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국회에 정치관계법 제·개정특위를 만들기로 합의했으나, 한나라당이 개정을 추진 중인 정치관계법안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도록 한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당사자인 교원노조의 대변인은 “공무원·교사의 정당 가입 등 정치활동까지 허용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구시대적 법안”이라고 말했으며, 양형일 통합신당모임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려든다”고 비난했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1995.11.25. 헌재는 노조의 정치활동 등을 금지한 [(구)노동조합법] 제12조,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10조, 제81조, 제87조 등이 표현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 단결권,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하여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고, 그로부터 노동조합법이 폐지되고 새로 만들어진 [노동조합 및 쟁의관계조정법]에서는 정치활동 금지조항이 삭제되었다.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 역시 이러한 취지에서 벗어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법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까 밤낮으로 고민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겨우 1당 된지가 언제라고 벌써부터 법을 재단하려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입법부인 국회를 대표하고 선도해야할 제1당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발상임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러한 위헌적 발상이 왜 나오게 됐는지를 생각게 하는 일이 또한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전국언론노조가 횡령과 예산 불법 집행 등으로 조합원 회비 4억8000만원을 멋대로 써버렸다며 신임 집행부가 전임 집행부를 고발할 지경에 이른 사건이 바로 지나친 정치활동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중 노조 간부가 횡령했다는 3억3000만원은 제외하더라도 증빙서류나 결재 없이 집행됐다는 1억5000만원 가운데 수천만 원의 대부분이 민노당 의원 후원금으로 처리돼 있는데, 민노당 측은 받았다는 사람조차 없다니 전형적인 배달사고든가 아니면 정치헌금을 빙자하여 분식회계 처리한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2000년 말 ‘언론개혁운동’을 내세우며 출범한 민노총 소속 산별 노조인 언론노조는 산하 125개 언론·출판사 지부들이 한 해 12억 원씩 내는 조합비로 운영되는 중소기업 규모 이상의 매출액을 가진 조합이다. 출범 이후 계속 언론기관의 도덕성과 투명성, 언론인의 자정을 내세워 정치활동을 해오면서 안으로는 조합비 횡령과 예산 불법 집행 등 부도덕한 행태를 예삿일처럼 저질러 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요 근래 중앙단위 또는 산별, 기업단위의 노조들이 유사한 비위에 연루되어 노동운동의 도덕성에 심대한 위해를 가했지만, 이처럼 정치권과 연계된(?) 비리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노동운동 전체를 파장으로 몰고 갈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노조의 으뜸가는 존재 이유는 조합원의 임금·근로조건 개선과 고용안정 같은 권익 향상이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 정치활동은 헌법상 권리로서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언론노조를 말하기 전에 한국노총부터 그 태생을 정치적 목적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노정관계라는 말이 노사관계라는 말보다 더 우리들에게 친숙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만치 법률상 금지했던 정치활동을 허용한 만큼 노정관계라는 이유단계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의무도 가져야 함에도 언론노조를 위시한 많은 정치 지향적 노조들이 지금껏 이런 자신의 존재 이유에 걸맞게 행동해 온 적이 거의 없다. 주제에 같은 NGO랍시고 짝퉁 시민단체와 짝짝쿵이 되어, 같은 좌파랍시고 정권과도 눈이 맞아 불륜에 가까운 노정관계를 이용하여 좌파적 정치구호를 강요하고 그런 좌파적 잣대로 사회를 매도하는 일에 열중해 왔던 것이 어찌 언론노조 뿐이겠는가?
