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포 선라이즈' 보다 '비포 선셋'을 9배쯤은 더 좋아하는데 이유는 자질구레하게 9개쯤 된다.
아직은 세상물정모르는 철모르는 낭만청년의 에단호크, 줄리델피의 모습보다 세상사 겪을대로 겪어서 나름 농익은 인생관과 사랑에 대한 두 사람의 감성이 더 좋고, 자신의 삶에 대해 더 여유로워진 모습이 좋다. 빈의 풍경보다 해질녘쯤의 파리의 강변과 도시속 작은 골목길, 카페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들고 줄리델피도 왠지모르게 비포선셋에서 훨씬 아름다운것 같다. 런닝타임과 영화 속 시간진행이 동일한것도 좋고, 영화 마지막즈음 직접 줄리델피가 기타치면서 노래를 불러주거나 니나시몬의 음악에 맞춰 혼자 춤을 추는 장면도 좋다.
무엇보다 9년만에 만난사람들 답지 않게 끊임없이 나누는 대화의 양도 놀라운데 그 대화도 무척 자연스럽고 가벼운 농담과 진지한 토론을 오가며 서로에 대한 묘한 마음까지 드러내는 걸 보고 있노라면 보는 사람도 참 흥미롭다. 그런면에선 비포선셋을 다시 보게 될 때 마다 가장 즐거운 건 두 사람 수다 엿듣기다.
이런게 가능했던 건 잘 알려졌다시피 감독과 두 배우간의 길고도 쿵짝이 잘 맞는 팀웍에서 나왔는데, 서로 끊임없이 이메일을 교환하고 같이 합숙생활을 마다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대사 하나하나를 고민하며 비포선셋의 시나리오를 같이 썼다고 한다. 영화제작에 셀 수 없는 돈이 들어가고 수많은 스타들이 모여들어 거대한 프로젝트로 운영되는 헐리우드 제작현실을 보자면 참으로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드는데, DVD에 잠깐 나오는 서플영상이나 스틸 컷 사진들을 보노라면 그들이 정말 얼마나 즐겁게 영화를 만들었는지 느껴져 나도 거기 몰래 쓰윽 끼어서 짐이라도 날르면서 같이 작업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까지 생길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