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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피렌체

조춘화 |2007.05.09 09:04
조회 41 |추천 1


첫번째사진-피렌체시가지모습, 두번째사진-단테의 추억이 어려있는 베키오다리

4일째 되던 날 우리는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로마에서 북쪽으로 3시간 거리의 피렌체(플로렌스)를 향했다.
단테,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리오나르도 다빈치
예술의 거장들을 만나려 가는 것이다.

예술적인 운치를 아는 이런 이들에게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주도(州都)인 피렌체는 꿈의 공간이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대가들의 작품들이 일상 속에 즐비하기 때문이다. 지도에 나와 있는 예술 작품만을 찾아가 보는 데만도 최소 나흘은 투자해야 한다는데 우리는 겨우 한나절 밖에 시간을 낼 수가 없다.

르네상스의 요람, 단테,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메디치가의 고장인 피렌체는 미술, 문화, 역사가 태동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피렌체 공화국의 수반(1469∼1492)이었던 로렌초는 예술가이자 예술 사랑으로 ‘무장’된 예술계 최대의 후원자였다. 로렌초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창작을 독려했고, 이들은 로렌초의 비호 아래 자신의 사상을 작품 속에 녹여 냈다. 오늘날 피렌체의 발판을 만든 것이다.

상점이 늘어선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도시의 상징인 두오모(Duomo), 보석으로 가득한 우피찌 갤러리(Uffizi Gallery), 메디치 교회당 등 수많은 관광지를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피렌체는 성수기에 2000여개의 관광버스들이 드나들 만큼 이탈리아에서 가장 붐빈 도시이다.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오래된 다리’라는 뜻) 는 피렌체 아르노 강에 걸려 있는 다리다. 폰테 베키오는 단테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다. 단테는 이곳에서 어린 베아트리체를그림  베키오 다리 처음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베아트리체는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절명하고 말았지만.

피렌체는 12세기 초반 도시국가로서 세력을 크게 확장했지만 교황 지지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지파로 분열됐고, 주도권을 잡은 교황파는 다시 내분에 휩싸였다. 황제파였던 단테는 추방돼 오랜 유랑 생활 끝에 라벤나에서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베아트리체를 추억하면서 쓴 서사시는 후세에 ‘신곡’이라고 불려지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라틴어 대신 피렌체 방언으로 쓴 덕분에 피렌체 말이 이탈리아 표준어로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제 몇회에 걸쳐 예술의 도시 피렌체를 감상하기로 한다.




위사진 : 단테생가, 아래사진 : 단체의 연인 베아뜨리체의 무덤이 있는 단테교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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