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 5.18민중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한국 최초의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결코 광주 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한 인물들이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 소녀는 항쟁당시 죽어가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살아남은 어린 생명이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부 소녀의 흑백 회상 신으로 표현되는데 나는 흑백의 차가움이 생생한 붉은 피보다 더 잔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됐던 그 기억은 그녀에게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그리고 상처로 남게 된다. 눈앞에서 엄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소녀는 엄마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앞에 나와 피를 흘리며 목소리를 높여야 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러한 비극적 기억들은 그녀를 정신 나간 미친 소녀로 변하게 했고, 하나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그때의 상처로 인한 고통을 느끼며 사는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 살아도 진정 살아있는 것이 아니며, 깨어있다 해도 그녀는 흑백화면의 악몽을 계속해서 꾸고 있다. 그녀의 생명은 그 악몽의 연장선 안에 있는 것이다.
소녀뿐만 아니라 ‘장씨’와 ‘우리’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장 씨의 경우 하급계층의 인물로서 그때의 항쟁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나 지식적인 판단조차도 하지 않은 인물이다. 장씨가 소녀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살아남은 자(방관한 자)들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후에 그녀를 돌보고 보살피는 행동은 그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씻어내려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우리’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민중항쟁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를 알면서도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하지 않는다. 그저 방관적인 자세로 그녀를 찾아 헤매는데 열중한다. 그 것으로 자신들의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짐작해 본다.
소녀의 경우 자신의 트라우마를 씻어내기 위해 ‘오빠’라는 인물에 집착한다. 오빠는 소녀가 찾아 헤매는 존재로, 의문사로 사망한 사회의 희생자이다. 소녀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함께한 존재이기도 하며, 정신이 온전치 않은 그녀가 유일하게 안정된 목소리로 그 날의 자신의 일을 고백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녀에게 오빠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소녀에게 근본적인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 소녀에게 있어 오빠는 엄마를 버려뒀다는 소녀의 무거운 죄책감과 고통을 내려놓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각자의 트라우마를 가진 채 살아가면서 무의식중에든 의식 중에든 그 트라우마를 씻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트라우마는 과연 치유될(된) 것인가? 안타깝게도 소녀의 유일한 위로였던 오빠는 이미 찾을 수 없는 죽은 인물이다. 오빠를 찾아 정처 없이 헤매지만 그녀에게는 결국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상처의 향연일 뿐이다. 그 쳇바퀴 안에 있는 소녀를 쫓는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소녀를 찾으려 애쓰지만 그녀가 남긴 흔적(상처)만을 발견하고 결국엔 찾지 못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혹시 찢어지고 때 묻은 치마폭 사이로 맨살이 행여 당신의 눈에 띄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 주십시오. 당신의 옷자락이나 팔꿈치를 잡아 당겨도 부드럽게 떼어 놓아 주십시오. 어느 날 그녀가 쫓아오거든 그녀를 무서워하지도 말고, 위협하는 말도 던지지 마십시오. 그저 관심 있게 보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 대사는 영화의 마지막 나레이션이다. 이 메시지는 말 그대로 이 여린 소녀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조금만 관심 있게 보듬어 달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아픈 과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장선우 감독의 마지막 부탁의 말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며 초라하고 가엾기만 ‘소녀’의 모습에 고스란히 나타난 역사의 상처에 모두 가슴 아파 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