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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제 외교, ‘허리가 아닌 가슴’으로 풀어야

장헌 |2007.05.04 02:05
조회 62 |추천 1
 

한국의 국제 외교, ‘허리가 아닌 가슴’으로 풀어야



  당연히 가질 법한 의문 하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왜 6자 회담이 필요하지?’ 한국과 북한만 테이블에서 협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6자회담에는 한국과 북한을 비롯, 주변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같이 참여한다.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삼척동자도 알 것 같지만, 일단 인내력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한국은 대륙과 해양 세력인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으니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식으로 평이하고 허무하게 결론지어 버리지는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왜 그랬을까


  노무현은 지난 1월 ‘평화의 바다’ 발언으로 다시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것은 동해냐 일본해냐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그것을 갑자기 ‘평화의 바다’라고 불러보자는 생뚱맞은 제안이었다. 일본의 식민지시절에 쌓인 원한을 생각을 한다면 그리고 “다시는 일본의 영토 침탈만은 용서치 않겠다”는 국민의 정서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비판을 받을 만 하지만, 과연 노무현이 그것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그런 발언을 했을까.

  중국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동북공정’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닌 적은 이번 20세기밖에 없었는데, 21세기에 다시 우뚝 서려면 그들이 자신 있는 지난 세기의 역사 분야를 선택해 그들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이 사업의 희생양으로 한국이 선정된 것일까.

  한미 FTA 체결을 두고 여론이 분분하다. 『한겨레 21』은 그것을 두고 “종속적인 밀실 협상이고, 대다수 국민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라 하지만, 실제로 미국 측이 FTA를 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게 뻔한 미국을 향해 한국은 4대 선결 조건- 스크린쿼터 폐지 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 의약품 약가 재조정,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 을 내걸었기에 협상이 가능했다. 이렇게 한미 FTA협정은 시작할 때부터 불평등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측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절박함’은 무엇일까.


일본의 실리 외교 한국은 아직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국민 누구나 알고, 동일한 제목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본 극우파 인사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독도 발언은 계속 이어져 왔다. 일본 대사관에 가서 항의를 한다거나 일장기를 뜯는다거나 하는 것으로 그들의 태도가 바뀌리라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그들이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국제 정세에 자신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이 사설을 통해 대일감정을 부추길 때, 일본 인사들은 물밑 외교를 펴서 세계 외교 인사들에게 실제로 ‘독도가 일본 땅 일수도 있다’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들은 국제법상 독도가 그들의 영토임을 인정받기 원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청와대 입성 후 “나도 정치세계가 이렇게 복잡한지는 몰랐다”고 고백했는데, 그의 심중을 잘 살펴보면 ‘평화의 바다’ 발언은 일본의 외교 전략에 어느 정도 굴복한 것이 아닐까하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한국과 일본은 2002월드컵도 같이 개최하지 않았느냐, 둘의 위치가 그리 멀지는 않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축구 행사’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본을 꺾지 못한다면 현해탄을 건너지 마라”고 축구 경기를 하러 일본을 가는 선수단을 향해 말했던 이승만의 생각처럼 축구는 해방시절부터 ‘민족 이데올로기’를 발현하기 위한 대표적인 도구였고, 한일 양국의 괜스런 갈등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일본에서는 월드컵을 개최하기에 거의 모든 면에서 한국에 비해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FIFA 측과 타협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에게 한국은 경제‘만’ 그럭저럭


  “동북공정이 뭐냐? 고구려라는 이름은 못 들어봤다.”

   중국인의 이와 같은 발언처럼 중국 정부와 달리 중국 국민들은 한국 역사의 일부분을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게다가 중국 문서에서 엄연히 ‘고구려는 조선의 땅’이라고 써있고, 수나라, 당나라는 ‘고구려와 싸웠다’고 하니, 그들의 동북공정은 음모론 그 자체이다. 그런데 왜 이런 행위를 할까, 또 유독 한국한테만 그러할까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중국인들에게 한국 기업은 서구, 일본에 이어 제 3지망 외국계 기업으로 인지된다고 한다. 내가 만난 중국에서 온 한 유학생이 고백한 “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 비결을 배우러 왔다”는 말의 실상을 살펴보면 그들에게 한국은 “경제만 그럭저럭, 정치 문화는 글쎄”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 방송사가 하고 있는 ‘대조영, 주몽’과 같은 역사드라마를 통해 고구려, 발해사에 대한 새 조명도 그리 효과를 누리지는 못하는 듯 하고, 한류 열풍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족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존심을 건드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그들에게 벤치마킹 대상만 될 뿐이고, 한국은 그저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국 아래 동방예의지국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자주’가 현실이 될 수 있나


