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이 시대 남편들의 우울한 자화상 <우아한 세계>

이주연 |2007.04.11 01:15
조회 825 |추천 2


 

 

송강호 하면..... 하나의 광고가 떠오른다.


청소기 돌려달라는 아내의 목소리에
발로 청소기의 위치를 한바퀴 돌려놓고,
빨래 개 주라는 말에 수건을 들어 정말 "개"에게 던져주던 광고.

 

제법 많은 영화에 출연을 했지만,
송강호는 대부분 넘버3의 재떨이에서
몇발자국 벗어나 있지 않은 모습이다.

 

내 기억속에 언뜻 떠오르는
괴물, 살인의 추억, 반칙왕, 조용한 가족까지
송강호는 어딘가 살짝 빈듯한
그래서 더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오늘 본 "우아한 세계"에서도
송강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늘어진 런닝셔츠에 트렁크 팬티를 입은
가장의 모습을 선보여준다.

 

그 후줄그레한 모양새가 어쩐지 익숙하다.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니, 소파에 누워 있는
내 남편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직업이 조직폭력배건, 회사원이건 그 무엇이건간에
모든 남편들, 아빠들의 자세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나 싶다.

 


 

시계바늘 돌듯, 출근하고 일하고,
상사 눈치보고, 밥과 욕을 함께 먹고,
퇴근길에 술마시고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집에 돌아오면
마누라는 반가운 목소리로 청구서를 읊는다.

 

애들 과외비가 올랐네,
어느 집엔 소파를 바꿨네,
이번달 가계부가 또 빵꾸가 났네.
우리는 언제 집을 살꺼며,
언제 리모델링을 할꺼며,
냉장고도 바꿔야하고....... 주저리주저리.

 

손에 리모컨을 쥐고 텔레비젼을 응시한 채
무심한 듯 아내의 목소리를 들어넘기며
하루를 마감한다.

 

이따금 친구들이나 모임이 있어
근사한 식당에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식당에 나가 앉아보면
전후좌우 사방이 아줌마들로 그득하다.

 

점심시간,
그런 멋진 장소에 나와 밥을 먹는 남자들은
거의 눈에 띄질 않는다.

 

멋진 풍경과 맛난 밥을 먹으면서
"이땅의 남편들이 참 불쌍하다"고 느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우아한 세계는
밖에서는 돈버는 기계로,
집에 돌아와서는 자상한 아빠로,
마누라에게는 다정한 남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의 남자들이 한없이 가여워지는 영화다.

 

안쓰럽고 불행한 요즘 남편들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바라보며
그 시간 회사에서 뺑이 치고 있을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다.

 

남들보다 더 하지는 못해도
남들 만큼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지금도 200% 엔진을 돌리고 있을 남편을
과부하 걸릴 만큼 갈아마시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스트레스 만땅에
적성과 취미에 맞지 않는 일일지라도
자식의 공부를 중단할 수 없기에,
좀 더 우아한 생활을 포기할 수 없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현재의 일에 올인해야 하는
가장들이 안쓰러워졌다.

 

"스윗홈"을 그저 하숙집처럼 들어와 잠자고,
씻고 또 나가는 생활을 반복하는
우리 남편의 지친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싶어졌다.

 

.
.
.
.
.

 


 

추신 1.
 
급 반성모드가 무색하게스리
좀 아까 퇴근해 들어온 남편의 얼굴에
제버릇 개 못주고 따따부따 해버렸다.


 

오늘 또 누구랑 한잔하고 온거냐고.

집 밖을 나서면 애들이랑 나는 안중에도 없냐고,

나가면 연락 두절이라고....

휴대폰은 왜 자꾸 씹냐고 떠들어줬다.

 

그리고 연타석 잔소리를 날려주었다.
발 닦고 누워라, 양말 좀 뒤집어 벗지 마라.
밤늦게 무슨 야식을 먹겠다고 그러냐.
드라마 보고 있는데 딴데 좀 돌리지 마라....

 

한바탕 떠들고 나니,
오전에 영화보면서 느꼈던 측은지심이
마음 저 구석에 처박혀 울고 있다.

 

추신 2.

 

아주아주 오래전 잠시나마 우울했던 적이 있었다.
시댁에 들어가 살때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우울증에 짓눌려
딱 돌아가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버렸다.

 

분연히 일어나 가장 예쁘지 않은(!!!)
유리컵 5개를 골랐다.

(내 컵이 아니니까. 시엄마 컵이니까~)


그리곤 씽크대에 시원하게 던져버렸다.
쨍그랑,  쨍그랑.
속이 다 후련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가 집어던진 그 유리컵들을 치우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게 뭐하자는 시츄에이션?

 

그 뒤로 다시는 그따위 행위를 하지 않았다.

 

기러기 아빠가 된 강인구가 라면을 먹다말고
그릇을 집어던졌다가 이내 걸래를 집어들고
산산조각난 그릇 파편을 치울때
아마 강인구도 생각했을껄?


 

이게 뭐하자는 시츄에이션?

 

추신 3.

 

캐나다 유학가 있는 아들 계속 공부시키고
햇볕 잘 드는 널찍한 전원주택에서
따뜻한 물, 시원한 물 펑펑 나오고
마당에서 바베큐 파티를 벌이며 살고 싶었던
강인구.

 

그런데,
그 생활 청산하면 그런집에서 절대로 못산다.
내가 장담한다.


 

그냥..... 계속 그 직업 유지해야 가능한 일일껄?

 

 


 

추신 4.

 

비열한 거리에서 중간보스.

열혈남아에서 또 중간보스.

이번에 우아한 세계에서 또또 중간보스.

 

이 배우의 이름이 윤제문이란다.

아주 인상깊은 중간보스 연기.

제대로 단골이다....

 

다음에는 중간 하지 말고

높은 보스 하시기를.

 

추신 5.

 

우아한 세계를 보며
전혀 우아하지 않은 강인구의 인생을 보며
이 화창한 봄날에
무척 우울해졌다.

 

지지고 볶고 허덕거리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이
내가 혹은 내 남편이 못난 탓일까?
아니면 나라탓일까?

 

"내탓이오" 하기는 싫고 "니탓이오" 해버리고 싶다.

우아하기는................. 개뿔!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