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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貞탐정 장구지 삽으로 "술잔이 비워지지 않

최장욱 |2007.04.24 10:09
조회 41 |추천 0

  探貞탐정 장구지 삽으로

 "술잔이 비워지지 않는 사이에..."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축축한 빛깔의 어둠이 세상을 엄습하기 전에 나는 일과를 끝낸다. 성과 없는 하루다. 언제나 그랬듯이 세상은 나의 발걸음에 맞춰 후퇴하는 것만 같다. 하늘을 향해 조심스레 연기를 내뱉는다. 동정심 없는 담배 연기가 황혼을 부드럽게 애무한다. 나는 반쯤 타다 만 담배를 비벼 끄고는 이미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발을 힘겹게 끌며 익숙한 잿빛 보금자리로 몸을 돌렸다.

  어느덧 땅거미가 짙게 깔렸다. 음울한 나의 암굴은 전날 내린 비에 지쳐버린 듯  비명조차 포기한 것처럼 고요하다. 입구 옆에 아무렇게나 놓인 네온간판이 빛꽃을 튀기며 나를 맞는다. 옆 건물에 위치한 바의 간판이다.  돌아오는 나를 맞아주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곳의 마담을 본지도 오래됐다. 피곤하지만 바에 잠깐 들려보기로 할까.

  딸랑. 문을 열자 작은 종들이 가벼운 소리를 내어 나를 맞는다.

  세피아 색조의 인테리어가 가슴을 따뜻하게 덮힌다. 아담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바다. 그리운 알콜의 그윽한 향기가 영혼을 감싸는 것 같다.

  "어머, 장구지씨, 오랜만이네요."

  마담이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한다. 그녀는 이 바의 오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왠지 모를 성숙함이 말투나 행동에 배어 있어, 앳된 얼굴과는 언밸런스한 묘한 매력이 묻어 나온다. 덧붙이자면 과거를 의심케 하는 풍성한 몸매 또한 그녀의 매력 포인트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몸매를 두고 '마담의 조건'이라고 주장하곤 했었다. 앳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얼굴 뿐이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으며 미소로 답해 주었다. 사실 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장구지 씨도 참..." 마담은 수줍게 웃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항상 마시던 걸로..."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잔을 내왔다.

  "젓지 않고 흔들어서였죠?" 

  역시 마담이다. 까뮤, 내가 사랑하는 술. 나의 까다로운 취향을 이해 해 주는 것은 이 거리에서 이 마담이 유일할 것이다. 내가 이 바로의 발길을 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심스레 술을 한모금 흘려 넣는다. 나는 목을 타고 흘러가는 이 아찔함으로 매일을 단련한다. 일과 후의 이 단련이 내 지친 영혼을 무디게 만들어 준다. 마담이 만들어 준 술 한잔과 아리랑 담배 한갑이 내 영혼의 하루치 식량이다. 영혼을 마모시키며 세상을, 이 비열한 거리를 유유히 견뎌내고 살아남게 해 주는.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알콜과 니코틴이 영혼을 깊숙히 적신다.

  마담이 나를 물끄럼이 바라본다. 눈은 은은하게 웃고 있다. 저 미소에 반한 남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마담?"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으신가요...?"

  "그럴리가."

  나는 잔을 살짝 흔들며 대답했다. 보석처럼 투명한 얼음들이 잘그락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외로워 보여요....장구지 씨......"

  마담의 눈동자가 젖어 있다. 마담의 태도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느껴진다. 너무 오랜만에 와서일까? 

  마담은 아무말도 없이 나를 바라본다. 맑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피어 오르는 한줄기 담배 연기가 비쳐 보인다. 술에 취해서인지 그녀의 진하게 화장한 얼굴조차도 영혼만큼이나 순수하게 보인다. 윤기나는 머리칼, 살아 있는 듯한 옷매무새, 생동감 넘치는 몸매... 그녀는 여느 때보다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장구지 씨.. 어째서 모르시는 거예요... 그렇게 매일 오시면서...."

  그녀는 여전히 촉촉한 눈동자를 한 채로, 이젠 내 팔에 매달려서 애원하다시피 한다. 설마, 마담이......! 나를......!

  "마담...! 나는...!"

  손에서 땀이 삐질삐질 난다. 결국 잔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유리잔의 날카로운 비명이 미묘한 정적을 몰고 온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자.

  "이만 가보지... 잔은 미안하군..." 나는 겉옷을 주섬주섬 챙긴다.

  "...장구지 씨...! 이대로 가시면...! 장구지 씨...!"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자 그녀가 뒤에서 울부짖는다. 가슴이 몹시 아프다. 심장이 흐느끼고 있는 것만 같다. 가게의 세피아 색조가 슬퍼 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담... 계산은 달아두게......"

  "...진구지 씨......달아두라니요?...도대체 어디에...?" 

  ".... 마담의 추억 저 편에......"

  "...그런... 또...! 또...! 또...!

  "...마담......! ...그리고 키핑 부탁해...!"

  "이런 XXXXXX야!!!"

  나는 오열하는 그녀를 버려둔 채 신속히 가게를 빠져 나왔다. 신선한 바람이 뇌를 차갑게 식혀 준다. 이제 당분간 저 곳은 가지 말아야 겠다. 훗.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어. 그녀는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나 보다.

  하루가 저물고 있다. 아리랑도 다 떨어졌다. 슬픔에 가득찬 마담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더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난 탐정 '장구지 삽으로'니까. 하드보일드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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