 한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대규모 파병을 하고, 미국 부시 대통령이 우방을 지목한 발언에서 소외당했다. 분명히 프랑스제 전투기가 한국 지형에 잘 맞고 경제적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의 반 강압에 의해 미국제 전투기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하이닉스 반도체에 부과한 57%의 관세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상황. 애초부터 미국에 대항하는 것은 이제 겨우 강소국에 진입한 한국으로서는 무리인 듯하다. 미국은 세계 경제 규모가 EU(유럽연합)와 맞먹고, 군사력 또한 세계 1위이다.『미국 VS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산에서 칼을 가진 자는 곰을 피할 방법을 찾지만 총을 가진 자는 곰을 찾아 제거할 방법을 생각 한다”면서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을 설명하기도 했다. IMF 구제 금융 사태 때 캉드쉬 총재보다 미국의 한 회원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니, 그리고 빅7 국가의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하니, 과연 한국이라고 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진보적인 인사 박노자(오슬로대 한국학 교수)도 “미국은 한국에 강도짓을 했으나 현실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적을 스승으로 삼지는 말아야 한다”고 한국의 한계를 지적한 바가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자주’를 노래했던 노무현도 취임 하고나서 바로 미국에 ‘문안인사 드리러’ 갈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가슴’ 지닌 국민으로


  반만년 역사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주도한 적은 한 번 도 없다. 송병락(서울대 명예교수)은 “세계의 주도권은 지중해, 대서양, 태평양으로 바뀌었으니 다음 차례는 동아시아이다”라고 희망을 전파했으나, 이는 학자 본연의 상상력의 산물이라 봐야 한다. 강우석(영화감독)은 영화 『한반도』에서 조선시대 고종 때 사라진 도장을 찾아낸다는 픽션까지 가미해 결국에 남북공조로 일본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용이 감정적이고 국수적이다”고 혹평을 받았지만, 한편으로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일본이 순순히 한국의 이권에 개입하지 않는다거나, 한국에 사과를 한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선시대『임진록』이 임진왜란을 한국의 승리로 조작한 것처럼, 강우석 역시 마찬가지 상상을 했을 듯하다. 언제부터인지 국가 지도자들은 한국의 미래를 GDP(국내총생산) 성장률로 제시했고, 매년 5% 이상의 꾸준한 성장률을 유지해 왔으니 한국의 미래가 그리 어둡진 않다고 하는 의견이 나오지만, 이면우(서울대 산업공학교수)는 “세계 어디에도 GDP로 한 국가의 발전을 축약하는 곳은 없다”고 반박했다. 대륙과 해양 세력인 주변 4강과의 협력 속에서의 발전인 듯하지만 여태까지 봐왔듯이 그 길이 순탄치는 않은 듯 하다. 재작년에 작고한 전 한겨레 논설위원 정운영(경기대 경제학교수)은 “주변 4강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게 한반도의 고단한 운명이지만 그래도 길을 모색해보자”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한겨레 21』 특파원 우수근(상하이 동화대학교수)은 한국인이 지닌 ‘특유의 정’에 기반 한 까치외교를 제안했다. 그것은 “강소국을 유지하되 문화면에서 두각을 보이며  주변 강국을 자극하지 말고, 그들에게 반가운 느낌을 주는 국가가 되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우수근의 말이 과연 경제적인 업적에 도취되어 있는 한국인에게 통할지는 모르겠다. 그 말은 마치 “욕심 없는 자세로 중립을 취하라”고 느껴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말을 요약하면 즉, ‘한국에는 주변 4강의 협력을 바탕으로 하고 신뢰를 쌓는 국제적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어 때마침 기회는 찾아왔다. 대구에서는 2011년에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인천에서는 2014년에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월드컵은 세계 축구 강국 32개국으로 참가국이 제한되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한국인의 ‘남을 돌 볼 줄 아는 온정문화와 질서의식’이 발현되기를 바란다. 1세기 전 대한제국 몇 명의 열사들은 헤이그에서 세계에 조선의 실상을 알리고자 하다가 결국 일제의 강압에 의해 무산 됐지만, 이제 자신감으로 가득 찬, 수를 헤아리기 힘든 국민들이 세계 사람들을 초대해 그때와는 다른 실상을 알리고자 한다. 그 실상이 1세기 전에는 ‘한국에 행사하는 일본의 국력’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국 스스로의 국력과 문화’가 되었다. 몇 십 년 전부터 한국은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며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허리를 졸라매면 몸통이 끊어질 지경이다. 아직도 온전히 남아있는 건 다름 아닌 ‘따뜻한 가슴’이다. 한국인 특유의 온정 문화가 외국인에게도 발현되어, 한국을 찾는 그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었으면 한다. 88올림픽의 ‘붉은 호랑이’ 2002 월드컵의 ‘붉은 악마’를 넘어서 ‘따뜻한 가슴, 피를 지닌 붉은 인간’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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