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캣. 사막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미어고양이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상부상조하는 의리파 동물로 유명하다. 처음에 책을 읽었을 땐 나와 기젤라에 대한 생각으로 미처 미어캣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조금은 멀뚱멀뚱한 표정의 미어캣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주인공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미어캣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엉뚱한 상상은 시작되었다.
딸아이와 단 둘이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행을 떠난 아빠는 왜 하필 밤마다 '여왕 기젤라'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혼자 세계 여행을 떠날 만큼 모험심 강하고 용감하며 무인도에서도 오히려 여왕 행세를 하는 당당하고 거만한 기젤라. 기젤라는 '나'를 포함해서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강한 요즘의 우리 아이들과 참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아빠는 분명 기젤라 이야기를 통해서 딸아이가 무엇인가 느끼기를 바랐을 것이다.
[여왕 기젤라]는 첫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여행을 떠나는 첫날, 환한 미소의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아빠를 비롯해서 창문 밖으로 배웅의 손길을 흔드는 엄마나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은 모두 궁금증만 잔뜩 불러일으킨 채 숨어 있다. 특히 창문 뒤 그림자로만 묘사된 형제들의 모습(웬지 자꾸만 미어캣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0^)은 우리네 정서상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방학을 맞아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가족 여행도 아니고 일곱 명이라는 대가족에서 달랑 둘만, 그것도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내어 여행을 떠날 때에는 분명 이유가 있게 마련일테니까. - 그것이 어떤 이유이든지간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 아빠와 나의 모습은 무척 한가롭고 평안해 보인다. 아빠와 나의 여행은 단 하루, 첫날 일정만 그려져 있지만 돌아오는 날까지 하루하루 비슷한 시간들을 보냈으리라 짐작된다. 특별한 사건이 있다면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밤마다 끊임없이 이어졌던 '여왕 기젤라'이야기. 하지만 집에서도 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이것 역시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아빠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방법으로 딸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깨달음을 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젤라가 도착한 무인도에는 미어캣들이 살고 있었다. 그림책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니 정말 미어캣의 묘사가 탁월했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동작 하나 하나를 어쩌면 이렇게 특징적으로 잘 그려내었는지 아마도 작가는 미어캣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했던 게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어캣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미어캣은 꼭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공동체의식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기젤라에게 복종하던 미어캣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기젤라의 무리한 요구에 합심해서 쫓아내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미어캣의 저주로 영원히 바다를 떠돌게 되는 기젤라의 운명이라니...
이렇게 해서 여행의 마지막 밤, 드디어 이야기가 끝이 났다.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나는 이 한 마디만 했지만 분명 마음속에선 많은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한밤중에 깨어나서 바다를 보았다는 것을 보면 - 그리고 그 바다 한가운데서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기젤라를 만난 것을 보면. 다음날 아침, 떠날 때와는 달리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표정은 환하게 반사된 자동차 유리창에 가려져 있지만 반갑게 흔드는 손을 통해서 마음의 키가 한 뼘 더 자라서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미어캣 같은 남자형제들과도 앞으로는 지혜롭게 잘 지낼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