특히 언론노조의 경우는 그 도가 상궤를 넘은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언론민주화라는 미명하에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들에 비판을 집중시키면서 정권의 외곽단체들과 함께 신문악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앞장섰으니 스스로 언론자유를 말살시키는 트로이 목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전임 노조 집행부가 행방불명된 돈의 사용처와 관련해 민노당에 정치 후원금으로 줬다며 후임 집행부가 고발한 이면에 이런 노선갈등의 소지는 없었는지도 궁금하지만, 외형상으로는 언론노조가 본업인 조합원 복지는 외면하고 얼마나 정치에만 곁눈을 팔아 왔는가를 증명하는 일이기에 그 자체로도 노조운동의 위기에 대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노정유착은 노조만의 짝사랑은 아닐 것이고, 어찌 보면 정치권의 선제적 녹화사업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사실은 한국노총도 그랬으니 역사도 깊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해 11월 여의도의 [꿈](ゆめ)이라는 음식점에서 KBS에 관리자노조를 식재함으로써 현 [정빠노조]를 무용지물화 시키고 대선정국의 돌파구로 삼자며 일장춘몽을 꾸다 뒤통수에 불이 났던 한나라당 유승민의원과 방송위원 강동순 등이 나눈 뒷담화 녹취사건일 것이다.
그 녹취록을 보면 여러 가지 노사관계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들이 나온다.
첫째,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노조위원장 선거 불법개입(?)이다. 지금 국회의원 몇 분 당선되는 것보다 KBS 노조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현 노조위원장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반 노무현이다, 그래서 그걸 당선시켰는데, 어떻게 당선시켰냐면 KBS 관현악단하고 국악단 관현악단도 노조 쪽 조합원이어서 그 쪽을 통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둘째, 한나라당이 그렇게 비난해 마지않던 시민단체와 노조와의 연대 주장도 나온다.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에 가기로 한 거 잘 했다면서 KBS 노조와의 연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셋째, 현 노조에 위협적인 관리직 노조 설립을 방해하기 위한 정부측의 초법적 권한남용, 사법부의 방조, 노사간 불법 제휴에 대한 비난과 함께 관리직 노조 출범을 돕기 위한 자신들도 불법적 개입을 한 얘기도 나온다. 선거방송 모니터링을 위해 KAL의 파일럿 노조같은 관리직 노조를 만들었는데, 지방노동사무소가 기각했고, 행정심판위가 반려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정소송을 이겼더니 노동부가 또 항소를 해버려서 지금 고법에 가 있는데 재판 일정을 안 잡는다는 얘기였다. 그게 지금 저기 고법에서 이기면 이제 내년 선거 때 아마 큰 일을 할 거 같은데, 노사가 담합하여 계속 끌면서 단체협약 갱신할 때 그 조항(관리직 노조제외 조항)을 빼버리면 노동조합법상의 복수노조 금지조항에 걸려 지게 되니 유승민 의원더러 고법에 압박을 가하라는 얘기였다. 관리자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방송이 하도 개판이니까 언론플레이를 하려는 것이며 이름도 [KBS 공정방송 노동조합]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이처럼 노조의 정치활동은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우리나라의 노조는 그 태생단계부터 노정관계의 단물을 얻어먹는 대신 사실상 그 권리를 포기한 특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불륜적 노정관계가 반드시 노조의 주도에 의한 것이 아님은 원조교제가 청소년의 잘못이 아님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역대 정권의 반인권적 노동정책에 협조한 어용노조에 대해 권리포기 댓가 이상의 부당 이득을 제공해온 일면 Win-Win적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노조의 정치활동이 전면 보장되고 있음에도 과거의 이러한 불륜의 달콤함에 눈이 먼 언론노조가 있고, 그것을 빌미로 노조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노조와 시민단체를 연결시키고 노조선거나 단협에 개입하는 정치공작이 여당은 물론 야당에 의해서조차 시도되고 있는가 하면, 노조의 정치활동을 다시 금지시키겠다는 어거지 발상이 야당에서 나오고 있으니 자율적 노사관계는 그저 요원해 보인다. 이번에 언론노조의 내부 부정과 비리를 남김없이 밝혀내는 것을 계기로, 노동조합은 정치·이념 운동에서 본연의 노동운동으로 돌아감으로써 그러한 불륜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舊노동조합법 제12조(정치활동의 금지) ①노동조합은 공직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행위를 할 수 없다.
②노동조합은 조합원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징수할 수 없다.
③노동조합기금을 정치자금에 유용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