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사찰이나 만날 수 있는 전각의 이름을 중심으로 범어사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이젠 조금 더 들어가서 몇 가지만 더 살펴보고 범어사 공부를 마칠까합니다.
절 마당에 있는 삼층석탑은 일반적인 석탑과 법당을 이야기할 때 쓰는 일탑일금당(탑 하나에 대웅전 하나)이다, 쌍탑일금당(탑 둘에 대웅전 하나)이다 하는 양식에선 벗어나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탑이 가운데 와서 대웅전 앞에 있어야 할텐데 왜 동편으로 치우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추론은 원래는 탑이 둘이었는데 하나가 없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고, 원래 있던 하나를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도 해보는 겁니다. 이런 추측도 원래부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우리의 기존 상식을 모두 던져버려야겠지요.
이러한 특징은 영주 부석사와 합천 해인사 등 화엄도량에 현존하는 석탑이 본존의 정면을 비켜서 건립되어 있는 점과 일치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라도 명확한 이유를 알 길이 없답니다. 다만 화엄교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인데 어떤 이들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원래 오른쪽을 더 높이 친다면서 그러니 탑이 하나일 때는 오른쪽을 높여 그곳에만 탑을 세운다는 쓸데없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하는데요, 그건 아닌 듯 합니다.
아마도 이런 우리의 기존 상식에 부합하기 위하여 칠층석탑을 세웠는지도 모릅니다. 그 자리가 지금의 지장전이 있던 자리라니 칠층석탑과 삼층석탑을 좌우에 놓으면 쌍탑일금당이 되는가요? 지금은 칠층석탑이 성보박물관 자리로 옮겼답니다. 풀 수 없는 의문점으로 갑갑하지만 탑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석탑은 신라 흥덕왕(826∼836, 재위) 때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2중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랍니다. 하층기단은 각 면에 撑柱(탱주-가운데 기둥) 없이 3구씩의 眼象(안상-안 그림)을 조각하였고, 상층기단은 가운데 돌을 높게 하고 각 面石(면석)에 꽉 들어차게 안상을 조각하여 그 수법이 특이하지요. 1층 塔身(탑신-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의 탑신은 매우 작게 줄었으며, 屋蓋石(옥개석-지붕돌)은 추녀가 수평을 이루나 옥개받침은 4단으로 되었고 평평하고 얇아 신라 하대의 양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상륜부는 露盤(노반)과 후대에 보충한 보주만이 있을 뿐 다른 부분은 없어졌답니다.
기단은 원래 2층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크게 수리하는 과정에 기단 아랫부분에 또 하나의 기단이 마련되어 마치 3층 기단처럼 보이는데 새로이 추가된 이 기단의 면석은 갓기둥과 3줄로 안기둥이 모각되었으며, 2층 기단 보다 훨씬 높게 조성되어 탑의 전체적인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지요. 기단 주변의 돌난간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랍니다.(지장전 앞쪽의 난간도 일제 강점기 때 만든 것이라 영 눈에 거슬리네요.)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좀 뒤떨어지나 단단한 모습을 보여준 탑으로 국보 250호 지정되었으며 그 높이는 약 4m 정도랍니다.
탑과 마주보는 쪽에 석등이 있습니다. 팔각원당형으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양식을 띄고 있습니다.
의상스님이 삼층석탑을 건립한 3년 후인 문무왕 18년(678년)에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온답니다. 석등 또한 金堂(금당-대웅전)이나 탑 앞에 놓이는데, 이 석등도 원래는 龍華殿(용화전) 앞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지금 석등이 있는 자리에 있던 鐘樓(종루)를 옮기고, 지금의 자리에 세운 것이랍니다.
후대에 여러 번 보수를 했는지 제 짝이 아닌 부재들로 연결되어 보는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 석등이랍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어떻게 불을 밝혔겠느냐며 묻기도 하는데, 석등의 화사석 네 곳에 난 火窓(화창)을 보면 주위에 음각선의 틀이 마련되고, 그 곳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화창이 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창문을 닫아 놓으면 어지간한 바람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답니다.
이것만 살펴본데도 좋은 공부가 됐을 겁니다.
범어사에는 군데군데 바위에다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관광지나 명소에 이름 새기기 정말 좋아하잖아요. 절 입구 어산교 근처의 이름들은 범어사가 여러 가지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시기에 각자 염출하여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많고요, 그 중에는 성월당 스님의 革新梵魚寺(혁신범어사)란 말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범어사를 혁신하자는 말이지요. ‘革新’(혁신)이란 낡고 오래된 구습들을 타파하자는 말이니 요즘엔들 꼭 통할 수 있는 말이지요.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망하리라. 낡은 생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납시다. 밝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갑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지요.
지장전 옆에 있는 바위엔 이름들이 많이 있는데, 그건 동래부사를 지내신 분들이 범어사에 들렀다가 새겨 논 이름들이 더러 보이네요. 동래부사가 되어 폼이 좀 났을까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새겨놓아 평생 욕을 얻어먹게 되었네요. 그런데 그 밑에다가 돈을 붙여보려고 하는 이들은 무엇을 위하여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요? 좀 안타까워 보입니다.
범어사의 부도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일주문 옆으로 원효암 가는 쪽으로 가다가 바위를 건너서 숲속으로 가면 30기의 부도가 3열로 줄지어 서있고, 그 아래에 2기의 부도가 더 있답니다. 부도란 스님들의 몸이지요. 그래서 승탑이라고도 합니다. 스님들은 돌아가시면 화장을 하고 그 몸에서 나온 사리를 중심으로 부도에 모신답니다. 탑은 부처님의 몸이고요. 부도가 많고 당당하다는 것은 그 절의 품격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시간이 나시면 여기까지 한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큰 일이 났습니다. 범어사를 다 둘러보지도 못했는데 원고 마감을 알리는 메일이 옵니다. 빨리 보내야겠네요. 아직도 해야 할 말들은 많은데 숨 좀 고르겠습니다. 미진한 부분은 다음에 금정산 부분에서 더 공부해봅시다.
그럼 다음 만날 때까지 모두들 건강하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