봉 방향을 타게 된다. 10분 정도 달리다 왼편으로 농주마을 버스정류장이 나오면 오른쪽 농주길로 들어선다. 포장도로가 끊기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새우양식장이 나온다. 새우양식장 앞에서 왼쪽길로 들어가면 칠면초 군락지다. 대대포구 산책로가 놓이기 전까지 새우양식장 옆 옛 오리농장이 용산 전망대 입구였다. 전망대까지 좁고 가파른 산길로 15분 정도 걸린다. 

 

▲먹거리 

 

대대포구 앞에 식당이 몰려 있다. 장어구이, 짱뚱어탕 등을 판다. 강변장어구이(061-742-4233)는 15년째 영업중인 대대포구의 터줏대감이다. 맛조개·꼬막·다시마·옥수수 등 입맛을 돋우는 전채가 먼저 나오고 장어죽, 장어구이가 차례로 나온다. 1인분 1만5천원. 식당 벽에 걸린 순천만 사진은 조순임 사장의 막내딸이 직접 찍은 작품들이다. 갈대회관(061-741-8431)은 짱뚱어탕을 대(大)자(3만원·4인분) 외에 1인분(7,000원)씩도 판다. 짱뚱어탕 맛은 추어탕과 비슷한데 국물이 더 진하다. 짱뚱어는 갯벌 위를 힘차게 뛰어다닌다고 해서 보양식으로도 인기가 좋다. 

 

▲연계 관광지 

 

순천 여행은 1박2일 이상은 잡아야 한다. 순천만 외에도 선암사, 송광사, 낙안읍성, 고인돌 공원 등 볼거리가 흩어져 있다. 

 

선암사는 현대식으로 크게 고친 흔적이 없는 아기자기한 사찰이다. 절 입구의 무지개다리 승선교와 강선루, 문화재로 지정된 해우소, 수령 600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 등이 볼거리다. 송광사는 국사 16명을 배출한 승보사찰. 지눌, 진각 등 역대 국사의 영정을 봉안한 국사전, 천자암의 쌍향수 등이 유명하다. 2박3일 이상이라면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8.7㎞의 조계산 산행도 해볼 만하다. 송광사에서 출발해 선암사로 넘어오는 편이 수월하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마을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민속마을이다. 동헌·객사·주막 등이 남아있고, 100여가구가 지금도 생활하고 있다. 조선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기존의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지었다. 입장료 성인 2,000원, 어린이 500원. 주암호반의 고인돌 공원에는 고인돌 140여기와 움집·선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순천시 문화관광과 (061)749-3328  

 

〈순천|글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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